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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카이브 역사문화경관

총 "143건"

폴더 회현 제2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민아파트 2010년대 회현 제2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1970년 5월 28일 준공되어 45년이 넘게 남산 언덕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파트다. 와우아파트 붕괴 직후에 지어져 당시 김현욱 서울시장의 의지로 절대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아파트라는 의미에서 시범아파트로 불려졌다.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남산의 급격한 경사를 고려하여 1층과 6층에 출입구를 두었고 중앙정원방식의 구조로 건립되었다. 당시에는 4~6층 아파트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회현 제2시민아파트와 같은 10층 아파트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아파트의 노후로 인해 현재 보존과 철거의 기로에 서 있으며 160여 가구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빈집으로 방치된 상태이다.

폴더 해방촌 해방촌 해방촌 해방촌 해방촌 2010년대 해방촌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2가에 위치하고 있는 해방촌은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마을로 이태원 지하보도에서부터 용산2가동 주민센터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본래 해방촌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이 있던 곳이며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 관할이 되어 해외에서 돌아온 귀환민과 월남민, 그리고 6·25전쟁 이후의 피난민과 실향민이 정착하게 되어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최근 들어 해방촌에는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예술가들의 공방 등이 생기면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는 물론 외국인들까지 즐겨 찾는 명소로 변모하고 있다.

폴더 북촌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 2010년대 북촌 한옥마을 조선시대 양반들이 거주 했던 북촌은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을 중심으로 삼청동, 계동 일대에 전통 한옥들이 밀집한 주거지이다. 북촌은 서울의 전통 거주지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의미에서 북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30년대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주택경영회사들이 북촌에 중소 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하여 한옥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 가회동 31번지와 33번지, 가회동 11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한옥 900여 채가 보존되고 있으며 북촌 8경이 2015년 4월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었다.

폴더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아파트 2010년대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아파트는 국내 기술로 지어진 아파트 중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주거 건축물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라는 새로운 건축 양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1965년 현 LH주택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에서 건축한 아파트이다. 당시 연예인 아파트라고 불릴 정도도 인기가 있었지만 1990년 중반 이후 강남 개발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떠나게 되었다. 동대문아파트는 지상 7층 높이에 중앙 브릿지와 중앙정원 방식의 중정형이라는 독특한 구조이며 도르레식 빨랫줄이 설치되어 있다. 1960년대 모습을 보여주는 생활 문화적 건축물로 2012년 충정아파트와 함께 ‘서울 속 미래유산 1,000선’에 선정되었다.

폴더 장면 가옥 장면 가옥 장면 가옥 장면 가옥 장면 가옥 2010년대 장면 가옥 장면 가옥은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하며 운석 장면이 동성 상업학교 교장 재직 시설 건립하여 서거할 때 까지 30여 년간 거주하였던 집이다. 장면은 1931년 동성 상업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1946년 정계에 입문하였다. 1949년 초대 주미대사로 임명되고 1951년 국무총리가 되었다가 이후 자유당에 맞서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4·19 이후 의원내각제인 2공화국의 총리를 역임했다. 장면 가옥은 한국 근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장소이며 전통 한옥의 특징과 함께 1930년대 주택 개량 운동과 신주거 문화 운동의 영향이 드러나 근대 주거사 연구의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 장면 가옥은 2013년 4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폴더 이화장 이화장 이화장 이화장 이화장 2010년대 이화장 서울시 종로구의 이화장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광복 후 귀국하여 지낸 사저다. 1945년 10월 귀국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돈암장에서 지내다가 1947년 11월부터 이화장으로 옮겨 기거하였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후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다. 1960년 4월 27일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 다시 이화장으로 이사하였고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할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본관을 중심으로 조각당, 생활관 등이 있으며 조각당은 초대 내각을 구상하였던 장소이다. 현재 이승만대통령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2011년 집중 폭우로 가옥이 유실되어 개방을 중단하고 보수 공사 중에 있다.

