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소장정보
UN-UN 4_42_1_7
영상요약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31번째 생일과 상하이 전승 기념행사가 열렸다. 한인애국단 단원 윤봉길이 폭탄을 투척하여 식장 일부가 폭파되고, 일본군 관계자들이 사상당하였다.
화면묘사
- 말을 타고 등장하는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일본군 관계자들
- 기념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 군을 사열하는 장교들
- 나란히 서 있는 (왼쪽에서부터) 우에다 겐키치, 시라카와 요시노리, 노무라 기치사부로, 시게미쓰 마모루의 모습
- 행사에 참석한 일본군과 외국인
- 폭발 소리와 함께 연기가 발생하는 장면
- 부상 당한 군 관계자를 단상 아래로 눕히는 모습
- 군중 사이로 진입해오는 차량과 뛰어가는 사람들, 단상 위와 그 주변을 살펴보는 군인들, 사람들을 통제하는 모습 등 폭탄 투척 직후의 혼란스러운 현장의 다양한 광경
해제
이 영상은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상대로 폭탄을 투척한 현장 상황을 담고 있다.
현장에 있었던 일본군 장교 및 민관 요인들의 모습을 비춰주며 시작되는 영상은 이후 폭탄의 폭발 소리와 함께 도망치는 사람들과 사상자를 수습하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일본 군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이어진다. 영상에 깔린 영어 나레이션은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본 자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으로부터 입수하여 공개한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1930년대 초 독립운동은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우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넘어 만주, 그리고 중국 본토 깊숙한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상해사변을 거치면서, 일제의 감시·통제를 피해 만주 및 중국 관내에서 활동해왔던 독립운동은 상당히 충격받았다. 한편 일제의 이간 전략(만보산사건, 1931)은 중국 내 독립운동이 협조와 지지를 얻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조선인과 중국인 사이에 발생한 폭력 사태와 극적인 언론보도가 상호 악감정을 빚어냄에 따라 조선과 중국은 당장 일제로부터 핍박받는 처지를 공유함에도 공동 전선을 꾸리기 어려웠다.
윤봉길 의사 의거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여 일제에 타격을 주고 나아가 독립운동을 고양한 대사건이었다. 의거일인 1932년 4월 29일은 히로히토 일왕의 31번째 생일을 기념함과 동시에 일제가 상해 점령을 자축하는 행사를 벌이는 날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애국단 소속 윤봉길은 수통형 폭탄을 투척하여 상해 파견 일본군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과 상해 거류민단장 가와바다 사다쓰구가 사망하게 했으며, 우에다 켄키치 중장, 일본해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요시사부로 중장, 주중 일본 공사 시게미쓰 마무루, 상해 총영사 무라이, 거류민단 서기장 도모노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로써 대외적으로 조선의 독립 의지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국 내 독립운동 역시 지원받게 되었다.
본 영상은 그간 텍스트로 전해지지 못했던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여 당대 독립운동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