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송환위원회와 인도군에 대한 반대시위를 담은 영상이다. 1953년 10월 6일 개최된 시민궐기대회 당시의 장면들을 촬영하였다. 서울 시내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중립국송환위원회 회장국인 인도군을 반대하는 내용의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화면묘사
- 자막 “KOREAN MOBS PROTEST INDIA’S ROLE IN TRUCE”, “Camera : Zenier, WARNER PATHE NEWS”
- “WE WANT THE KILLED PATRIOTS BODIES BACK”, “LONG live!! ANTI-Communist Patriots”, “WE DEMAND EXPULSION OF PRO-COMMUNIST” 등이 쓰인 팻말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행진하는 모습
- “UN MUST DENOUNCE INDIANS BARBARIC ACTS 印度軍(인도군)은 國外(국외)로 나가라”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여학생들
- 보신각 뒤뜰에서 현수막을 든 채로 모여 있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모습
해제
1953년 10월 6일 오전 10시 반부터 서울 시내에서는 대규모 시민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도군에 대한 반대의사가 표출된 것이었다. 당시 인도는 중립국송환위원회의 회장국이었기 때문에, 이 시위는 인도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중립국송환위원회의 활동 자체에 대한 반대 시위였다고 할 수 있다.
중립국송환위원회는 6·25전쟁 정전회담의 최대 쟁점이었던 포로송환 문제를 중재하기 위해 구성된 기구였다. 공산군 측은 제네바협정에 의거한 ‘강제송환’을 주장했고, 유엔군 측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는 ‘자원송환’을 내세우며 대립하였다. 결국 1953년 6월, 양측은 송환거부 포로를 중립국 감시 아래 처리하는 방안에 합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립국송환위원회를 구성키로 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과 동시에 중립국송환위원회가 만들어지고 활동을 시작했다. 유엔군 측은 스위스와 스웨덴, 공산군 측은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대표로 세웠고, 인도가 대표 회장국을 맡았다. 정전협정에 따라 양측의 송환거부 포로들은 1953년 8월 하순 비무장지대로 이송되어 중립국송환위원회 감독 아래 포로의 본국 정부 대표로부터 송환에 대한 ‘설득’을 들어야 했다. ‘설득’은 중립국송환위원회 회원국의 대표들과 억류 측 대표 앞에서 실시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운영을 책임져야 했던 인도는 5,500여 명의 군인 및 운영요원을 한반도에 파견했다. 영상에서 “인도군은 국외로 나가라”고 적힌 현수막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때의 군대는 중립국송환위원회 운영을 위해 파견된 군인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도군의 한반도 상륙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도가 친공적인 입장이어서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한반도 상륙을 금지했다. 이에 인도군은 인천에서 판문점까지 미군 헬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10월 6일의 시민궐기대회도 이러한 입장이 반영되어 있었다. 중립국송환위원회가 유엔군 측에 붙잡혀 있는 인민군 포로들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하려고 하기에 시민들이 이를 비난하고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것이다.
중립국송환위원회의 임무는 충분히 이루어질 수 없었다. 포로에 대한 설득 기간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송환거부 포로의 85%가 참여하지 못했다. 포로들의 반발과 양측의 포로통제 정책도 걸림돌이었다. 결국 22,604명 가운데 88명이 제3국(중립국)행을 택했으며, 나머지 포로들은 다시 유엔군과 공산군 측으로 인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