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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카이브 역사문화경관

총 "32건"

폴더 월성 원자력 발전소 월성 원자력 발전소 월성 원자력 발전소 월성 원자력 발전소 월성 원자력 발전소 1970년대 월성 원자력 발전소 경북 경주시 양남면 동해안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 발전소는 국내 유일의 가압중수로형 발전소이다. 1977년 착공, 1982년 8월 20일 핵연료를 넣고 1982년 12월 31일 시험발전을 시작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 월성 원자력 발전소, 한빛 원자력 발전소, 한울 원자력 발전소 등 네 곳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그 중 월성 원전은 고리 원전에 이어 두 번째 만들어진 원자력 발전소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캐나다 원자력공사가 개발한 가압중수로(CANDU)를 사용한다. 월성 원자력 발전소 운행으로 에너지원이 다각화되고 천연 우라늄을 사용을 통해 발전원가가 절감되었다.

폴더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일제강점기(1910~1945)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 경북 포항시 포스코역사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구 삼화제철소 고로(高爐)는 현존하는 용광로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구 삼화제철소 고로는 1943년 일본 고레가와 제철(是川製鐵)이 강원도 삼척에 설치한 소형 용광로 8개 가운데 하나이다. 철 구조물로 된 항아리 모양의 원통형 기둥으로 높이 25m, 직경 3m, 중량 30톤에 이른다. 이 고로는 과거에 세워진 것인 까닭에 현재의 고로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구조는 동일하다. 1973년에 동국제강이 삼화제철을 인수하면서 1~7호기는 생석회 소성(塑性)용으로 바뀌었고 8호기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1991년 삼화제철소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1993년 포스코가 고로를 인수, 포항제철소에 보관하다가 포스코 역사관 개관과 함께 이전하여 현재는 포스코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폴더 포스코 포스코 포스코 포스코 포스코 1960년대 포스코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한 포스코는 1968년 종합철강 건설계획 수립정책에 따라 포항종합제철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포스코는 국내 최초의 고로 업체로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등 2개의 일관제철소를 보유하고 있다. 1965년 5월 미국에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1966년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이 발족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한중석과 KISA 대표단의 협정이 체결되었고 1968년 대통령령 제3349호가 공포되면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창립되었고 1968년 포항 건설사무소인 롬멜하우스가 개설되었다. 1970년 4월 1일 포항 1기 설비가 착공되었고, 네 번의 확장사업을 거쳐 1983년에는 조강 910만 톤을 생산하는 제철소가 되었다. 1985년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고자 전라남도 광양에 제2제철소를 개소하였다. 1기 준공 44만 9000톤이던 조강 생산량은 2005년 3천만 톤에 가깝게 늘어났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수익 또한 늘어나 2015년까지 적자 없는 흑자 경영을 이어오기도 했다.

폴더 영일지구 사방사업지 영일지구 사방사업지 영일지구 사방사업지 영일지구 사방사업지 영일지구 사방사업지 1970년대 영일지구 사방사업지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한 영일지구 사방사업지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림을 복구하는 사방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 사방사업이 행해진 영일지구는 우리나라 사방사업지 중 단일구역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한번 황폐해지면 복구가 어려운 특수 지질층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험사업을 통해 현지 여건에 알맞은 사방기술을 정착시켜 토양의 유실을 막고 수해를 예방하는 등의 효과를 거두었다. 사방사업의 기록보존을 위하여 1978년 『영일지구 사방사업사』가 발간되었으며, 2007년에는 영일지구 사방사업 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공원 내에는 사방역사관, 유물전시관, 야외전시장, 사업 추진과정의 축소 모형 장면 등이 있어 사방사업의 중요성과 영일지구 사방사업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폴더 영암선과 개통기념비 영암선과 개통기념비 영암선과 개통기념비 영암선과 개통기념비 영암선과 개통기념비 광복~1950년대 영암선과 개통기념비 영암선(榮巖線)은 경상북도 영주와 강원도 철암을 잇는 86.4km의 철도노선이다. 영암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로 지어진 철도로, 강원지역의 무연탄 수송을 철도 수송으로 바꾸어 광복 이후 시작된 한국의 경제발전을 앞당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공사가 시작 된지 1년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여 건설이 중단되고 동점터널 궤도 부설 공사 중 세 차례의 붕괴사고가 일어나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공사였으나 동점터널 완성과 함께 1955년 12월 31일에 개통되었다. 순수한 한국의 기술로 세워진 최초의 철도노선을 기념하고 공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산업전사들의 노고를 기리고자 1955년 공사가 가장 어려웠던 승부역에 개통기념비가 세워졌다. 기념비 전면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친필로 ‘영암선 개통 기념’ 휘호가 쓰여 있고 측면에는 준공 표지석이 부착되어 있다. 2011년 기초 보강, 대리석 바닥 포장 및 난간 펜스를 설치하는 등의 보수를 거쳐 2013년 2월 21일 등록문화재 제540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경상북도 신청사 경상북도 신청사 경상북도 신청사 경상북도 신청사 경상북도 신청사 2010년대 경상북도 신청사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에 위치한 경상북도 신청사는 대구에 있던 경상북도 청사를 안동으로 이전한 것이다. 경북도청이 대구에 들어서고 경상북도를 관할하였으나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상의 이유로 청사는 대구에 남아있게 되었다. 주민의 편의를 해소하고 지방자체제의 의의를 살리기 위해 2016년 2월 청사를 안동으로 이전하였다. 청사 건물은 전체적으로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킨 형태로 고안되었다. 본청 안민관, 의회청사 여민관은 기단과 몸체, 지붕을 전통의 비례에 맞추어 설계하여 전통 문화의 고향 경북의 이미지를 살렸다. 전통 한옥 양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설계한 조화로운 공간배치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특히 도민 이름을 새겨 넣은 고령기와를 사용해 얹은 기와지붕과 안압지의 모양을 본뜬 연못 등이 배치되어 있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청사가 들어선 자리는 배산임수 지형으로, 청사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편에는 검무산이 솟아있다.

