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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참전용사 초도 미군 1·4후퇴 인천상륙작전 LST 미군기지 제5공군
광복~1950년대 /
1952-53.
소사리 마을의 남자아이
소사리 마을 길가의 남자아이이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초도의 아이들
초도(椒島) 소사리의 아이들이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초도 소사리 학교 건물
초도(椒島) 소사리에 있었던 학교 건물이다. 건물은 유리창 없이 지어진 상태였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마을 주민
초도(椒島)의 마을 주민이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목재 더미 옆의 남성
한 남성이 목재 더미 옆에 앉아 있다. 남성은 땔감으로 쓸 나무를 집으로 옮기기 위해 지게를 이용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소년들
초도(椒島)의 소년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통역관 백혜민
초도에서 기증자 윌리엄 코크런의 통역을 도와주었던 백혜민이다. 마을 주민의 소달구지를 얻어 타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짚더미를 이고 가는 여인들
마을 주민들이 짚더미를 머리에 이고 논밭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소사리 마을과 여자아이
윌리엄 코크런이 초도(椒島)의 소사리 마을을 지나던 중 사진을 찍은 마을의 여자아이이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소사리 마을의 아이들
초도(椒島) 소사리 마을의 아이들이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초도 해안에 정박 중인 어선
초도(椒島) 소사리 마을 해안에 정박 중인 어선들이다. 소규모의 어항으로 각종 물품들이 배를 통해 드나들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배를 만드는 사람들
초도(椒島) 주민들이 배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소사리 마을을 지나는 여성들
마을 여성들이 소사리 마을의 길목을 지나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새참을 먹는 남성
초도(椒島)의 미군용 벙커를 짓는 일꾼이었던 한국인 남성이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지게꾼
한국인 남성이 지게를 매고 서 있다. 남성의 바로 뒤로는 미군이 초도(椒島)에 설치한 레이더 장치의 안테나가 작동하고 있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이장할 묘지의 땅을 파내는 사람들
마을 주민들이 미군 기지 인근에서 이장할 묘지의 땅을 파내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파묘
마을 주민이 이장할 묘지의 땅을 파는 작업 중, 관을 발견하였다.
광복~1950년대 /
1952-53.
관을 꺼내는 사람들
마을 주민들이 이장할 묘지의 땅을 파는 작업 중 관을 발견하고 꺼내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멍석으로 관을 감싸는 사람들
묘지에서 빼낸 관을 멍석으로 감싸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관을 옮기는 마을 주민들
관을 다른 묘지로 옮기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관을 옮기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팽이 치는 소년
길가의 소년이 줄이 달린 막대를 쳐서 팽이를 돌리고 있다. 팽이를 세게 칠수록 팽이는 더 빨리 돌았다.
광복~1950년대 /
1952-53.
길가에서 음식을 구워 파는 여성
한 여성이 길가의 천막 안에서 석쇠 위에 음식을 굽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쇠를 달구는 대장장이
초도(椒島) 소사리 마을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는 모습이다.
광복~1950년대 /
1952-53.
마을 제재소
마을 주민들이 널빤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장은 항구가 위치한 곳 인근으로 작업장 뒤로는 소사리 마을이 보인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카메라를 든 남성과 소년
카메라를 든 남성이 빨간색 옷을 입은 남자아이의 사진을 찍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미군 수송선을 바라보는 아이들
언덕 바위 위에 올라선 아이들이 미군의 LST 수송선이 있는 해안가 쪽을 바라보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초도의 여자아이들
초도 해안가 인근에서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군용트럭과 지게꾼
미군의 신형 GI 트럭 옆으로 지게를 진 마을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쌀 포대를 이고 가는 마을 여성들
두 명의 여성이 미군으로부터 받은 쌀 포대를 머리에 지고 가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초도 해안에 접근하는 어선
초도(椒島)의 해안가로 어선이 들어서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초도 국민학교
초도(椒島)의 국민학교 건물이다. 초도 국민학교 건물은 주말이면 기독교 신자들을 위한 주일 예배가 열리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찬송가를 부르는 남성 신도들
초도(椒島) 국민학교에서 열린 초도 장로교회의 주일 예배 날 남성 신도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광복~1950년대 /
1952-53.
초도 장로교회의 목사들
초도(椒島) 장로교회의 목사들이다. 초도 장로교회 신도들 중 대부분은 북한에서 초도로 피난을 온 피난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