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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료 현대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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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아파트 서소문아파트 서소문아파트 서소문아파트 서소문아파트 1970년대 서소문아파트 1970년대 건립된 서소문아파트를 기록 촬영하였다.

성요셉아파트 성요셉아파트 성요셉아파트 성요셉아파트 성요셉아파트 1970년대 성요셉아파트 1970년대 건립된 성요셉아파트를 기록 촬영하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0-20년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외경과 전경 그리고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광화문의 모습을 2011년부터 2022년까지 기록하였다.

진주 형평운동 사적지 진주 형평운동 사적지 진주 형평운동 사적지 진주 형평운동 사적지 진주 형평운동 사적지 2020년대 진주 형평운동 사적지 형평운동은 1923년부터 일어난 백정들의 신분 해방 운동을 말한다. 1923년 4월, 일본에서 전개된 수평운동의 영향을 받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이학찬, 장지필 등 백정 출신과 강상호, 신현수, 천석구 등 양반 출신이 합심하여 조직을 결성했다. 당시 백정이라는 신분은 법제상으로는 해방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차별이 여전했다. 이에 백정 출신들은 사회적 차별을 해소할 것을 요구했는데, 여기에 개화 양반도 참여하는 등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올해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경상남도 진주시는 형평운동의 발현지로 알려져 있다.

1923년 형평사 창립대회에 참여하여 형평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끈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의 묘소, 1996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세워진 형평운동 기념탑, 망진산 봉수대에 세워진 신현수 선생의 송공비, 형평사 창립대회가 열렸던 옛 진주청년회관 자리로 추정되는 진주YMCA, 형평사 창립축하식을 거행한 진주극장(옛 진주좌)과 극장 앞에 설치된 형평운동 기념조형물, 일반인과 백정이 함께 예배를 올린 진주교회, 1919년 3월 18일 진주 기미독립만세 의거를 기념하기 위한 진주 기미독립만세 의거 기념종탑 등 현재 진주시에 있는 형평운동 사적지를 기록하였다.

청와대 청와대 청와대 청와대 청와대 2020년대 청와대 청와대는 1948년부터 2022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기거하는 관저이자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통령부와 관계된 행정기관이었다.

2022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74년 만에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주거 공간이었던 청와대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국민에게 개방되었다.

국민에게 개방된 청와대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2022 광화문광장 2022 광화문광장 2022 광화문광장 2022 광화문광장 2022 광화문광장 2020년대 2022 광화문광장 2009년 8월 1일 시민에게 개방되었던 광화문광장이 2022년 8월 6일 새롭게 단장하여 개장되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된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은 시민 단체와 전문가의 의견수렴 기간을 거친 뒤 광장 조성 및 광화문 일대 주변부 관리를 목적으로 서울시는 시민 공개토론회, 지역주민 현장토론회를 여는 등 원칙 및 방향을 마련하였다.

광장 동측 도로 확장정비공사(2020.11 ~ 2021.2)와 광장 시설물 조성공사(2021.5 ~ 2021.10) 총 2단계로 나뉘어 진행 되었다.

2022년 8월 12일 새롭게 개장된 광화문광장의 풍경을 기록하였다.

용산 나진상가 용산 나진상가 용산 나진상가 용산 나진상가 용산 나진상가 2020년대 용산 나진상가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용산전자상가는 컴퓨터, 전자, 전기 물품 등의 상점이 밀집되어 있는 구역으로 대형 상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용산전자상가의 중부에 있는 나진상가를 기록하였다. 나진상가는 휴대전화, 컴퓨터, 게임기 등 전자기기를 취급하고 있다.

충정아파트 충정아파트 충정아파트 충정아파트 충정아파트 일제강점기(1910~1945) 충정아파트 1930년대 건립된 충정아파트를 기록 촬영하였다.

남산 미쿠니 아파트 남산 미쿠니 아파트 남산 미쿠니 아파트 남산 미쿠니 아파트 남산 미쿠니 아파트 1930년대 남산 미쿠니 아파트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에 자리 잡은 미쿠니(三國) 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이다. 1930년대 한국 주재 일본인 직원 관사 용도로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 평범한 주택처럼 외관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건물의 기본 형태를 유지한 채 공동 주택(총 3층)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범 아파트 시범 아파트 시범 아파트 시범 아파트 시범 아파트 1970년대 시범 아파트 현재 서울특별시에 남아있는 1970년대 건립된 시범 아파트 단지를 기록 촬영 하였다.

