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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1980년대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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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이미지 보기 1980년대의 표정
1980년대의 표정
  • 사업연도 2017
  • 전시기간2017-10-17 ~ 2018-04-25
  • 장소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부출입구
  • 전시주제 '1980년대의 표정' 특별사진전
  • 전시구성 1부-새집짓기
    2부-슬픔과 분노를 넘어서
    3부-꿈틀꿈틀 성장의 힘
    4부-환호의 순간들
  • 소개의 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980년대의 표정’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준비했다. 1980년대를 담은 30여장의 사진들을 4가지 주제로 나눠 전시했다.
    1980년대는 ‘기억’에서 ‘역사’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가까운 과거이다. 1980년대에 일어났던 정치, 경제 분야의 사건들, 사람들의 삶에 밀착해서 일어난 사회문화적 변화들은 3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80년대를 돌아보고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전시된 사진에서 작가들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들’을 감상하고, 사진 속에 있는 1980년대의 사건들, 풍경들,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30여년 전 과거로 떠나는 흥미로운 시간여행을 하기를 기대한다.
KEYWORD

민주화    도시화    경제개발    스포츠    대중문화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전경 2010년대 / 2017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전경 '1980년대의 표정' 사진전이 개최된 부출입구 전경이다.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2010년대 / 2017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입구의 모습이다.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2010년대 / 2017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의 모습이다.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2010년대 / 2017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출구의 모습이다.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2010년대 / 2017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부출입구 사진전 전시장 기둥연출의 모습이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 1980년대 / 1981 서울 종로구 행촌동 산지가 많은 서울의 지형상 산비탈에 주거 지역이 많이 형성되었고, 이를 '달동네'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울의 많은 '달동네'들은 80년대 이후의 대규모 개발로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개발 중인 송파구 잠실 1980년대 / 1983 개발 중인 송파구 잠실 만성적인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3년 개포 지구와 목동 지구를 시작으로 1984년 과천 신도시, 1986년 서울 상계지구 등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개발이 진행된 지역은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공간이 크게 바뀌었다.

서울 중구 중림동 1990년대 / 1990 서울 중구 중림동 1980년대는 비교적 물가가 안정된 시기였지만 경제성장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결혼연령 진입 등으로 집값이 상승했다. 1988년-1991년 사이 서울 아파트값은 2.6배 뛰었다.

KBS 이산가족찾기에서 가족에 대한 사연을 설명하는 할머니 1980년대 / 1983 KBS 이산가족찾기에서 가족에 대한 사연을 설명하는 할머니 1983년 6월 30일, 6.25 특집으로 KBS에서 방송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을 시작으로 방송사의 모든 정규프로그램을 취소하고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진행되었다.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 당시 순국한 고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미망인의 모습 1980년대 / 1983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 당시 순국한 고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미망인의 모습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첫 방문지였던 미얀마(당시 버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 공작원의 폭탄 테러로 한국의 외교사절 및 보도진 17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평화의 댐 건설에 모금하는 초등학생 1980년대 / 1986 평화의 댐 건설에 모금하는 초등학생 1986년 10월말 정부는 북한이 건설할 거대한 금강산댐이 남한을 수공(水攻)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이를 막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 국민 모금운동이 진행되었다. 정부는 금강산댐의 저수량이 최대 200억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해 63빌딩 절반이 물에 잠긴다는 시뮬레이션을 동원하기도 했다. 당시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국민 모금액은 700억원에 달했고 1986년 10월 착공한 평화의 댐은 2005년 10월 완공되었다.

서울역 시위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는 청년 1980년대 / 1980 서울역 시위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는 청년 1980년 5월 '서울의 봄' 당시 10만여 명의 학생·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서울역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후 신군부가 민주화 요구를 탄압했다.

광주 5·18 묘역에서 형의 사진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긴 어린이 1980년대 / 1980 광주 5·18 묘역에서 형의 사진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긴 어린이 1980년 5월 29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상복을 입은 어린이가 민주화 운동 중 희생된 형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민족의 함성 1980년대 / 1987 민족의 함성 학생, 야당 정치인, '넥타이 부대'로 불린 일반시민이 주도했던 6월 민주항쟁은 민주주의 발전의 주춧돌이 되었다. 사진은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 찼던 1987년 11월, 고려대에 모인 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캐나다 수출을 위해 선적 중인 현대 자동차 포니 Ⅱ 승용차 1980년대 / 1983 캐나다 수출을 위해 선적 중인 현대 자동차 포니 Ⅱ 승용차 1987년은 승용차 수출 100만대를 돌파한 해이기도 했다. 첫 시작은 1976년 에콰도르에 택시로 판매된 현대자동차의 포니Ⅰ이었다. 1982년 출시된 포니 Ⅱ는 1983년 캐나다에 판매되어 큰 성과를 거뒀고, 1985년에 생산되기 시작한 후속 모델 포니 엑셀은 10년간 183만대를 수출되었다.

