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건. 정범태 전민조 임응식 나경택 김녕만 고명진 6.10 5.18 4.19 4.19혁명 민주화
1960년대 / ‘3.15선거규탄’ 시위 행렬 이승만 대통령의 '3.15 선거 무효 규탄',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대와 합류한 시민들이 서울 태평로로 행진하였다.
1960년대 / 시내로 향하는 고려대생 시위대 고려대생들은 '대학의 자유를 보장하고, 민주 정치를 실천하라' 등을 주장하며 플래카드를 들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1960년대 / 경찰과 충돌한 고등학생 시위대 종로구 청진동에서 경찰과 충돌한 고등학생의 모습이다.
1960년대 / 돌진하는 시위대 시위대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찰 저지선을 뚫고 중앙청을 향해 돌진하였다.
1960년대 / 시위대에 쫒기는 경찰 경찰은 바리게이트 너머로 시민들에게 발포를 시작하였지만, 시위대가 물러서지 않자 도망치는 일이 벌어졌다.
1960년대 / 경무대 앞 경찰과 시위대가 경무대 앞에서 대치하던 중 시위대의 접근이 계속되어 간격이 10m로 좁혀지자 경찰은 발포를 하였다.
1960년대 / 분노한 시민과 군경의 대치 서울시내 전 대학생이 시위 군중과 함께 경무대로 밀려오자 정부는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1960년대 / 불타고 있는 차 4.19 당시 시위대에 의해 불 태워진 자동차의 모습이다.
1960년대 / 계엄군 입성 서울시청 앞으로 계엄군과 탱크가 들어오고 있다.
1960년대 / 탱크 위의 시민들 탱크를 접수한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다.
1960년대 / 시위대가 탈취한 이기붕의 관용차 이기붕의 관용차에 올라타 태극기를 흔들며 독재에 맞서 싸워 승리한 것을 자축하는 모습이다.
1960년대 / 수습의 길 시민들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후, 흥분과 감격을 안고 거리를 행진하였다.
1980년대 / 광장에 모인 시민 광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분수대를 중심으로 5만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 민주화 대성회'를 열고 있는 모습이다.
1980년대 / 횃불대행진을 마친 시민들 횃불대행진을 마친 학생들은 모두 전남도청 앞 분수대로 다시 모여서 어둠을 밝히며 조국의 민주화를 기원하였다.
1980년대 / 애국가 부르는 시민들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태극기를 중심으로 둘러서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1980년대 / 출동하는 계엄군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으로 광주 금남로와 충정로로 출동하고 있는 계엄군의 모습이다.
1980년대 / 계엄군에게 빌고있는 시민 무장 장갑차를 끌고 온 계엄군 앞에서 정장 차림의 시민이 무릎꿇고 빌고 있다.
1980년대 / 학생을 진압하는 계엄군 계엄군이 학생을 곤봉으로 힘껏 내려치고 있는 모습이다.
1980년대 / 시민과 군경의 대치 시민들은 계엄령 철폐를 외치며 광주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에서 공수부대원, 경찰과 대치하였다.
1980년대 / 시내버스 바리게이트 분노한 시민들은 시내버스를 앞세우고 전남도청을 향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1980년대 / 헌혈하는 시민들 부상자들로 붐비는 광주시내 각 병원에서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시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헌혈에 앞장섰다.
1980년대 / 임시 유해안치소 계엄군이 철수한 후 전남도청 안에 마련된 임시 유해안치소에서 가족들이 시신을 확인하고 넋을 잃은 채 울부짖고 있다.
1980년대 / 총기를 회수하는 시민군 도청 안에서 시민들이 탈취한 무기를 회수하고 분류하는 모습이다.
1980년대 / 상무관으로 운구되는 시신 도청에 안치되어 있던 희생자의 유해를 확인한 가족들이 상무관에 마련된 빈소로 운구하고 있다.
1980년대 / 마지막까지 저항한 시민군 전남도청을 점령한 계엄군이 27일 새벽 마지막까지 싸운 시민군들을 포박하여 전남도청 마당에 엎드리게 하였다.
1980년대 / 대대적인 검거 실시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을 붙잡아 놓고 계엄군이 M16 총으로 겨냥하고 있다.
1980년대 / 빈소가 차려진 상무관 많은 시민들은 계엄군이 쏜 총에 무참히 죽었다. 빈소가 차려진 상무관에는 매일 시민들이 찾아와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1980년대 / 청소차에 실려 운구되는 시신 유가족들의 접근이 금지된 가운데 희생자들의 시신은 청소차에 실려 상무관으로 집결되었다.
1980년대 / 경계하는 여인 광주는 계엄군의 철수로 잠시 평화가 찾아온 듯 했지만 열흘간의 난리를 겪고 난 시민들은 작은 일에도 경계심을 드러내곤 하였다.
1980년대 / 희생자 임시 매장 5월 29일, 129구의 장례식이 거행된 이날 이후 망월동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이름이 되었다.
1980년대 / 단식투쟁 광주 민주화운동 3주년인 1983년 5월 18일 김영삼은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투쟁을 선언하였다.
1980년대 / 현장 '민족민주투쟁위원회 결성식'을 마친 중앙대 학생들이 후문으로 진출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였고, 학생들은 화염병을 투척하였다.
1980년대 / 참을 인(忍) 신민당 개헌대회에서 전경들이 인(忍)자가 쓰인 경찰 방패를 들고 서있다.
1980년대 / 고문철폐 사람들은 잔혹한 폭행과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군의 영정 앞에서 '고문철폐', '고문반대'라고 쓰인 두건을 쓰고 시위를 하였다.
1980년대 / 경찰도시 박종철군 고문조작범국민규탄대회를 의식한 경찰들이 광화문 거리에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1980년대 / 명동성당 6.10 대회 후 명동성당 점거농성이 이어졌다. 농성기간 성당 밖에서는 연일 대학생들과 넥타이 부대의 지원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 학우의 울부짖음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이한열군을 살려 내라며 연세대학교 한 학생이 경찰의 방패를 부여잡고 울부짖고 있다.
1980년대 / 최루탄 광화문 사거리에서 故 이한열군의 장례행렬을 따르던 시민과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