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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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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
  • 사업연도 2018
  • 전시기간2017-12-05 ~ 2019-01-17
  • 장소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 협력 및 공동주최거제시,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 전시주제 한국전쟁포로
  • 전시구성 1부 누가 포로가 되었나?
    2부 포로들은 어디로 갔는가?
    3-1부 포로들은 어떻게 관리됐는가?
    3-2부 포로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나?
    3-3부 포로 곁에 누가 있었나?
    4부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5부 결국, 포로들은 어디로 갔는가?
  • 소개의 글 한국 전쟁은 1951년 여름 휴전 협상에 돌입하면서 포로를 둘러싼 쟁점으로 2년 가까운 전쟁을 지속했다. 1949년 발효된 전쟁 포로의 대우에 대한 '제네바 제3협약'이 처음 적용된 전쟁이였지만, 열전(熱戰)의 소용돌이 속에 포로 처리 문제는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포로의 성격에 따른 분류와 재분류, 심문과 재심문, 강요된 선택과 교육이 이루어졌고, 수용소 내에서는 잇따라 참혹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마침내 포로들은 돌아간 자, 돌아가기를 거부한 자, 중립국을 선택한 자로 나뉘어졌지만, 이미 많은 포로들은 극단적인 이념 대결, 폭력과 차별 속에 고통 받은 뒤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은 누구였으며, 수용소의 생활과 그 이면은 어떠했는지, 포로의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마지막 남은 냉전의 땅에서 다시 한번 전쟁 포로들을 생각하고, 진정한 세계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이기를 바란다.
KEYWORD

6.25전쟁    한국전쟁    특별전



제네바 협약 광복~1950년대 / 1957.8.20 제네바 협약 외무부 정무국에서 발행한 전쟁포로의 대우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의 제네바 협약문서이다. 협약은 6편 143조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군 정규군 포로 광복~1950년대 / 1950.9.15 북한군 정규군 포로 1950년 9월 15일 인천 월미도에서 북한군들이 미 해병대에 포획되어 몸수색을 받고 있다.

북한군 소년병 포로 광복~1950년대 / 1951.5.29 북한군 소년병 포로 미 해병 제1사단 5연대에게 포로가 된 북한군 소년병들의 모습이다.

정규군의 겨울 복장 광복~1950년대 / 1951.10.17 정규군의 겨울 복장 겨울옷을 입은 북한군, 중국군 포로와 국군 병사가 서 있다.

북한인 포로 심문 광복~1950년대 / 1951.7.16 북한인 포로 심문 금강교(충남 공주 금강 다리) 부근 전투에서 생포된 북한인 포로를 국군과 미군이 심문하고 있다.

빨치산 포로 광복~1950년대 / 1951.3.24 빨치산 포로 국군 제2사단이 대덕산 전투에서 생포한 빨치산 단체 사진이다.

여성 빨치산 포로 광복~1950년대 / 1951.12.13 여성 빨치산 포로 20살의 여성 공산주의 지도자가 국군 헌병에게 심문을 받고 있다.

중국군 포로 광복~1950년대 / 1951.9.5 중국군 포로 미 제1기병사단 7연대에 포획된 중국군 포로들이 웃통이 벗겨진 채 포로수용소로 이동하고 있다.

흰옷을 입은 포로 광복~1950년대 / 1950.7.10 흰옷을 입은 포로 미군에게 붙잡혀 무릎을 꿇고 앉은 북한 포로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민간인인데 포로 취급을 받았다.

20,000번째 포로 광복~1950년대 / 1951 20,000번째 포로 미 제25사단에게 잡힌 "20,000번째 포로"의 기념사진.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광복~1950년대 / 1951.7.19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1951년 7월, 미 제2보병사단의 헌병들이 전선(戰線)으로 다가오는 한 피난민 가족을 검문하고 있다.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광복~1950년대 / 1951.7.19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피난민 남성이 양손을 위쪽으로 올리고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검사받고 있다.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광복~1950년대 / 1951.7.19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헌병이 피난민의 짐을 풀어헤치고 검사하고 있다.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광복~1950년대 / 1951.7.19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피난민 가족이 미 제2보병사단 포로구역에 들어가고 있다.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광복~1950년대 / 1951.7.19 피난민과 포로의 경계 수용소에 들어선 피난민 소녀에게 한 병사가 DDT를 살포하고 있다.

북한의 미군 포로 광복~1950년대 / 1951.12.18 북한의 미군 포로 북한의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던 미군 포로의 모습이다.

집결 수용소 광복~1950년대 / 1950.9.23 집결 수용소 1950년 9월 23일 어느 지역의 집결 수용소 모습이다.

임시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1951.11.26 임시 포로수용소 제95헌병대대가 관리했던 영등포 임시포로구역의 모습이다.

제2 부산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1950.7.4 제2 부산 포로수용소 미 8군 산하 제1 부산 포로구역으로, 지금의 부산시청 부근에 위치했다.

수용소 분포 지도 광복~1950년대 / 수용소 분포 지도 유엔군 관할 포로수용소 지도이다.

제1 거제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1 거제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1 거제 포로수용소 전경이다. 북한군, 중국군 장교, 사병, 여성 포로 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1A 저구리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1A 저구리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1A 저구리포로수용소 전경이다. 북한군 사병 송환수로를 수용했으며, 1개 수용동에 송환을 거부한 포로들을 수용했다.

