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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96건"

폴더 양양 38선 돌파지 광복~1950년대 양양 38선 돌파지 강원도 양양군에 위치한 양양 38선 돌파지는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동해안에서 진격하던 국군 제3사단 23연대가 38도선을 최초로 돌파한 장소이다. 10월 1일 오전 국군 제3사단 23연대가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였는데, 이를 기념하여 양양군 38선 휴게소 주변 광정천 다리에 ‘돌파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휴전 후 1956년 9월 21일, 대통령령 제1173호 ‘국군의 날에 관한 규정’을 공표하고 38선 돌파일인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하였다. 양양군 안보테마공원은 6·25 전쟁 시 영동지역에서 창설된 7개 부대와 6·25 전쟁 후 영동지역에서 창설된 5개 부대의 창설 표지석을 모아 2013년 조성된 공원으로, 군단은 매년 이곳에서 창설지 기념행사와 38선 돌파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폴더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지 1990년대 강릉 북한잠수함 침투지 북한잠수함 침투사건은 1996년 9월 강릉 해안에 360톤 규모의 상어급 잠수함이 침투하던 중 어망에 걸려 표류하다 발견된 사건이다. 잠수함은 안인진 앞바다에서 좌초되었고, 잠수함에 타고 있던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 26명이 안인진 해변으로 침투하면서 49일 동안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통해 다수의 북한 잠수함 승조원들과 우리 군인, 민간인이 사망하게 되었다. 1996년 12월 29일 잠수함 사고에 대한 북한의 사과성명이 발표되었고 사망자 24명의 시신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되었다. 1997년 7월, 국방부는 사고현장에 공원을 조성하고 잠수함을 전시하기로 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2001년 9월 안보·통일 관련 전시물과 군사장비를 전시하는 강릉 통일공원이 문을 열었다. 현재 침투 현장인 안인진 바닷가에는 국군 해군의 주력함정으로 사용되다가 퇴역한 전북함과 북한잠수함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폴더 6.25남침사적비 광복~1950년대 6.25남침사적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위치한 6·25 남침사적비는 등명락가사(燈明洛伽寺)와 등명해수욕장의 중간에 세워진 비석으로, 비석이 세워진 곳은 북한군이 최초로 남침한 장소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북한군 제766부대와 제945부대가 임원진과 정동진으로 기습 상륙하였다. 동해안에 상륙한 연대 규모의 북한군은 상륙 후 인근에서 활동 중이던 공비 세력과 연결하여 국군을 분리, 고립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동해안을 지키던 국군 제8사단은 주문진에 국군 제10연대, 강릉에 사단사령부, 삼척에 제21연대를 배치해두고 있었다. 북한군은 그 중간지점인 강릉에 침투하여 국군의 연락망을 끊고 제10연대와 사단사령부의 배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동해안에 침투하여 민간인 2명과 경찰 1명을 사살하였다. 국군 제8사단은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군과 동해안에 침투한 북한군에 의해 고립되었으나 대관령 방향 퇴로를 확보하여 철수할 수 있었다.

폴더 영월 탄광문화촌 1970년대 영월 탄광문화촌 강원도 영월군 북면 밤재로에 위치한 탄광문화촌은 1960~70년대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던 영월군 북면 마차리의 탄광마을과 폐광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문화시설이다. 마차리 영월탄광은 1935년부터 개발되어 1972년에 폐광될 때까지 영월 제일의 탄전(炭田)이었던 곳으로, 영월화력발전소에 연료탄을 공급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폐광지역 관광 자원화 사업’에 따라 2009년 10월 20일에 문을 연 탄광문화촌은 1960년대 마차리 탄광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장소이다. 그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탄광생활관과 탄광산업의 역사를 체험해볼 수 있는 탄광갱도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더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일제강점기(1910~1945)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 위치한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이다. 태백은 국내 최대의 탄전지대로, 그 중 철암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석탄 산업사에 있어 상징적인 도시이다. 조선총독부는 국내 광산을 모두 조사한 후 광업권을 일본회사에 넘겼고, 전쟁이 가속화되던 1930년 이후 한반도의 자원 수탈이 본격화되었다. 1920년대 평양 인근의 무연탄과 함북의 갈탄이 개발되었고, 1930년대에 화순, 영월, 삼척, 은성탄광 등이 개발되었다. 광복 후에도 삼척탄광은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며 남한 최대의 무연탄광으로 발전하였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원탄저장 및 운반(벨트 콘베어), 경석 선별 및 파쇄운반, 1.2.3차 무연탄 선탄, 이물질 분리(침전), 각종 기계공급 및 수선창 등 5코스, 20개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근대 산업사의 상징적인 주요 시설로 인정받아 2002년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선정되었다.