함덕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 일제강점기 함덕해수욕장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시내에서 동쪽으로 14km 떨어져 있다. 동쪽으로 기생화산인 서우봉이 자리 잡고 있어 ‘함덕서우봉해변’이라고도 불린다. 원래는 바다였으나 수면이 하강하면서 바다 속에 있던 패사층이 드러나 해수욕장이 형성되었다. 1983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백사장의 길이는 900m, 폭 120m에 달한다. 하루 5만 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함덕(咸德)이라는 지명은 함씨 할머니가 놓은 돌다리인 함다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덕은 제주방언으로 너럭바위를 뜻한다고 한다. 입자가 고운 모래로 이뤄진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의 바다색을 지닌 함덕해수욕장은 매년 여름철 해수욕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제주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공장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공장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공장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공장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공장 1990년대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삼다수공장 1994년 3월 먹는샘물의 국내 판매가 전면 허용되고 1995년 1월 「먹는물관리법」이 제정됨에 따라 제주지역의 먹는샘물 개발사업이 추진되었다. 1995년 3월 설립된 제주도지방개발공사는 강수량이 풍부하고 취수원 주변에 오염원이 없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먹는샘물 제조용 지하수 취수정을 개발하기로 결정했고, 같은 해 12월 지하 420m에서 삼다수의 원수인 화산암반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98년 1월에는 제주삼다수 공장을 준공했는데 연간 195천 톤의 먹는샘물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설비를 구축하였다. 제주삼다수는 수질이 매우 깨끗해 고도의 정수처리과정 없이 여과 및 자외선 살균과정만 거친 후 생산되고 있다. 현재 연간 생산량은 833천톤(2018년 기준)에 달하며 국내 시장점유율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30여 개국에도 수출되고 있어 지역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임실 운암망루와 회문망루 임실 운암망루와 회문망루 임실 운암망루와 회문망루 임실 운암망루와 회문망루 임실 운암망루와 회문망루 1948년, 1951년 임실 운암망루와 회문망루 임실 운암망루와 회문망루는 광복 이후 여순사건을 비롯한 좌우 대립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이 지역 방어를 위해 건립한 망루이다. 당시 각지에 설치된 망루는 경찰과 방위대원의 근무처, 무기와 탄약을 보관하는 장소, 적의 동향을 감시하고 작전계획을 세우는 초소 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운암망루(임실군 운암면 소재)와 회문망루(임실군 덕치면 소재)는 위치가 약간 떨어져 있지만 설치 목적과 기능이 동일하며, 중앙 하부에 총안(銃眼)이 남아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회문망루(높이 5.6m, 둘레 14.9m)와 운암망루(높이 12m, 둘레 15.7m)는 생김새와 높이에 약간 차이가 있고, 건립 연대는 회문망루가 1948년 4월이고 운암망루는 1951년이다. 현재 회문망루는 3층이 유실된 상태이고, 운암망루는 시멘트로 축조한 외벽만 남아있다. 한국 현대사의 이념 대립양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문화유산으로서의 희소성을 인정받아 두 개의 망루 모두 2014년 9월 1일 같은 날 국가등록문화재 제595호와 제596호로 지정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1946년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시 연동에 위치하며, 제주도의 행정을 총괄하는 지방 행정 기관이다. 제주도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관할에 있었다. 광복 이후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제(濟州道制)가 실시되기를 원했고 지역유지들을 중심으로 도 승격 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도민들의 운동에 힘입어 1946년 7월 미군정청 법령 제94호에 의해 제주 지역에 도제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제주도는 9번째의 도가 되었다. 제주도가 도로 승격되면서 행정구역은 북제주군과 남제주군 2군 1읍 12면이 되었다. 1955년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 1981년 서귀포읍이 중문면과 통합되어 서귀포시로 승격되었다. 2004년 제주시와 북제주군,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을 통합하자는 혁신안이 만들어졌고, 2005년 7월 27일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혁신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2006년 7월 1일부터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여 기존의 시·군체제는 제주도시와 서귀포시 두개의 행정시 체제로 전환되었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청은 도지사와 2명의 부지사 아래 7국 34실과를 두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2개의 시, 7읍 5면 31동을 관할하고 있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1960년대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 지역에 처음 시장이 생긴 것은 1906년 제주 군수였던 윤원구(尹元求, 1839-1910)가 각 지역 중심마다 5일장을 개설하면서였다. 일제강점기에 서귀포항은 어업기지로 주목받았는데, 1916년 제주도의 지청이 이곳에 세워진 후 학교와 등기소 등 행정기관이 세워졌다. 1920년대 중반에 일본 어민과 잠수업자들이 이주했고, 일본인들이 통조림공장과 조개단추공장 등을 세웠다. 1932년에는 기존 도로 외에 서귀포에서 한라산 부근을 지나 제주시로 이어지는 도로가 생겼다. 그 결과 서귀포는 교통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교통의 편리성에 힘입어 광복 이후인 1960년에 서귀포의 상설시장인 '서귀포매일시장'이 생긴 것이다. 1980년대까지 지역의 대표 특산물인 감귤 산업을 토대로 번영을 누렸으나, 감귤 산업이 한계에 이르고 인구의 유출,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인해 시장이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2010년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선정된 '서귀포매일시장'은 이름을 '서귀포매일올레시장'으로 바꾸고 문화와 예술이 있는 전통시장으로 탈바꿈해 나가고 있다.