폴더 경교장 경교장 경교장 경교장 경교장 2010년대 경교장 강북삼성병원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 경교장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가 광복 후 중국에서 환국하여 서거할 때까지 생활하던 사저이자 집무실이다. 경교장은 금광사업자 최창학 소유의 별장으로 원래 이름은 죽첨장이었으나 최창학이 1945년 11월 김구에게 거처로 제공하면서 경교장으로 개칭되었다. 경교장은 김구의 활발한 정치활동으로 '서대문 경교장’으로도 불리면서 이승만의 이화장(돈암장), 김규식의 삼청장과 함께 1948년 8월 정부 수립 이전 건국운동의 요람이었으나 1949년 6월 26일 김구는 이 건물 2층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경교장의 주인이 바뀌었다가 현재는 강북삼성병원이 소유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폴더 절두산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 2010년대 절두산순교성지 서울시 마포구의 절두산순교성지는 천주교 교인들이 병인박해 때 순교한 곳이다. 병인박해는 1866년 흥선대원군이 프랑스인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도을 탄압한 사건으로 1866년 10월 26일부터 1867년 7월 30일까지 양화진 절두산에서 프랑스 신부들과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을 당했다. 절두산은 양화진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원래 이름은 잠두봉이었으나 병인박해 이후 이곳에서 머리가 잘렸다고 하여 절두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절두산순교성지는 1956년 11월 천주교순교자현양회에서 매입하고 1962년 가톨릭 순교성지기념탑을 건립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순교성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한국 최대의 천주교 순교성지로 해마다 성지를 순례하는 국내외 천주교 신자와 일반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폴더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 2010년대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는 우리나라 최초로 파송된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교회이며 1885년 7월 29일 정동에 사저를 마련하고 시작한 선교 활동을 모태로 한다. 1885년 10월 아펜젤러의 집례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성찬식을 거행함으로써 정동제일교회가 창립되었고 1895년 9월 예배당을 착공하고 1897년 12월 준공하였다. 정동제일교회는 창립 초기에 담임목사가 배재학당 학감을 겸하여 개화기 청년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1919년에는 이필주 목사와 박동환 장로가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폴더 약현성당 약현성당 약현성당 약현성당 약현성당 2010년대 약현성당 중림동 약현성당은 천주교 서울 대교구에 속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서양식 성당으로 서소문 순교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약초고개 위에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887년 현재 순화동에서 한옥공소로 출발하여 11월 9일 두세 신부가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함으로써 약현본당이 정식으로 출범하였으며 이는 명동성당에서 분리되어 서울에서 2번째, 전국에서 9번째로 설립된 본당이었다. 명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1891년 1월 착공하여 1892년 11월 준공하고 1893년 4월 23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998년 화재가 발생해 성당 내부가 완전히 소실되었지만 2년 만에 복원되어 2000년 9월 17일 봉헌식을 거행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폴더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2010년대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이태원에 위치한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은 한국 최초의 이슬람 성원이다. 6.25전쟁에 터키가 파병을 하면서부터 한국에 이슬람교가 전래되었으며 종전 후 한국이슬람협회가 결성되면서 한국 무슬림 1세대가 형성되었다. 이후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으로 1974년 10월 이슬람 성원 건립에 착공하여 1976년 5월 현재의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을 개원하였다.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은 3층 구조의 건축물로 1층에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사무실과 회의실이, 2층과 3층에는 각각 남자, 여자 예배실이 있다. 이 외에도 이슬람 선교원, 이슬람 상점, 이슬람학교 등이 있다.

폴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2010년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덕수궁 옆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우리나라 성공회의 대표적인 성당이다. 대한성공회는 종교개혁 때 분리된 영국성공회의 한국 교구로 1889년에 설립되었다. 성당은 1922년 착공하여 1926년 완공되었으며 처음 성당을 설계할 때는 십자가 모형으로 건축하려고 하였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십자가 모형의 건축물을 지을 수가 없었다. 1993년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본래 설계도를 발견하고 공사를 재개하여 1996년 5월 십자가 모형의 현재 모습을 갖추었으며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옥 양식을 곁들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공회서울성당은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로 사제관 앞에는 6월 민주항쟁 진원지 표지석이 서있다.

폴더 상동교회 상동교회 상동교회 상동교회 상동교회 2010년대 상동교회 서울시 중구의 상동교회는 의료 선교사 스크랜턴 목사가 1888년 설립한 교회로 일제강점기 애국계몽운동과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다. 1895년 달성궁으로 이전하였다가 1902년 5월 현 위치에 상동교회를 건축하였다. 1898년 전덕기를 중심으로 엡윗청년회를 조직하였고 1904년 상동청년학원을 설립하여 근대 학문 보급과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07년 신민회를 조직하여 항일민족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일제의 탄압에 의해 신민회가 해산되고 상동청년학원도 폐교를 당했으며 1944년 교회는 폐쇄되었다. 상동교회는 광복 후 재건되었으나 6·25전쟁으로 건물이 파괴되어 1974년 12층 건물을 신축하여 현재 7층 이상을 교회로 사용하고 있다.

