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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카이브 역사문화경관

총 "57건"

폴더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안산다문화마을특구 2010년대 안산다문화마을특구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하고 있는 안산다문화마을특구는 1990년대 안산 일대 공업단지에서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하면서 형성된 국내 대표적인 다문화마을이다. 안산시에서는 2008년 전국 최초로 외국인 주민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문화 홍보학습관도 운영하여 전시와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산시 다문화마을은 2009년에 특구로 지정되어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의 장으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폴더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 2010년대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되었던 동포들이 영구 귀국하여 정착한 보금자리다. 1997년부터 한국 적십자사와 일본 적십자사의 주도로 사할린 동포들이 영구 귀국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고 2000년에 처음으로 영구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정부에서 제공한 안산시 고잔동 소재의 10층짜리 아파트에 정착하여 현재 이 아파트 8개 동에는 사할린 동포들만 거주하고 있다.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는 사할린 동포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정착한 지역으로 현재 5백여 세대 7백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안산 고향마을은 2011년 행복학습관을 개관하여 사할린 동포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교실과 노래교실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폴더 여운형 생가 여운형 생가 여운형 생가 여운형 생가 여운형 생가 2010년대 여운형 생가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여운형 생가는 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인 몽양 여운형이 태어난 집이다. 여운형은 일제강점기 신한청년당의 당수,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외무차장을 역임하였고 건국동맹 등의 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좌우대립의 정치투쟁에 휩싸여 실패하고 결국 1947년 암살을 당했다. 여운형 생가는 1908년 여운형이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떠난 후 점차 퇴락하여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2011년 복원 되었고 1930년대 이후 서울 계동 집에서 사용했던 가구들을 기증받아 전시해 놓았다. 현재는 생가 앞에 2011년 몽양 여운형 생가기념관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폴더 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2010년대 신익희 생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신익희 생가는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해공 신익희가 태어난 집이다. 신익희는 3·1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정 기초위원으로 활약하는 등 임시정부 구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차장과 외무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 부의장과 국회의장을 지냈고 1956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신익희 생가는 1922년 대홍수에 파손된 것을 현 위치로 옮겨 1925년에 다시 지었으며 200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전형적인 조선후기 경기 지역 중소지주의 목조 기와집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만앙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폴더 답동성당 답동성당 답동성당 답동성당 답동성당 2010년대 답동성당 인천시 중구의 답동성당은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개항지에 성당 건축이 가능해지자 파리외방전교회 블랑 주교는 성당 건립을 위해 제물포에 코스트 신부를 파견하였다. 1889년 7월 임시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설립 당시 이름은 제물포본당이었다. 1893년 7월 성당 공사를 시작하여 1896년 본당을 축성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37년 기존 건물을 개축 공사한 것이다. 답동성당은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관을 갖고 있으며 예배당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부속 건물로는 수녀원과 주교관 등이 있다.

폴더 평택항 평택항 평택항 평택항 평택항 2010년대 평택항 평택항은 경기도 평택시와 충남 당진시에 걸쳐 있는 국제무역항이다.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와 수급 구조의 합리화를 위한 기지 확보차원에서 1981년 착공되고 1986년 준공되었으며 액화천연가스선이 처음 입항하면서 제1종 지정항인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였다. 평택항에는 동부두와 서부두, 평택항 홍보관, 마린센터, 국제여객터미널 등이 있다. 국제여객터미널은 2001년 준공되어 현재 5개의 선사가 여객선을 운용하고 있으며 5개 항로를 운항하고 있다. 평택항 홍보관 전시실에서는 평택항의 역사와 동북아 중심 항구로서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고, 전망대에서는 평택항을 조망할 수 있다.