폴더 영천지구 전투지 영천지구 전투지 영천지구 전투지 영천지구 전투지 영천지구 전투지 광복~1950년대 영천지구 전투지 영천전투는 6.25 전쟁 초기이던 1950년 9월 국군 제2군단 예하 제7사단과 제8사단이 영천 점령을 기도한 북한군 제15사단을 맞아 공방전을 통해 영천을 확보한 전투이다. 9월 5일에서 13일까지 벌어진 영천지구 전투로 인해 6.25 전쟁의 전황이 달라지게 된다. 1958년 10월 20일 영천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육군 제1205건설공병단이 영천지구 전승비(永川地區 戰勝碑)를 세웠다. 비명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전승비는 영천시 창구동에 위치했었으나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에 성역사업지구인 영천시 마현산 공원으로 옮겨졌다.

폴더 박정희대통령 생가 박정희대통령 생가 박정희대통령 생가 박정희대통령 생가 박정희대통령 생가 개항~대한제국(1910) 박정희대통령 생가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 위치한, 대한민국 제5대~9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집이다. 1917년 11월 14일에 태어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32년 대구사범대에 진학하기까지 이 집에서 거주하였다. 건물은 1900년대에 지어진 15평 규모의 집으로, 전형적인 농촌가옥이다. 박 대통령 서거 직후인 1979년부터 응접실을 분향소 및 추모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생가 안에는 사범대 시절 사용한 책상과 책꽂이, 호롱 등이 전시되어 있다. 건축적인 가치가 높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의를 살려 1993년 2월 25일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구미국가산업단지 구미국가산업단지 구미국가산업단지 구미국가산업단지 구미국가산업단지 1960년대 구미국가산업단지 경상북도 구미시와 칠곡군에 위치한 구미국가산업단지는 한국 경제발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산업단지이다. 국가주도하에 이루어진 산업단지로, 1973년 제1단지를 필두로 1983년에 제2단지, 1992년에 제3단지, 2006년에 제4단지가 차례로 조성되었다. 2018년 제5단지가 준공 예정에 있다. 지대가 평탄하고 수량이 풍부한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공업단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지닌다. 2005년 단일 산업단지 최초로 300억불 수출을 달성하였고, 2013년 한해에만 344억 달러를 수출하였다. 현재 산업단지 내에 1천개 이상의 기업이 있으며 11만 명의 근로자가 근무한다.

폴더 강정고령보 강정고령보 강정고령보 강정고령보 강정고령보 2010년대 강정고령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한 강정고령보는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과 달성군 다사읍을 흐르는 낙동강에 조성된 보(洑)이다. 홍수조절능력을 확충하여 홍수에 대비하고 수질을 개선하며 보호가치가 큰 습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4대강 사업 과정에서 설치되었다. 강정고령보는 예로부터 수운을 이용하여 물과 공물을 운반하였던 고령의 지역적인 특색을 살려 ‘후기 가야시대의 중심’이라는 테마로 디자인되었다. 12계단과 12가지의 조명으로 물풍금을 형상화하였으며 전망테크는 가야금 12현을 형상화한 탄주대 모형으로 꾸몄다. 강정고령보에 조성된 건물인 디 아크(The ARC)는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쉬드가 설계하였다.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과 물수제비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의 파장을 표현한 건축물로 201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에 선정되었다. 전체 건물면적은 3천761㎡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이다.