완공을 앞둔 63빌딩의 건설모습 1980년대 / 1980년대 완공을 앞둔 63빌딩의 건설모습 63빌딩은 완공되었던 1985년 당시 일본의 선샤인 빌딩(60층)보다 25m 높은 동양 최고 건물이었다. 63빌딩은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의 경제성장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정표) 역할을 해왔다.

구로동맹파업의 시작이 되었던 대우어패럴 시위 1980년대 / 1985 구로동맹파업의 시작이 되었던 대우어패럴 시위 1983년 말 정권의 유화조치로 노동운동이 일시적으로 활기를 띤 이후 1985년들어 다시 탄압을 받게 되었다.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3명이 구속된 이후 활발했던 구로지역의 노조들이 동맹파업과 지지투쟁을 통해 연대활동을 했다. 이 활동은 노동운동에서 점차적으로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정권을 규탄하는 투쟁으로 변하게 되었고 노동운동이 민주화를 위한 저항세력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현대자동차 직장폐쇄 공고문을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 1980년대 / 1988 현대자동차 직장폐쇄 공고문을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 1988년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이후 직장폐쇄 조치가 내려진 뒤 공고문을 바라보는 노동자의 모습이다.

프로야구 출범 원년 MVP 박철순 1980년대 / 1983 프로야구 출범 원년 MVP 박철순 프로야구가 시작한 1982년 MVP인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투수 박철순의 모습이다. 박철순은 1982년 다승 1위(24승), 평균자책점 1위(1.84), 한국 프로야구 최다 연승(22승)의 기록을 거뒀다. 하지만 1983년 2월부터 허리디스크가 악화되어 1983년 0승, 1984년 1승의 부진에 빠졌다. 여러차례의 부상에도 오뚜기처럼 재기한 그는 '불사조 박철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7년 은퇴하였고 두산베어스는 그의 등번호인 2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이 사진은 그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1983년의 모습이다.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1980년대 / 1986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한국은 서울아시안 게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중국에 이어 종합순위 2위에 올랐다. 특히 이 대회에서 육상 3관왕(800m, 1500m, 3000m)이 된 임춘애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당시 가난을 딛고 일어났다는 미담과 함께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말로 유명세를 탔지만 이후 오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서울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양궁 여자 단체팀의 미소 1980년대 / 1988 서울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양궁 여자 단체팀의 미소 1988년도 서울올림픽의 양궁 여자 단체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낸 윤영숙, 왕희경, 김수녕 선수(왼쪽부터)의 모습이다. 양궁의 김수녕은 1988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 외에도 1989년, 199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개인.단체 2연패를 했으며, 1989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여자 양궁에서 세계신기록 전관왕이 되었다. 김수녕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고, 8년 만에 복귀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대기록을 달성했다.

중림동 골목 1980년대 / 1980 중림동 골목 서울시 중구 중림동 골목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고무줄 놀이는 근대화 이후 100년여 동안 여자 아이들의 대표적인 놀이였으나 오늘날에는 그 모습을 찾기 쉽지 않다.

연세대 입시창구의 눈치작전 1980년대 / 1981 연세대 입시창구의 눈치작전 1981년 1월 서울 연세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접수대에 몰려든 수험생들이다. 대학생 수는 1980년대를 거치며 급격히 증가했다. 1970년에 146,000명에서 1980년에 402,000명으로, 1990년에는 1,040,000명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1950년대에는 문맹퇴치, 1960-1970년대에는 산업화와 중등교육, 1980년대 이후에는 대학교육으로 초점이 옮겨갔다.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에서 상봉한 모녀 1980년대 / 1983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에서 상봉한 모녀 1983년 KBS이산가족찾기 생방송에서 상봉한 모녀의 모습이다.

1984년 서울 광화문 풍경 1980년대 / 1984 1984년 서울 광화문 풍경 1984년 서울 광화문 일대의 모습이다.

감옥의 친구들과 함께 졸업하고 싶어요'1987년 서울대 졸업식장의 목소리 1980년대 / 1987 감옥의 친구들과 함께 졸업하고 싶어요'1987년 서울대 졸업식장의 목소리 1987년 2월의 서울대학교 졸업식 장면으로, 그 해 있었던 6월 민주 항쟁을 4개월 정도 앞선 시점이었다. '감옥에 갇힌 친구들과 함께' 졸업하고 싶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