제1B 용초도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1B 용초도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1B 용초도 포로수용소 전경이다. 북한군 장료 송환포로를 수용했으며, 1개 수용동에 송환 거부 포로를 수용했다. 1953년 8월 5일부터 1954년 4월까지 국군 '귀환집결소'로 이름을 변경해 다시 수용소를 운영했다.

제1C 봉암도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1C 봉암도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 유엔군 제1C 봉암도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 전경이다. 북한군 또는 의용군, 민간인 등 송환포로들을 수용했다.

제2 부산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2 부산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2 부산 포로수용소 전경이다. 북한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2A 부산병원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2A 부산병원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2A 부산병원 포로수용소이다. 북한군 송환 및 미송환 부상포로를 수용했다.

제4 모슬포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1952.7.18 제4 모슬포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3 모슬포 포로수용소 전경이다. 중국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4 영천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4 영천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 유엔군 제4 영천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에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다. 북한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4A 대구 노동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4A 대구 노동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4A 대구 노동 포로수용소를 지키는 유엔군의 모습이다. 북한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5 상무대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5 상무대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5 상무대 포로수용소에서 한국군과 유엔군 악수를 하고 있다. 북한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6 논산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1953.3 제6 논산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6 논산 포로수용소 입구 전경이다. 북한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7 마산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1953 제7 마산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7 마산 포로수용소 전경이다. 북한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8 제주시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8 제주시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8 제주시 포로수용소 전경이다. 중국군 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9 서부산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제9 서부산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9 서부산 포로수용소 전경으로, 지붕마다 메시지를 적어 놓았다. 북한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제10 부평 애스컴시티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1954 제10 부평 애스컴시티 포로수용소 유엔군 제10 부평 애스컴시티(Ascom city) 포로수용소에서 공군의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군 및 중국군 미송환포로를 수용했다.

광주 중앙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광주 중앙 포로수용소 미 군사고문단 산하 국군 관할 광주중앙 포로수용소이다. 지리산 등지에서 포획된 빨치산을 수용했다.

광주 중앙 제2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광주 중앙 제2 포로수용소 미 군사고문단 산하 국군 관할 광주중앙 제2 포로수용소이다. 지리산 등지에서 포획된 빨치산을 수용했다.

문산리 임시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 문산리 임시 포로수용소 유엔군 문산리 임시 포로수용소 전경이다. 송환포로 대기소 및 포로 설득장으로 쓰였다.

북한 포로수용소 분포 지도 광복~1950년대 / 1953.4 북한 포로수용소 분포 지도 북한군(12개소) 및 중국군(2개소) 관할 국군 및 유엔군 포로수용소를 표기한 지도이다.

관보 제389호 징발에 관한 조치령 광복~1950년대 / 1950.8.22 관보 제389호 징발에 관한 조치령 정부는 1950년 7월 26일 대통령령 긴급명령 <징발에 관한 조치령>과 8월 21일 <징발보상령>을 공포하였다.

알바니 작전 수용소 이전 광복~1950년대 / 1951 알바니 작전 수용소 이전 유엔군사령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포로를 관리하기 위해 추가 포로수용소 건설을 계획했고, <알바니작전>에 의해 거제도에 수용소를 건설했다.

알바니 작전 수용소 이전 광복~1950년대 / 1950.12.30 알바니 작전 수용소 이전 유엔군사령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포로를 관리하기 위해 추가 포로수용소 건설을 계획했고, <알바니작전>에 의해 거제도에 수용소를 건설했다.

거제도 수용소 설치 현지마을 소개 광복~1950년대 / 1952.7.18 거제도 수용소 설치 현지마을 소개 거제도 수용소가 설치되기 전 현지 마을을 소개(疏開)하는 모습이다.

거제도 수용소 설치 현지마을 소개 광복~1950년대 / 1952.7.18 거제도 수용소 설치 현지마을 소개 거제도 수용소가 설치되기 전 현지 마을을 소개(疏開)하는 모습이다.

거제도 수용소 건설 광복~1950년대 / 1952.7.29 거제도 수용소 건설 유엔군은 1952년 5월말 부터 포로들의 밀착 감시를 위해 500명 단위의 수용동을 재건축하기 시작했다

소개민 수용소 설치 광복~1950년대 / 1952.7.18 소개민 수용소 설치 1952년 5월, 미군용 천막을 씌우기 전 목재로 기둥을 만들어 구조를 세웠고, 한 개의 텐트에 약 30-40명의 주민(疏開民)들이 들어갈 수 있다.

군징발관계서류철 광복~1950년대 / 1952.7.18 군징발관계서류철 군징발관게서류철(軍徴發關係書類綴)의 표지이다. 거제포로수용소 철거 뒤 1955년 12월 20일 주민들은 정부에 가옥 및 토지 보상을 요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징발 해제증 1960년대 / 1965.4.8 징발 해제증 국방부가 1965년 4월 8일 용초도와 봉암도 주민들에게 포로수용소로 징발된 토지와 가옥에 대해 징발 해제를 확인해준 문서이다.

징발 해제증 1960년대 / 1965.4.8 징발 해제증 국방부가 1965년 4월 8일 용초도와 봉암도 주민들에게 포로수용소로 징발된 토지와 가옥에 대해 징발 해제를 확인해준 문서이다.

포로 심문 광복~1950년대 / 1951.9.18 포로 심문 57헌병 중대의 미군이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 북한군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