폴더 제일모직 공장 터 제일모직 공장 터 제일모직 공장 터 제일모직 공장 터 제일모직 공장 터 광복~1950년대 제일모직 공장 터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위치했던 제일모직 공장은 국내 최초의 모직, 의류 생산 공장이다. 칠성동 제일모직 공장은 한국 섬유산업 발달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제일모직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계열의 대한민국 제조기업으로, 1954년 9월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로 창립되었다. 1972년에는 경산 공장을 분리하여 제일합섬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후 1976년 제일모직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제일모직 대구 공장은 1954년 건축되었다. 창업주 이병철 삼성 회장이 칠성동에 부지를 마련하여 제일모직 대구 공장을 건설하였고, 공장 본관 옆에 공장에서 일할 여공들을 위한 기숙사를 같이 건축하였다. 1996년 공장이 경북 구미로 이전하면서 기숙사 건물은 2009년까지 삼성전자 서비스 교육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외의 공장부지는 제일모직과 구미공장이 통합하면서 빈 땅으로 남아 있었으나 현재 삼성과 대구시가 손을 잡고 ‘대구창조경제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폴더 경상북도 구청사 경상북도 구청사 경상북도 구청사 경상북도 구청사 경상북도 구청사 광복~1950년대 경상북도 구청사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로에 있는 경상북도 청사는 50년 동안 경상북도의 행정과 민원을 총괄했던 지방행정기관이다. 경북도청은 1910년 대구 중고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자리에 있다가 1966년 지금의 대구 북구 산격동으로 이전하였다. 6.25 전쟁 후 섬유 산업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하면서 1981년 7월 1일 달성군 월배읍·성서읍·공산면, 칠곡군 칠곡읍, 경산군 안심읍·고산면이 대구시로 편입하게 되었고 대구시는 직할시가 되었다. 직할시로 승격된 후에도 행정상의 절차가 복잡하여 도청사는 여전히 대구에 남아 있었다. 주민과 관할구역, 자치권을 주관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소 소재지가 자치단체 관할구역에 위치하지 않아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2006년 도청 이전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2008년 6월 새로운 경북도청 이전지가 안동으로 결정되었다.

폴더 대구시민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 광복~1950년대 대구시민운동장 대구광역시 북구 고성로에 위치한 대구 시민운동장의 전신은 대구운동장으로, 1948년에 건립되었다. 건립 이후 1960년에 종합운동장으로 규모가 커지며 보수와 확장 공사를 실시하였고 1962년에 대구종합경기장으로 개칭하였다. 이어 1967년에 수영장을 증설하였고 1972년 실내 사격장을 추가로 개설하였다. 1975년에 주경기장을 공인하였고 1976년 대구시민운동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도 보조경기장과 테니스장, 실내빙상장, 씨름장 등 추가시설을 점차로 늘려가며 스포츠 종합단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2년 제43회 전국체육대회와 1975년 제56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되었으며 10회 아시안 게임과 제 24회 서울 올림픽 축구 예선 경기 또한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치러졌다. 대구스타디움이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주경기장으로 사용되면서 대구스타디움을 사용하던 대구 FC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폴더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1960년대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서구 염색공단중앙로에 위치한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은 염색 전용 산업단지이다. 금호강변에 가까워서 풍부한 용수 사용이 가능하고 대구공항에서 14Km, 대구역에서 5km 거리이며, 경부, 구미, 중앙, 88고속도로와의 진입 또한 1km 반경으로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이 용이하고 공동산업지역을 형성하여 최첨단 기술의 도입과 보급에도 편리하다. 1980년 설립인가 후 공동폐수처리장 시설을 준공하여 1981년에 대구염색공업공단으로 문을 열었다. 1983년 전용용수 시설을 세우고 1987년에 열병합발전소 시설을 준공하며 시설을 확충해 나갔다. 1994년에 공동폐수처리장을 증설 및 보완하였고 1995년 열병합발전소를 증설하였다. 1997년 공단명칭을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으로 변경하고 1999년에 용수재 이용시설을 준공, 친환경적인 공단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폴더 노태우대통령 생가 노태우대통령 생가 노태우대통령 생가 노태우대통령 생가 노태우대통령 생가 연도미상 노태우대통령 생가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대한민국 제13대 노태우 대통령의 생가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주하던 당시의 주소는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신응리이다. 노 전(前)대통령은 팔공산 아래 용진마을 끝자락에 자리한 집에서 1932년 8월 17일 아버지 노병수씨와 어머니 김태향씨 사이의 맏이로 태어났다. 1945년 공산소학교(현 대구공산초등학교)를 마치고 대구공립공업학교(현 대구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 집을 떠났다. 생가 뒤편으로 조부와 증조부 선영이 자리잡고 있다.