동문공설시장 동문공설시장 동문공설시장 동문공설시장 동문공설시장 1960년대 동문공설시장 제주시에 위치한 동문공설시장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재래시장이다. 제주항과 근접해 있어 광복 이후 부근의 상인들이 모이면서 형성되었으며, 이후 모슬포 국방경비대 제9연대가 창설되면서 육지와 제주도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54년 3월 대형화재가 발생하면서 현재의 동문로터리 일대로 이설하여 11월 재개장했는데, 동문공설시장은 2019년 기준으로 총 4층의 건물이며, 총 점포수는 약 960개, 상인 수는 약 2,700여 명이다.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이용자 수가 감소했으나, 최근 올레길이 개설되어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재래시장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 1970년대 중문관광단지 1973년 제주도 종합 관광 개발 계획에 따라 서귀포시 중문동, 색달동 일대에 조성된 종합 관광 휴양 단지이다. 중문은 제주시에서 가까운 곳으로 해수욕장이 있고 해안의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또한 천제연폭포를 비롯해 반경 16km 내에 한라산과 송악산, 산방산, 화순해수욕장, 안덕계곡, 천지연폭포, 정방폭포등 명승지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1978년부터 관광지로 개발했는데, 1978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된 1단계 사업은 63만평 규모의 중부 지역 개발 사업이었다. 1단계 사업으로 호텔 등 숙박시설, 골프장, 식물원, 박물관 등이 지어졌다. 이후 진행된 2단계 사업인 동부 단지 개발로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등이 지어졌다. 이 곳 컨벤션센터에서는 제1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2009년) 등 각종 대형 국제회의가 개최되기도 했다. 관광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중문관광단지는 내외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마라도 마라도 마라도 마라도 마라도 연도미상 마라도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하는 섬이다. 1883년(고종 20) 서귀포 대정읍 인근에 살던 가족이 대정 현감의 허가를 얻어 마라도에 들어가 정착한 후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마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마라도(馬羅島)’로 표기된 후 현재에도 이 표기를 따르고 있다. 마라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4.2km인 작은 섬으로 해안은 바다 바람에 오랫동안 침식되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섬이 작고 농경지가 부족하여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근래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민박집과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2019년 기준) 마라도에 사는 주민은 55세대, 약 100여 명 정도이다. 마라도의 관광명소로는 마라도 등대와 마라도 남쪽 끝의 대한민국최남단비 등이 있다.

제주항 제주항 제주항 제주항 제주항 일제강점기 제주항 1927년 개항한,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무역항이다. 1735에 김정(金政, 1670-1737) 제주 목사(牧使)가 전 도민을 징발해 산지항(현 제주항)과 별도항(현 화북항)에 방파제 80간(間=145m)과 둑을 쌓아 항만을 건설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제주도와 오사카를 오가는 정기선이 제주항으로 들어왔고, 이 시기에 제주항의 항만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 졌다. 1968년 제주항은 무역항으로 지정되었고, 1977년 내항정비사업 이후 대형 화물여객선인 카훼리가 제주항에 취항하게 되었다. 제주항은 크게 내항(제1-7부두)과 외항(제8-10부두), 인근 서부두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두와 서부두는 고깃배가 들어오는 항구이며, 제2부두∼제7부두는 연안여객터미널이 위치하며 여객선과 화물선이 출입한다. 제8부두∼제10부두는 국제여객터미널이 위치하며 크루즈 등 대형선박 여러 척을 동시에 댈 수 있다.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 1990년대 저지예술인마을 지역 주민들의 문화 향유와 제주 지역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해 조성된 마을이다. 저지리는 곶자왈이 있는 제주시 한경면의 중산간 마을이다. 해발 110-140m 사이에 저지오름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18세기 고문헌에 ‘저지촌’이라는 마을이름이 나오는데, 최소한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마을이다. IMF를 겪은 1999년 3월, 당시 북제주군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문화예술인마을을 조성하였다. 총사업비 46억 원을 투자해 저지리 일대 9만 9천여㎡ 부지를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 목적으로 분양하였다. 이후 '예술가의 집'이 하나, 둘 들어섰고, 2007년에는 마을의 중추 문화공간으로 제주현대미술관이 건립되었다. 2017년에는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작품과 동시대 활동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김창열미술관을 세웠다. 현재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는 미술관, 갤러리, 책방, 염색 공방 등 30여 개의 문화시설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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