폴더 인천역 역사 인천역 역사 인천역 역사 인천역 역사 인천역 역사 2010년대 인천역 역사 인천역은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철도의 종착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6.25전쟁 때 역사가 불타버려서 1960년에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으며 1974년 수도권 전철역 1호선 개통과 함께 전철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기역명은 차이나타운이며 인천역 길 건너편에 차이나타운 입구가 위치하고 있다.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천역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역 광장에는 2012년 건립된 한국 철도의 탄생역이라는 기차 모형 석조가 있다.

폴더 인천예술회관 인천예술회관 인천예술회관 인천예술회관 인천예술회관 2010년대 인천예술회관

폴더 구월동로데오거리 구월동로데오거리 구월동로데오거리 구월동로데오거리 구월동로데오거리 2010년대 구월동로데오거리 인천 구월동에 위치한 로데오거리는 젊은 소비층을 대상으로 식당, 주점, 의류매장 등 상권 들어선 번화가이다. 주변에는 인천종합터미널과 백화점, 영화관이 있다.

폴더 구월농산물도매시장 구월농산물도매시장 구월농산물도매시장 구월농산물도매시장 구월농산물도매시장 1990년대 구월농산물도매시장 1994년 1월에 개장한 인천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은 전국 각 지의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인천 대규모 농산물 시장이다. 2019년에는 확대, 이전할 예정이다.

폴더 구 인천시민회관 구 인천시민회관 구 인천시민회관 구 인천시민회관 구 인천시민회관 1970년대 구 인천시민회관 인천시민회관 터는 인천지역 최초의 시민회관이 있던 자리이다. 1974년 개관한 인천시민회관은 인천시민을 위한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개최되었던 종합공연장으로 인천 문화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인천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합창단, 인천시립무용단, 인천지역 민간 극단과 악단 등 인천의 문화예술 단체들의 공연 뿐 만 아니라, 1981년 인천시의 직할시 승격 축하행사, 인천 5.3민주항쟁 등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인천시민회관은 인천의 새로운 종합문화공간인 인천종합문화회관이 1994년 개관함에 따라 점차 쇠락하여 2000년 9월에 철거되었다. 시민회관 터에는 '옛 시민회관 쉼터'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공원 한쪽에 '인천 5.3민주항쟁 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폴더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대한제국(1910)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 이후 130여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인천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은 일본과 청나라의 조계지가 있어 각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근대 초기의 건축물과 개항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폴더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부영공원은 2002년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1953년에는 부평 반공포로 수용소, 1945년부터 28년간은 주한 미군의 캠프마켓 등으로 사용되었다. 2002년에 체결된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에 이 부지를 반환했다. 현재는 문화재 조사를 위해 전면 폐쇄되었다.

폴더 부평역 부평역 부평역 부평역 부평역 1990년대 부평역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하고 있는 부평역은 1899년 9월에 인천 제물포와 서울 노량진을 잇는 경인성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하였다. 부평역 일대 시가지는 1969년 부평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고 교통이 발달해 있어, 인천과 서울을 잇는 주요 관문으로서 인천 북서부권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유동인구가 많은 부평역 일대는 부평역과 연결된 부평지하상가와 지상의 쇼핑센터, 상점가 등 상권이 발달해 있어 인천지역의 주료 상권 중 하나로 꼽힌다.