폴더 태백 장성 이중교 일제강점기(1910~1945) 태백 장성 이중교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외곽에 위치한 태백 장성 이중교는 1935년 건설된, 태백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장성광업소 장성탄전은 단일탄광으로는 국내 최대의 탄전이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인 1936년, 삼척개발주식회사가 개광한 삼척탄광의 장성갱을 모태로 하여 1950년 대한석탄공사 산하의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로 분리된 곳이다. 장성광업소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한국의 경제개발을 모두 아우르는 역사적인 탄광으로 2016년까지도 연간 48만t의 무연탄을 생산하고 있는 태백지역 최대 고용규모를 갖춘 탄광이었으나 폐광될 예정이다. 태백 장성 이중교는 1935년 장성탄전에서 생산된 탄광을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서 설계된 다리로, 일제강점 말기에는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데 이용되었다. 전쟁 후 국가 재건과정에서도 장성광업소의 발전과 함께 태백 장성 이중교는 안정적인 석탄 에너지 공급에 이용되면서 공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폴더 구 사북탄광촌 1960년대 구 사북탄광촌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구 사북탄광촌은 1980년 사북사태가 발생했던 1980년대 최대 규모의 탄광지였다. 당시 사북탄광은 채탄량이 연간 160만 톤에 달하고 종업원 수가 삼천 명이 넘었던 국내 최대의 민영 광산으로, 생산하는 석탄의 양이 전국 채탄량의 9%에 달했다. 그러나 광부들과 관리인들의 삶은 천양지차로 달랐고 그에 따른 불만도 쌓여갔다. 전국광산 노조지부장 회의에서 42.75%의 임금인상안이 결의되었음에도 사북어용노조위원장 이재기 사북지부장이 회사 측과 비밀리에 20% 인상안을 합의해버리자 광부들의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1980년 4월 21일, 광부들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으로 이재기의 부인 김순이를 집단폭행하고 억류하였으며, 22일에는 사북읍의 안경다리에서 경촬과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사북사태는 군-검-경으로 구성된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에 의해 강압적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폴더 최규하 전 대통령 생가 연도미상 최규하 전 대통령 생가 최규하 전 대통령 생가는 강원도 원주시 봉산로에 위치한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최규하가 태어난 곳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에서 아버지 최양오와 어머니 이응선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주보통학교를 졸업한 1932년까지 생가에 거주하였다. 1994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원주시에 생가를 기증하였고, 1997년 원주시립박물관(현 원주역사박물관)을 건립하며 초가였던 생가 건물을 관리상의 이유로 비슷한 평면구조로 다시 고쳐 지으면서 지붕을 기와지붕으로 고쳐지었다. 2008년 원주시립박물관에는 최규하 대통령의 뜻을 후손에게 알리기 위한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지기도 했다.

폴더 을지전망대 1980년대 을지전망대 강원도 양구군 해안분지(펀치볼) 북쪽 남방한계선상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북단의 비무장지대 전망대이다. 해안면은 6.25 전쟁 중 벌어진 치열한 격전지 중의 하나이다. 양구 동북방 27km,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km 남쪽 지점에 해안분지(펀치볼)를 이루고 있는 가칠봉의 동쪽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을지전망대는 1987년 12월 12일 전경련회장단의 안보교육관 건립 제의에 의해 건립이 결정되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북한군의 초소와 경작지가 보이고 맑은 날에는 금강산 비로봉, 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까지 보이는 전망을 자랑한다.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해안분지(펀치볼)는 전망대 남쪽으로 펼쳐져 있다. 전망대 서쪽에는 과거 북쪽을 향해 심리전 방송을 하던 대형 스피커의 설치 흔적이 남아있다.

폴더 백마고지 전투지 광복~1950년대 백마고지 전투지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백마고지 전투지는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한국군과 미군이 중공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지이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기습으로 시작된 백마고지 전투는 10월 15일 전투가 종료된 열흘 동안 고지를 빼앗기고 탈환하며 12차례의 공방전을 펼쳤다. 공방전을 통해 백마고지는 황폐화되었고 중공군 1만명, 국군 3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국군 22만발, 중공군 5만 5천발의 포탄이 백마고지 지역에 쏟아진 것으로 통계된다. 백마고지 전투 후 중공군은 전투력을 상실해 재정비에 착수했고 국군 또한 심한 손실을 입었다. 미 공군 또한 전투 기간 동안 주간 669회, 야간 76회의 출격 기록을 세우며 중공군을 폭격해 중공군 제 38군은 총 1만 명이 넘는 전력 손실을 입어야했다. 10월 15일 새벽 국군 제28보병연대가 기습을 감행해 395고지를 완전히 탈환함으로써 전투는 종결되었다. 백마고지 전투는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의 하나로 꼽힌다.