폴더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2010년대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에 위치한 텍스타일 콤플렉스(DTC)는 대한민국 최초의 섬유종합박물관이다. 대구는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메카이다. 면화와 누에고치의 주산지였던 대구는 일제 강점기 섬유공장이 다수 들어서면서 섬유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광복 후 1970~80년대 경제개발계획과 경공업 위주 수출정책이 맞아떨어지면서 대구의 섬유산업은 더욱 발전하였다. 대구시는 섬유산업을 육성하고 첨단 섬유패션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는데 텍스타일콤플렉스도 이 중 하나이다. 텍스타일콤플렉스는 통합적 마케팅을 통해 섬유산업에 있어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2015년 개관하였다. 텍스타일콤플렉스는 지하 2층, 지상 9층의 건물로 건물 전체는 섬유산업을 형상화하였으며 복층유리를 사용해 각 건물마다 섬유의 특성을 살렸다.

폴더 효목동 조양회관 효목동 조양회관 효목동 조양회관 효목동 조양회관 효목동 조양회관 일제강점기(1910~1945) 효목동 조양회관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조양회관(朝陽會館)은 신식교육에 관심이 컸던 독립운동가 동암 서상일이 1922년에 세운 근대사회교육시설이다. 조양회관이라는 이름은 ‘아침 해가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로, 잃어가는 민족의식을 되찾고 민중을 계몽하자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유행하던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절충시킨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당대 지어진 건축물 중 신고전주의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손꼽힌다. 회관의 준공 후 대구구락부, 대구여자청년회, 대구운동협회, 농촌봉사단체 등이 입주하여 1920년대 대구지역 민족계몽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하였다. 독립운동의 산실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빼어난 근대 건축물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2002년 등록문화재 제4호로 등록되었다. 회관 앞에는 서상일 선생의 동상과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있으며, 광복회에서 운영하는 독립운동전시실, 항일운동체험학습관 등이 있어 역사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폴더 대구 구 담배제초장(대구예술발전소) 대구 구 담배제초장(대구예술발전소) 대구 구 담배제초장(대구예술발전소) 대구 구 담배제초장(대구예술발전소) 대구 구 담배제초장(대구예술발전소) 일제강점기(1910~1945) 대구 구 담배제초장(대구예술발전소)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로에 위치한 구 대구 담배제조창은 일제강점기 담배가 제조되던 곳으로 대구 시민의 삶과 산업, 경제를 이끌어가던 대표적인 공간이다. 대구 지역 연초 제조의 역사는 1909년 인천에 있던 일본 담배회사인 마에노조(前之園) 공장이 대구 동인동으로 연초 제조시설을 옮겨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조선인 근로자만 600명이 넘게 큰무하는 큰 공장이었다. 1921년 ‘조선 연초제조령’이 공포된 것을 계기로 모든 민간담배공장은 조선총독부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고 같은 해 7월부터 조선총독부가 직접 경영을 맡아 공장과 창고를 태평로로 이전하였다. 광복 후 담배제조창은 그대로 정부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콘크리트로 건축된 5층의 이 공장 건물은 6.25 전쟁 후반에는 이재민들의 수용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전매청과 한국담배인삼공사의 대구 연초제조창으로 존속되다가 1999년에 폐쇄되었다. 이 중 별관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2012년 대구 예술발전소가 되었다.

폴더 서문시장 서문시장 서문시장 서문시장 서문시장 연도미상 서문시장 대구광역시 중구 큰장로에 위치한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부터 형성된 유서 깊은 시장이다. 원래 이름은 대구장이나 대구읍성 서문 밖에 위치한 시장이라고 하여 서문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문시장은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막는 일제의 정책에 따라 대구 읍성 서문 밖으로부터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6.25 전쟁이 끝나자 서문시장은 특수를 맞게 된다. 대구 지역의 직물과 섬유산업을 기반으로 포목의 도매와 소매에 있어 전국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으로 발돋움을 한 것이다. 또한 시장 내에서 철물 도매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1950년~1960년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폴더 교동시장 교동시장 교동시장 교동시장 교동시장 일제강점기(1910~1945) 교동시장 대구광역시 중교 교동길에 위치한 교동시장은 대구지역의 유서 깊은 재래시장이다. 시장 안에는 귀금속 골목, 전자상가 등 전문성이 높은 업종부터 구제 의류, 수입물품, 오디오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교동시장이 정식 허가를 받은 것은 1956년이다. 교동시장은 6.25 전쟁 당시 이 일대가 피난의 중심지였던 덕분에 군수품을 기반으로 미제 군복이나 수입 과자 등을 팔며 양키시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는 전쟁 후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들이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보따리 무역’으로 통칭되는 개인 판매상들이 몰리면서 1970년대~80년대에 호황을 누렸으며 전자산업의 호황과 함께 교동시장은 1980년대 대구지역 전자제품의 메카가 되었다. 한때는 400여개가 넘는 전자상점이 있었으나 산격동에 생긴 전자제품 유통상가와 온라인 쇼핑의 득세로 현재는 예전만큼 활발하지는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