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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카이브 역사문화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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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 평창 이효석 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일제강점기(1910~1945) 평창 이효석 문학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관은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작가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살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효석은 1907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출생, 1928년 『도시와 유령』이라는 작품으로 정식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산』, 『들』, 『메밀꽃 필 무렵』 등 다양한 단편 소설을 집필했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는 봉평이나 인근 지역의 실명이 명시되고 본인이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설을 통해 녹여냄으로써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효석 문학관은 1982년 유족에 의해 추진되어 2002년 개관했으며, 문학관 내부는 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이효석 문학 전시실’과 봉평 메밀과 관련된 풍습 및 각종 자료를 보여주는 ‘메밀자료실’, ‘학예연구실’, ‘문학교실’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관 주변에는 매달 2일과 7일에 봉평 장날이 열리고 있으며, 1999년부터 매년 9월에는 ‘평창효석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폴더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체험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체험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체험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체험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체험관 2010년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체험관

폴더 속초항 속초항 속초항 속초항 속초항 일제강점기(1910~1945) 속초항 속초항은 어항, 철광석 적출항, 관광항 등이 결합된 무역항이다. 1905년 동해연안항로가 개설되어 선박의 기항지로 이용되다가, 1930년대 후반 양양철광의 개발에 따라 철강석 적출항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속초항은 1962년 지정항, 1964년 개항장이 되었고, 그 후 1970년대에 들어 무연탄·철광석·유류 등의 화물량이 급증하면서 항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국제여객터미널, 국제크루즈터미널 등의 국제관광 항만으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으며 또한 북방교역에 대비한 거점항으로서 관광과 물류가 어우러진 항만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5년에는 금강산 관광을 위한 여객선이 속초항에서 출항하면서 남북직교역 항만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주요 항만시설로는 접안 시설인 물량장 1,187m, 안벽 262m, 외곽시설인 방파제 1,651m, 해안 시설을 보호하는 호안 1,842m를 갖추고 있다.

폴더 구 강촌역 구 강촌역 구 강촌역 구 강촌역 구 강촌역 일제강점기(1910~1945) 구 강촌역 구 강촌역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 설치되었으나 역무원과 역사조차 없는 이름뿐인 역에 불과했고, 6.25전쟁 이후인 1953년에야 역사가 들어섰다. 1972년 12월 역 주변에 출렁다리라고도 불린 등선교가 건립되어 강촌의 랜드마크로 널리 알려지면서 그 일대를 찾는 관광객들이 강촌역을 이용하며 역의 수송인구가 늘어났다. 또한 강촌역 주변은 북한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경치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민박 등의 시설로 인하여 7,80년대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휴양지와 대학생들의 MT지역으로 각광받았다. 구 강촌역은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 전철 개통으로 인해 폐쇄되었고, 새로운 강촌역은 구 강촌역과 600m 떨어진 방곡리로 이전·건립되었다. 2012년에 구 강촌역을 기점으로 레일바이크를 운행하면서 강촌 일대는 다시 한 번 여행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폴더 소양강 댐 소양강 댐 소양강 댐 소양강 댐 소양강 댐 1970년대 소양강 댐 소양강댐은 강원도 춘천시 동면 월곡리와 신북읍 천전리에 걸쳐 있는 한국 최초의 중앙 차수벽식 사력댐이다. 소양강댐은 4대강유역종합개발사업의 첫 사업으로 1967년 4월에 착공되어 1973년 10월에 완공되었다. 댐의 규모는 유역면적 2,703㎢, 높이 123m, 길이 530m이며, 댐과 댐 건설로 조성된 소양호로 인해 3개 시·군, 6개 면, 38개 리 4,600세대가 이주하였고 약 2,700㏊의 논밭이 수몰되었다. 완공 당시 발전용량은 한국의 전체 수력발전 용량 62만kW의 1/3에 해당되어 수도권에서 필요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양강댐은 수도권 지역의 홍수 방지, 전기 공급, 상수도 공급 등 다목적을 띤 댐으로 댐의 완공 후 수도권 인구의 상수원이 확보되었다.

폴더 대마리 향군촌 대마리 향군촌 대마리 향군촌 대마리 향군촌 대마리 향군촌 광복~1950년대 대마리 향군촌 대마리 향군촌은 1967년 철원군과 연천군 주민 150명이 입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정부는 전쟁이 끝난 후 체제가 안정되자 휴전선 부근의 농지확장과 식량증산을 확보하고 대북심리전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민북마을(선전마을)을 건설하기로 하고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Kibbutz)’를 모델로 삼아 대마리에 제대 군인과 지역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대마리 부근에는 전쟁기간 매설했던 지뢰가 여러 곳에 산재해 있어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20여건의 지뢰사고가 발생했고, 수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거나 발목지뢰 사고로 인해 발목과 무릎을 잃기도 했다. 1967년부터 시작된 개간 작업이 마치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드는 군인들의 전투와 같다고 하여 ‘향군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마리 향군촌은 2003년 정보화마을로 지정되었으며 2012년 두루미평화생태마을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 된 이후 두루미평화마을로 불리고 있다.