폴더 자갈치시장 광복~1950년대 자갈치시장 부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자갈치시장은 부산의 대표적인 수산물 거래 시장이자 한국 최대의 수산시장이다. 자갈치시장 자리는 원래 남빈(南濱)이라는 이름의 돌로 이루어진 해변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이 지역이 매립이 되면서 남항이 건설되었고 부산 어업의 중심이 되었다. 1889년 부산수산주식회사와 부산어업조합이 생겨났고 1924년 남빈시장, 1935년 중앙도매시장이 개설되면서 수산물 유통이 이곳으로 모이게 되었다. 시장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이 소형 고기잡이배로 조업하여 해산물을 파는 노점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자갈치시장의 전신이다. 1911년 발포된 조선어업령에 따라 부산주식회사가 이곳에 2층짜리 목조건물을 짓고 경남지역의 수산물을 판매하였다. 이에 대응하고자 일본인과 조선인이 합작하여 부산어업조합이 설립되었고 현재의 남포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광복 이후 수산업법이 폐지되며 부산어업조합이 중앙도매시장의 어시장을 인수하였다.

폴더 보수동 책방골목 광복~1950년대 보수동 책방골목 부산광역시 중구 책방골목길에 위치한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 전쟁 후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당시 보수동 1가에 밀집한 서점들로 인해 형성된 골목이다. 전쟁 후 피난을 온 많은 난민들이 중구, 동구, 서구, 국제시장 근처에 터를 잡았고 이에 따라 피난을 온 학교들도 구덕산 자락 보수동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재개하게 되었다. 보수동 골목길은 자연스레 등하교길이 되었다. 광복 후에 빈터로 남아 있던 국제시장 근교에서 간이서점이 열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책들을 팔았으나 난전을 벌였던 장소가 개인 소유가 되면서 책장사들이 보수동 앞길로 모여들게 되었다. 보수동 서점 골목의 시초는 구 보문서점의 손정린 씨 부부로, 그들이 1950년 보수동 사거리 입구(현 글방쉼터)에서 책을 팔았던 것이 보수동 책방골목의 시작이었다. 현재 보수동 책방골목에 보유된 책은 약 400만여 권으로 추정된다.

폴더 부산민주공원 1960년대 부산민주공원 부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부산민주공원은 4·19 혁명, 부마 민주항쟁,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부산 시민의 민주의식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부산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공간이다. 독재와 부패에 항거하였던 역사를 배우고 과거를 기록하며 현재를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건립된 부산민주공원은 부마민주항쟁 20주년 기념일인 1999년 10월 16일에 개장하였다.

폴더 구 부산 미국문화원(부산근대역사관) 일제강점기(1910~1945) 구 부산 미국문화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광역시 중구에 있는 구 미국문화원은 현재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산하의 박물관이다. 1999년 사유지 교환 방식으로 부산광역시로 이관되어 현재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문화원 건물은 1929년 식민지 수탈기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축되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경제적 수탈을 위한 식민지 기구로 선진농법을 전수해주고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해준다는 명목아래 쌀과 토지, 노동력을 착취하던 기관이었다. 이 건물은 광복 이후 부산에 주둔한 미군들의 숙소로 이용되다가 1949년 무상으로 임대되어 미국문화원 건물로 사용되었다. 일제 식민 기구와 미군정 아래 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되었던 점 등의 역사성이 인정되어 2001년 5월 16일에 부산광역시기념물 제49로 지정되었다.

