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으로 가는 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구성

『광복으로 가는 길,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여 간행한 자료집이다. 이 자료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자료는 중국과 미주, 그리고 국내에서 생산된 문서ㆍ서한ㆍ사진ㆍ유물로 모두 131점에 이른다. 그 가운데 임시의정원 태극기를 비롯한 25점은 201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실제 미주와 국내에서 직접 생산된 자료는 많지 않고, 중국에서 생산된 자료의 상당수는 김붕준과 그 장남 김덕목이 소장하였던 것이다.
김붕준은 초기부터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며 한국독립당ㆍ한국국민당ㆍ신한민주당 등에 관여하였고, 임시의정원 의장과 국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그는 상하이에서 활동하다가 1930년 전후 양우조 등과 함께 광저우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흥사단 원동위원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의 자녀들인 김덕목과 김효숙, 김정숙은 상하이 인성학교를 거쳐 중국인 중학을 졸업하고, 광둥성 광저우 소재 중산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였다. 미주의 자료는 국민회 관계 문건과, 중국의 임시정부 요인들이 미주 국민회 간부들에게 보낸 서한들이 중심이다. 공문뿐 아니라 개인 서신의 형태도 여럿이지만, 사신 역시 공문에 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대개가 임시정부의 상황을 전하며, 재정지원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서한은 중국에서 미주에 보낸 것이고, 미주에서 수신된 서한들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수집하여 소장한 것이다. 국내 자료는 순종 칙유와 3ㆍ1독립선언서, 그리고 조선총독부 관련 문건이다. 광복 이후 자료 몇 점도 포함되었다.
이 자료집은 자료를 ‘3·1운동과 임시정부의 태동’ㆍ‘대한민국임시정부 국체’ㆍ‘미주한인과의 서신 : 재정과 통합문제’ㆍ‘대외활동’ㆍ‘한국광복군’ㆍ‘광복과 환국’이라는 주제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부록 ‘사진으로 기억하다’는 김덕목이 소장하던 사진을 중심으로 배치하였는데, 중산대학 관련 사진도 여럿 포함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이 자료집에 수록된 자료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은 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반포된 ‘3·1독립선언서’이다. 그와 함께 임시정부의 헌법, 법령ㆍ조례ㆍ규칙, 공보, 독립공채 등의 자료가 수록되었다. 특기할 것은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서 1920년대 사용한 태극기를 비롯하여, 김붕준 일가가 소장하던 4개의 태극기이다. 아울러 임시정부의 제3차 개정헌법인 ‘대한민국임시약헌’(1927)으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헌법 전문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김붕준이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바 있으므로, 의정원 관련 자료도 여럿 남아 있다.
임시정부의 활동을 드러내주는 새로운 자료로, 1924년 5월 임시정부의 명의로 간행된 『보병조전초안』이라는 군사서적이 이 자료집에 수록되어 있다. 군무부 편집위원장 윤기섭이 주재한 이 서적은 군사훈련 교본인데, 임시정부에서 만주의 독립군과 협력하며 군사통일을 이루기 위한 작업으로 만들어졌다고 짐작된다. 김붕준의 자료 가운데에는 한중연대의 사례로 논의될 수 있는 문건들이 보인다. 또 『한국독립운동문류』(1942)는 임시정부 선전위원회에서 간행한 임시정부 자료집이다. 해방 직후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관한 참고문건』(1946)이라는 자료집이 간행되었음도 확인된다.
그리고 한국광복군 관련 자료가 여럿 포함되었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충칭에서 성립식을 가진 임시정부의 국군이었다. 배지와 수첩, 증명서와 같은 유물을 비롯하여, 관련 인사의 자료들이 보인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미주한인

임시정부가 미주의 대한인국민회에 보낸 자료 가운데, ‘국내외 동포에게 고하노라’(1931.10. 1)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자료인데, 오히려 이 자료를 받은 미주에서는 『신한민보』(1931.11. 5)에 그 전문을 한글로 실었던 것이다. 임시정부에서는 포고문 등을 『신한민보』에 게재해 주기를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많은 내용이 임시정부의 현황과 지원에 관련된 것이다. 특히 1930년대 말은 중일전쟁으로 임시정부가 이동하던 시기였으므로, 미주 지원과 관련하여 송금과 환전 등에 대한 방법도 통보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구와 차리석, 엄항섭의 서신이 많은 것이, 바로 이들이 미주한인과의 교섭을 맡았기 때문이다. 특히 김구의 서신이 여러 편 있어, 미주한인와 임시정부 관계를 재확인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미주에 거주하는 한인의 주소를 적은 수첩도 보인다. 임시정부가 중국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있던 배경의 하나는 바로 미주 한인들의 재정적 지원이었음이, 이 자료집에 수록된 미주 관련 자료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또 이승만이 미일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Japan Inside Out』(1941)과, 1942년 4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국여성민주회에서 행한 연설문이 남아 있다.

사진과 기억

부록으로 수록한 사진들은 김붕준과 김덕목이 소장하였던 것이다. 김덕목과 여동생들은 모두 광저우 중산대학을 졸업하였다. 모두 1932년에 입학하였는데, 막내 김정숙이 1936년에, 그리고 김덕목과 김효숙은 1937년에 졸업하였던 것이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그해 중산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이 모두 7인에 이르렀는데, 유일한 경우였다. ‘국립중산대학 제11계 필업동학록’이 바로 1937년도 중산대학 졸업앨범이다. 김창화ㆍ서상호ㆍ안병무ㆍ김강ㆍ김덕목ㆍ송면수ㆍ김효숙의 졸업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졸업하고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였다.
『광복으로 가는 길,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잘 짜인 자료집은 아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만으로 편집된 자료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근히 자료들을 마주하면, 광복을 위하여 투쟁한 선열들의 움직임과 생각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자기희생이 필요하였는가를 느끼리라 생각한다.

(집필 : 최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