폴더 애관극장 애관극장 애관극장 애관극장 애관극장 일제강점기(1910~1945) 애관극장 애관극장은 1895년 인천 경동 네거리에 '협률사'라는 이름의 공연장으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협률사에서는 인형극, 신파연극, 창극, 남사당패 등의 공연을 상연하였다. 그 후 극장의 명칭을 잠시 축항사로 바꿨다가 1925년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의미의 '애관(愛館)'으로 개명하였다. 6.25 전쟁 때 화재로 손실되어 이후에 재개관한 애관극장은 영화와 악극을 함께 상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며, 종종 강연회와 연주회를 여는 등 시민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로서의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2004년에는 전면 개.보수를 통해 5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재탄생했다. 애관극장은 오랜 역사를 지닌 극장인 만큼 현재까지도 지역 영화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폴더 인천시청 인천시청 인천시청 인천시청 인천시청 광복~1950년대 인천시청 인천시 남동구에 위치한 인천광역시청은 인천의 자치행정을 총괄하는 행정기관이다.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1949년 8월 15일 인천시청으로 출범하여, 인천직할시청을 거쳐 1995년 1월 1일 인천광역시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폴더 인천 중구청 인천 중구청 인천 중구청 인천 중구청 인천 중구청 1960년대 인천 중구청 인천 중구 관동에 위치한 인천 중구청 건물은 1933년에 인천부청사 건물로 신축되었다. 광복 이후에 인천시청사로 사용되다가 1985년 인천시청이 현재의 구월동 신청사로 이전하면서 현재까지 중구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개항 이후 조계지가 형성되면서 1883년에 중구청 현 건물 이전에 구 일본영사관이 세워졌으며 1910년부터는 인천부청사로 사용되다가 1933년에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본 건물은 2006년 4월 14일 등록문화재 제249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인천종합터미널 인천종합터미널 인천종합터미널 인천종합터미널 인천종합터미널 1990년대 인천종합터미널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인천종합버스터미널은 1975년 9월에 용현동에서 최초로 개업하여, 1997년 11월 현재 위치인 관교동으로 이전하였다. 고속버스, 시외버스, 광역버스 모두 이 터미널을 이용하고 있다. 인천교통공사는 재정난 해결을 위해 2012년 9월 터미널을 롯데그룹에 매각하였다.

폴더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 개항~대한제국(1910) 제물포구락부 인천시 중구 송학동의 구 제물포구락부 건물은 제물포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1901년에 세워졌다. 원래 명칭은 '제물포클럽(Club)'이었으나 '클럽'이 일본식 가차음인 '구락부'로 변한 것이 오늘날까지 굳어져 왔다. 조계는 각국의 강력한 행정권과 영사재판이 행해지던 치외법권 지구로,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된 이후, 인천 제물포에 각국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외국인들은 공식적으로 제물포에 거류할 수 있게 되었다. 조계지의 외국인들은 1889년 자치의회에 해당하는 '신동공사'라는 기구를 출범하고, 1901년 러시아의 건축가 사바틴(Afanasy Ivanovich Seredin-Sabatin, 1860-1921)에게 설계를 의뢰해 회관 건물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조계 제도가 폐지된 후 기능을 상실해 1913년 이후 일본재항군인연합회, 일본부인회가 사용하다가 광복 직후에는 미군 장교 클럽, 1947년부터는 대한부인회 인천지회, 6.25 전쟁 중에는 북한군 대대본부와 미군 사병 클럽으로 사용되었다. 1952년 7월 이후에는 시의회, 교육청, 박물관이 함께 사용하다가 1990년부터 중구문화원, 2007년부터는 인천시문화원연합회가 사용중이다. 1993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한국수출산업단지 한국수출산업단지 한국수출산업단지 한국수출산업단지 한국수출산업단지 1960년대 한국수출산업단지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립과 함께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이다. 수출 지향적 공업화 정책에 따라 1963년 한국수출산업공단의 창립과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 제정 등이 진행되었다.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는 서울시 구로구에 1개 단지, 금천구 가산동 일대에 2개단지, 인천시 부평구와 서구 일대에 3개 단지 등 총 6개 단지로 구성되었다. 인천 남구 주안동 일대의 제5단지는 폐염전을 매립하여 조성되었다. 남구 도화동 인근의 제6단지는 인천비철금속공업단지 부지를 편입시킨 것으로, 위치적 특성 때문에 제5단지와 함께 주안국가산업단지로 불린다.인천지역의 산업단지는 197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통하여 경인지구의 공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수도권 지하철과 제1경인고속도로와 인접하여 수도권으로의 접근이 용이한 입지적 조건을 지니며, 최근 첨단업종, 정보통신 업종을 중심으로 산업 재배치를 추진하여 첨단산업단지로 개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