폴더 박상진 생가 연도미상 박상진 생가 고헌(固軒) 박상진은 1884년 12월 7일 경남 울산 송정동에서 박시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1년 중국 만주를 여행하던 중 당시 신해혁명이 진행되던 만주의 상황을 목도하였고 혁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양정의숙에서 근대적 신학문을 배우면서 사상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1912년 귀국하여 대구에 상덕태상회를 열고 곡물상과 연락망을 구축하면서 독립 자금을 마련하였다. 1915년 정보 연락과 군자금 조달 등으로 독립군을 지원하던 조선국권회복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친일적인 지주들의 행태를 척결하고자 1915년 7월 15일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반민족적 지주를 응징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민족독립을 달성하겠다는 취지의 단체로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개 항목을 원칙으로 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의 조직이 탄로되어 박상진은 대구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폴더 장생포 일제강점기(1910~1945) 장생포 1899년 러시아 태평양어업 주식회사가 정부로부터 포경 허가권을 양도받아 조업을 시작하고 장생포항을 고래 해체의 장소로 지정하면서 장생포는 포경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이후 포경업은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면서 일본의 주도하에 놓이게 되었다. 고래의 조업과 수출을 위해 1915년 포경기지가 정비되면서 장생포는 한반도 포경의 중심항이 되었다. 포경의 전성기는 1970년대로 20여척의 포경선이 장생포를 중심으로 조업을 해왔으나 1980년 과다한 포획으로 고래의 개체수가 급감하였고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상업포경을 금지하면서 포경업이 중단되었다. 이후 장생포는 고래문화 관광산업지가 되어 2005년 고래박물관, 2006년 고래연구소가 들어섰으며 2008년에는 국내유일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었다. 이어 2011년에는 고래생태체험관, 2012년 고래문화관을 개관하는 등 고래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이행하고 있다.

폴더 울산항 1960년대 울산항 울산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울산항은 1963년 개항한 항내수면적 1100만㎡ 규모의 무역항구이다. 울산항은 신라시대부터 국제무역항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일본과 무역하기 위한 삼포 중 하나인 염포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일제 강점기 울산은 장생포와 방어진이라는 양대 항구를 통해 어업전진기지로 사용되며 일반어업과 포경업, 수산물 가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다수의 대형 선박 정박이 가능하고 만조시간에 제한 없이 입항이 가능한 조건을 갖춘 울산은 1962년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특정 공업지구로 확정되면서 현대적 항만시설인 울산항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현재 울산항은 ‘고부가가치 창출 항만’사업과 중국과 일본 영토의 중간지점이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동북아시아 오일허브’로서의 육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폴더 울산석유화학단지 1970년대 울산석유화학단지 울산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울산석유화학단지는 제2차 경제개발계획에 의해 조성된 석유화학단지이다.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이후 석유화학의 중요성을 인지한 정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석유화학단지로, 1967년 석유화학공업 심의위원회와 석유화학공업추진회가 결성되면서 조성이 계획되었다. 단계별 조사를 거쳐 나프타분해공장을 중심으로 13개 공장건설을 확정하고 1968년 3월 22일 울산에서 울산석유화학단지 합동기공식이 거행되었다. 1972년 10월 31일 울산석유화학단지가 합동 준공되었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 석유화학공업의 일괄생산체계가 갖추어지게 되었다.울산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됨으로써 생산체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고 원료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졌다. 또한 제조와 수출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제조원가를 절감하면서도 폐기물을 경제적으로 소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폴더 구 유공정유(SK이노베이션 울산 CLX) 1960년대 구 유공정유(SK이노베이션 울산 CLX) 울산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구(舊) 유공정유는 1962년 설립된 대한석유공사를 전신으로 하며 1964년 국내 최초 제1석유공장이 가동된 곳이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출범과 함께 석유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정유공장이 필요하게 되었고, 외국법인인 KOSCO에 의해 독점되어 있던 석유공급의 한계를 타파하고 외화절약과 공업발전을 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 정부는 1962년 7월 대한석유공사법을 설립하고 대한석유공사를 건설하였다. 정부는 1963년 미국 걸프석유회사와 제휴를 맺고 공장 설립을 시작하여 1964년 4월 1일 국내 최초의 정유 공장을 가동시켰는데, 이것이 구 유공정유이다. 유공정유 공장이 가동되면서 경인에너지, 호남정유, 쌍용정유 등 정유 산업이 활발해지게 되었고, 이후 석유제품의 국내 생산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폴더 최현배 생가 연도미상 최현배 생가 최현배 생가는 외솔 최현배(崔鉉培)가 태어난 곳을 2008년에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12길에 복원한 곳이다. 최현배는 일제 강점기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한글 가로쓰기 체제와 한글의 토대를 확립한 『우리말본』의 저자이다. 최현배는 1894년 이곳에서 태어나 17세까지 살았다. 당시의 건물은 사라졌으나 2001년 12월 20일 최현배의 생가가 울산시기념물 제 39호로 지정되면서 2008년 생가 건물이 복원되었다. 건물의 복원과 함께 2010년 외솔 기념관이 생가 주변에 건립되었다. 외솔 기념관은 한글학자 기념관으로서는 최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