폴더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 1970년대 통일전망대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는 1984년 휴전선 부근에 건립된 대표적인 전망대이자 안보 현장이다. 고성 지역은 6.25전쟁 이전까지는 북한 지역으로 3.8선 경계비가 있던 기사문리 일대를 중심으로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었다. 전쟁 중에 국군이 북진작전으로 고성지역까지 수복하였고 휴전 이후에는 이곳에 분단의 현장을 볼 수 있도록 전망대를 건립했다. 통일전망대는 비무장지대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0m 고지에 위치해 있으며, 전망대의 1층 전시실에는 6.25전쟁 당시의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고 2층 전망대에는 북한지역의 위치를 사진으로 표시해 놓아 현장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도록 했다. 맑은 날에는 금강산의 구선봉과 해금강 등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폴더 구 철원제일교회 구 철원제일교회 구 철원제일교회 구 철원제일교회 구 철원제일교회 일제강점기(1910~1945) 구 철원제일교회

폴더 박수근 생가 터 및 미술관 박수근 생가 터 및 미술관 박수근 생가 터 및 미술관 박수근 생가 터 및 미술관 박수근 생가 터 및 미술관 광복~1950년대 박수근 생가 터 및 미술관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화가 박수군의 생가터에 조성된 미술관이다. 한국적인 주제를 서민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박수근은 양구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고향 마을의 들녘, 농가에서 일하는 아낙네, 나물 캐는 소녀는 주된 그림의 소재였다. 19세 때인 1932년에 이른 봄날 농가의 모습을 그린 수채화 <봄이 오다>가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 1953년 제2회 국전에서 <집>이 특선으로 선정되었으며, 1959년부터 1964년까지는 국전 추천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2년 고향인 양구에 지어진 박수근미술관은 2층 건물로 박수근 그림의 색감과 질감을 상징하는 화강석을 쌓아 지었다.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작품과 유품들이 상설 전시되어 있으며, 기획전시실에는 주요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기획 전시하고 있다. 박수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4년에는 새로운 건물인 박수근 파빌리온이 건립되었다.

폴더 강원도청 강원도청 강원도청 강원도청 강원도청 1960년대 강원도청 춘천시 중앙로에 위치한 강원도청은 강원도의 행정과 민원 업무를 총괄하는 지방행정기관이다. 강원도의 관할구역은 7개 시, 11개 군, 187개 읍·면·동이 있으며 여기에 전쟁 후 미수복지구로 9개 군, 4개 읍, 49개 면, 594개 리가 남아 있다. 춘천이 관찰사가 파견되는 도의 수부지역이 된 것은 1896년(고종 33년) 8월 13도제가 실시됐을 때이며,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0년 10월 ‘신 지방관제’ 실시에 따라 춘천은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춘천이궁에 있던 1층과 2층 가옥을 증축하여 도청 청사로 사용했는데 1940년에 일어난 화재로 1층 본관, 서고, 회의실, 문서진열관 등이 전소되었다. 현 도청의 본관은 1957년 준공했으며 이후 업무가 확장되자 본관 옆에 별관을 짓고 그 후 신관, 콜센터건물, 청사관리동 등을 증축했다.