폴더 대종교총본사 대종교총본사 대종교총본사 대종교총본사 대종교총본사 2010년대 대종교총본사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총본사는 대종교의 교무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대종교는 단군을 신봉하는 민족 종교로 1909년 1월 나철에 의해 단군교로 창시되었으며 1910년 8월 대종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대종교는 종교로 시작되었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독립운동에 더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14년 총본사를 만주 북간도로 옮겨 교세를 확장하였으며 청산리전투 등의 항일무장투쟁을 앞장서 전개하였다. 또한 홍익대학교와 단국대학교, 경희대학교의 전신인 신흥대학교 등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대종교총본사에는 교당인 천궁을 비롯하여 종사 영당, 임오십현 영당, 대종사 나철 흥암 신형비 등이 있다.

폴더 N서울타워(구 남산타워) N서울타워(구 남산타워) N서울타워(구 남산타워) N서울타워(구 남산타워) N서울타워(구 남산타워) 2010년대 N서울타워(구 남산타워) N서울타워는 방송 송출 전파탑이자 전망대로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1969년 12월 동양, 동아, 문화방송 등의 민영방송국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착공하였고 1975년 완공된 이후 1980년 10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였다. 2000년에 YTN에서 인수하여 전면 개설공사를 한 뒤 2005년 N서울타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장 하였다. 박물관과 레스토랑 및 여러 시설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전망대에서는 서울의 야경을 볼 수 있다. 현재 수도권의 지상파 방송사들이 N서울타워를 이용하여 전파를 송출하고 있다.

폴더 정동극장 정동극장 정동극장 정동극장 정동극장 2010년대 정동극장 정동극장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의와 근현대 예술 정신을 바탕으로 1995년 6월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에는 국립중앙극장 분관 체제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재단법인 정동극장으로 완전한 독립법인체를 갖추고 있다. 정동극장에는 282석의 공연장과 야외 마당이 있으며 아트숍과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2000년 전통 상설공연 브랜드를 출범한 이래 ‘춘향연가’, ‘배비장전’ 등 고전을 무대화한 전통 공연을 선보이고 야외 마당을 활용하여 시민들을 위한 야외공연 시리즈를 개최하는 등 전통 공연예술 제작 극장과 도심 속 아트 플랫폼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폴더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 2010년대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은 국내 최초 돔 형식의 실내체육관으로 육군체육관을 개, 보수하여 1963년 2월 개관하였다. 2012년 5월 리모델링 공사에 착공하여 2015년 1월 17일 재개관하였고 현재 주체육관 외에 보조체육관과 각종 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다. 장충체육관은 1970, 80년대 실내경기의 중심지로 88올림픽 때 유도 경기와 태권도 경기가 열리기도 하였다. 또한 장충체육관은 체육관 선거의 역사적 현장으로 1979년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개최되어 박정희 대통령을 간선제로 선출하였고 1979년 12월에는 최규하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폴더 잠실종합운동장 잠실종합운동장 잠실종합운동장 잠실종합운동장 잠실종합운동장 2010년대 잠실종합운동장 잠실종합운동장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위해서 건립한 종합경기장이다. 경기장 건설은 1976년 11월에 착공하여 1984년 9월 완공되었으며 올림픽주경기장 외에도 야구장과 실내체육관, 보조 경기장, 수영장 등의 시설이 있다. 특히 올림픽주경기장은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의 개, 폐회식 및 육상과 축구 경기 등이 열렸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경기장이다. 현재는 각종 체육 경기와 문화예술 공연 등을 개최하고 있다.

폴더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 2010년대 서울월드컵경기장 마포구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FIFA 한일월드컵에서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과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이 열렸던 주경기장이다. 2002년 월드컵이 한일 공동 개최로 확정됨에 따라 1998년 10월 20일 현 위치에 주경기장 건립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11월 10일 개장하였다. 2004년부터 FC 서울의 홈구장이 되어 K리그 경기가 열리고 있으며 경기장 외에도 월드컵기념관과 월드컵몰이 있다. 또한 경기장 주변에 월드컵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폴더 삼청각 삼청각 삼청각 삼청각 삼청각 2010년대 삼청각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하고 있는 삼청각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전통문화 복합공간이다. 1972년 준공되어 1970년대와 1980년대 요정 정치의 산실로 대표되던 곳으로 여야 고위 정치인의 회동과 1974년 ‘7․4남북공동성명’ 남북적십자 회담의 만찬 등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손님이 줄어 1999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2009년 7월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에서 인수하여 전통 문화 체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일화당과 청천당을 비롯한 한옥 여섯 채와 야외 놀이마당이 있으며 각종 모임이나 연회 행사와 전통예술 프로그램도 운영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