폴더 화천 수력발전소 화천 수력발전소 화천 수력발전소 화천 수력발전소 화천 수력발전소 일제강점기(1910~1945) 화천 수력발전소 화천 수력발전소는 1944년 5월에 준공된 수력발전소로 우리나라 발전소 중 제일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가 1939년 경인공업지구 내 군수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을 시작해 44년 준공했다. 광복 직후 38선의 분단으로 화천은 북한 지역에 속하기도 했으나 6.25전쟁 기간 국군의 북진으로 1950년 9월 화천 수력발전소를 다시 찾게 되었다. 1951년 5월 이 곳에서 중공군을 섬멸하자 이승만대통령은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라는 친필휘호를 쓰기도 했다. 전쟁 이후 복구사업이 진행되어 1952년과 1954년에 화천수력 1,2호기가 각각 완료되었으며, 3호기는 1957년, 4호기는 1968년에 준공되어 총 발전설비용량 10만 8,000kW를 보유하게 되었다. 화천 수력발전소는 이후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로 인하여 그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으며, 정부는 화천 수력발전소를 2004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09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폴더 아바이마을 아바이마을 아바이마을 아바이마을 아바이마을 광복~1950년대 아바이마을 아바이마을은 1951년 1.4후퇴 때 피난 온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속초시 청호동에 조성한 집단촌이다. 정착 당시 이주민들은 청초호와 바다 사이 모래밭에 움막집을 새로 지어 마을을 만들었으며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 냈다. 청호동은 속초의 수산업 발달에 따라 1966년경에 인구가 7천여 명에 이르렀지만,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오징어를 잡거나 건조하는 일을 많이 했으나 현재는 오징어가 잘 나지 않아 그 수가 많이 줄었고 수산물 가공 공장도 소수만 남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주민은 아직도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드라마 촬영지 등으로 관광지로 이름이 나면서부터는 숙박시설과 식당, 매점 등이 들어섰다. 주민들은 2000년부터 실향민 2,3세대를 주축으로 ‘아사모(아바이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하여 향토사랑 활동에 힘쓰는 한편 2016년 처음으로 실향민문화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폴더 횡성 3.1운동 기념비 횡성 3.1운동 기념비 횡성 3.1운동 기념비 횡성 3.1운동 기념비 횡성 3.1운동 기념비 일제강점기(1910~1945) 횡성 3.1운동 기념비 횡성 3.1운동 기념비는 강원도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72년에 세운 기념비이다. 1919년 3월 12일 횡성 읍내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만세시위가 준비되었고, 시위는 3월 27일 횡성 장날에 천도교인의 주도로 처음 일어났다. 주동인물이 검거되면서 일단락되었으나, 다음 장날인 4월 1일 다시 천도교인들과 횡성청년회, 횡성감리교회 등이 합세하여 횡성 장터에 1,300여 명이 모였고,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일본 헌병이 총을 쏘자 군중들은 일단 해산하고 저녁 무렵에 다시 시위를 진행했으나 매복해있던 헌병의 총에 법주리 강승문, 둔둔리의 하영현·강달회 등 5명이 즉사하고, 8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횡성군은 이를 기리기 위해 매년 4월 1일이면 횡성3.1공원에서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폴더 속초 북한잠수정 침투지 속초 북한잠수정 침투지 속초 북한잠수정 침투지 속초 북한잠수정 침투지 속초 북한잠수정 침투지 1990년대 속초 북한잠수정 침투지 양양 북한잠수정침투사건은 1998년 6월 속초 동쪽 11마일 해상에서 북한의 70톤급 유고급 잠수정이 발견된 사건이다. 처음 어부에 의해 발견, 신고된 잠수정은 기사문항 해군기지를 거쳐 동해항으로 예인되었고 잠수정에 타고 있던 9명의 승조원은 자살하였다.나중에 잠수함 내부에서 발견된 공작일지 판독 결과 이 잠수정은 양양국제공항 근처 손양면 수산리 앞바다에 침투하여 무인포스트를 구축하고 북으로 향하다 어민들의 그물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잠수정에서는 간성, 속초, 양양, 주문진, 강릉, 묵호, 삼척 일대 지도가 발견되었고 이외에도 로켓포, 소총, 수류탄, 권총, 실탄, 폭약 등의 무기류와 책, 서류 등이 있었다. 이에 따라 6월 23일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북한군 장성급 회담에서 정부가 잠수정 문제를 제기하였다. 침투사실 인정과 사과가 없어 화해모드 와해 및 시신송환 거부가 예견되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의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1998년 7월 3일 9구의 시신이 모두 송환되었다.

폴더 양양 38선 돌파지 양양 38선 돌파지 양양 38선 돌파지 양양 38선 돌파지 양양 38선 돌파지 광복~1950년대 양양 38선 돌파지 강원도 양양군에 위치한 양양 38선 돌파지는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동해안에서 진격하던 국군 제3사단 23연대가 38도선을 최초로 돌파한 장소이다. 10월 1일 오전 국군 제3사단 23연대가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였는데, 이를 기념하여 양양군 38선 휴게소 주변 광정천 다리에 ‘돌파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휴전 후 1956년 9월 21일, 대통령령 제1173호 ‘국군의 날에 관한 규정’을 공표하고 38선 돌파일인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하였다. 양양군 안보테마공원은 6·25 전쟁 시 영동지역에서 창설된 7개 부대와 6·25 전쟁 후 영동지역에서 창설된 5개 부대의 창설 표지석을 모아 2013년 조성된 공원으로, 군단은 매년 이곳에서 창설지 기념행사와 38선 돌파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폴더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지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지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지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지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지 1990년대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지 북한잠수함 침투사건은 1996년 9월 강릉 해안에 360톤 규모의 상어급 잠수함이 침투하던 중 어망에 걸려 표류하다 발견된 사건이다. 잠수함은 안인진 앞바다에서 좌초되었고, 잠수함에 타고 있던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 26명이 안인진 해변으로 침투하면서 49일 동안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통해 다수의 북한 잠수함 승조원들과 우리 군인, 민간인이 사망하게 되었다. 1996년 12월 29일 잠수함 사고에 대한 북한의 사과성명이 발표되었고 사망자 24명의 시신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되었다. 1997년 7월, 국방부는 사고현장에 공원을 조성하고 잠수함을 전시하기로 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2001년 9월 안보·통일 관련 전시물과 군사장비를 전시하는 강릉 통일공원이 문을 열었다. 현재 침투 현장인 안인진 바닷가에는 국군 해군의 주력함정으로 사용되다가 퇴역한 전북함과 북한잠수함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폴더 6.25남침사적비 6.25남침사적비 6.25남침사적비 6.25남침사적비 6.25남침사적비 광복~1950년대 6.25남침사적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위치한 6·25 남침사적비는 등명락가사(燈明洛伽寺)와 등명해수욕장의 중간에 세워진 비석으로, 비석이 세워진 곳은 북한군이 최초로 남침한 장소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북한군 제766부대와 제945부대가 임원진과 정동진으로 기습 상륙하였다. 동해안에 상륙한 연대 규모의 북한군은 상륙 후 인근에서 활동 중이던 공비 세력과 연결하여 국군을 분리, 고립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동해안을 지키던 국군 제8사단은 주문진에 국군 제10연대, 강릉에 사단사령부, 삼척에 제21연대를 배치해두고 있었다. 북한군은 그 중간지점인 강릉에 침투하여 국군의 연락망을 끊고 제10연대와 사단사령부의 배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동해안에 침투하여 민간인 2명과 경찰 1명을 사살하였다. 국군 제8사단은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군과 동해안에 침투한 북한군에 의해 고립되었으나 대관령 방향 퇴로를 확보하여 철수할 수 있었다.

폴더 영월 탄광문화촌 영월 탄광문화촌 영월 탄광문화촌 영월 탄광문화촌 영월 탄광문화촌 1970년대 영월 탄광문화촌 강원도 영월군 북면 밤재로에 위치한 탄광문화촌은 1960~70년대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던 영월군 북면 마차리의 탄광마을과 폐광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문화시설이다. 마차리 영월탄광은 1935년부터 개발되어 1972년에 폐광될 때까지 영월 제일의 탄전(炭田)이었던 곳으로, 영월화력발전소에 연료탄을 공급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폐광지역 관광 자원화 사업’에 따라 2009년 10월 20일에 문을 연 탄광문화촌은 1960년대 마차리 탄광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장소이다. 그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탄광생활관과 탄광산업의 역사를 체험해볼 수 있는 탄광갱도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더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일제강점기(1910~1945)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 위치한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이다. 태백은 국내 최대의 탄전지대로, 그 중 철암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석탄 산업사에 있어 상징적인 도시이다. 조선총독부는 국내 광산을 모두 조사한 후 광업권을 일본회사에 넘겼고, 전쟁이 가속화되던 1930년 이후 한반도의 자원 수탈이 본격화되었다. 1920년대 평양 인근의 무연탄과 함북의 갈탄이 개발되었고, 1930년대에 화순, 영월, 삼척, 은성탄광 등이 개발되었다. 광복 후에도 삼척탄광은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며 남한 최대의 무연탄광으로 발전하였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원탄저장 및 운반(벨트 콘베어), 경석 선별 및 파쇄운반, 1.2.3차 무연탄 선탄, 이물질 분리(침전), 각종 기계공급 및 수선창 등 5코스, 20개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근대 산업사의 상징적인 주요 시설로 인정받아 2002년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선정되었다.

폴더 태백 장성 이중교 태백 장성 이중교 태백 장성 이중교 태백 장성 이중교 태백 장성 이중교 일제강점기(1910~1945) 태백 장성 이중교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외곽에 위치한 태백 장성 이중교는 1935년 건설된, 태백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장성광업소 장성탄전은 단일탄광으로는 국내 최대의 탄전이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인 1936년, 삼척개발주식회사가 개광한 삼척탄광의 장성갱을 모태로 하여 1950년 대한석탄공사 산하의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로 분리된 곳이다. 장성광업소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한국의 경제개발을 모두 아우르는 역사적인 탄광으로 2016년까지도 연간 48만t의 무연탄을 생산하고 있는 태백지역 최대 고용규모를 갖춘 탄광이었으나 폐광될 예정이다. 태백 장성 이중교는 1935년 장성탄전에서 생산된 탄광을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서 설계된 다리로, 일제강점 말기에는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데 이용되었다. 전쟁 후 국가 재건과정에서도 장성광업소의 발전과 함께 태백 장성 이중교는 안정적인 석탄 에너지 공급에 이용되면서 공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