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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료 현대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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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안성군청 구 안성군청 구 안성군청 구 안성군청 구 안성군청 일제강점기(1910~1945) 구 안성군청 구 안성군청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부터 안성군청이 이전되는 1966년까지 군청의 기능을 하였던 건물이다. 1928년 구 안성군청 건물을 현재 자리에 새로 지었다. 1928년 8월 23일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안성군청은 1928년 10월말경 준공 예정이며 본관 연와조 80평, 부속사 24평, 군수관사 27평 규모로 국비 1만 3,000원과 기부금 8,000원, 기지(基地)기부환산액 2,200원 등 총 2만 3,200원을 들여 신축한다"고 하였다. 현재 이 건물은 안성시에서 일제강점기 지어진 건물 중 드물게 남아있는 것이다. 이 건물 외에 근처 정미소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의 구조는 『2017년도 문화재위원회 제8차 근대문화재분과 회의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건물은 적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로, 목조트러스 지붕이다. 지붕은 전체적으로 우진각 지붕을 형성하고 있다. 외관은 외벽 일부를 정면으로 약간 돌출시켜 대형 아치형의 주출입구를 형성하였다. 외벽에 세로 형태로 긴 오르내리 창문을 규칙적으로 설치하였다. 중앙부 지붕 속에는 마루바닥의 다락층을 만들어서 문서고, 창고 등으로 활용하였다.”

이 건물은 1966년 이후에는 안성읍사무소로 쓰이다가 안성읍이 안성시로 승격되면서 안성1동 주민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관공서 건물이기 때문에, 2018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709호로 지정되었다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 일제강점기(1910~1945)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은 증기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로, 증기 기관차는 물을 공급받아야 운행을 할 수 있었다. 1914년 서울에서 원산까지 경원선 전 구간이 개통되었는데, 당시 경원선에는 연천역에만 급수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과거 연천은 경기 북부의 포구 시장권의 중심이었으나 철도의 발달로 전환기를 맞아 역 중심의 상권을 형성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연천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가는 주요한 길목이었기에 상업이 발달하였다. 경원선을 달리던 증기 기관차가 기관차 뒤에 달린 탄수차(炭水車)에 물을 공급받기 위해 정차해 있는 동안 연천역 주변에는 물물교환 등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상권이 형성되었다.

해방 후 연천역은 북한 통치 지역에 포함되었는데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남침을 위한 최전방 전진기지 및 보급기지로 사용하였으며, 북한군의 군사물자가 대량으로 수송되는 거점역으로 활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연천역은 미 공군의 주요 폭격 대상이 되었다. 당시 미 공군은 하얀색의 연천역 급수탑을 좌표로 삼아 폭격하였고, 그 흔적은 2019년 현재도 연천역 급수탑의 외벽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1950년대 디젤 기관차의 등장과 남북 분단 고착화로 인하여 철로가 북쪽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연천역 급수탑은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급수탑은 꼭대기에 물탱크를 두고 낮은 곳은 증기 기관차의 보일러로 물이 들어가게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연천역 급수탑은 현재 상자형 기계실과 원통형 급수탑 등 2기 급수시설이 남아 있다. 상자형 기계실은 콘크리트조로 지붕부, 벽체부, 기단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치형 출입구가 있다. 외관에 줄눈을 그려 벽돌로 쌓은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원통형 급수탑은 급수관 3개와 기계장치가 남아 있는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연천역의 여러 시설물들은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모두 사라졌으나 급수탑만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연천역 급수탑은 한국철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증기 기관차 관련 산업유산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2003년 등록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었다.

양평 지평양조장 양평 지평양조장 양평 지평양조장 양평 지평양조장 양평 지평양조장 일제강점기(1910~1945) 양평 지평양조장 지평양조장은 1925년에 건립된 양조장으로, 3대째 전통기법으로 전통주를 제조해오고 있다. 1951년 2월 지평리전투 당시에는 유엔군 프랑스 대대의 지휘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운영되던 양조장 건물이 대부분 일본식으로 조성된 것과는 달리 지평양조장은 한식 목구조를 바탕으로 일식 목구조를 접합한 절충식 구조로 당시 막걸리 생산공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7월 1일 등록문화재 제594호로 지정되었다.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안산다문화마을특구 2010년대 안산다문화마을특구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하고 있는 안산다문화마을특구는 1990년대 안산 일대 공업단지에서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하면서 형성된 국내 대표적인 다문화마을이다. 안산시에서는 2008년 전국 최초로 외국인 주민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문화 홍보학습관도 운영하여 전시와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산시 다문화마을은 2009년에 특구로 지정되어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의 장으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 2010년대 안산 고향마을 안산 고향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되었던 동포들이 영구 귀국하여 정착한 보금자리다. 1997년부터 한국 적십자사와 일본 적십자사의 주도로 사할린 동포들이 영구 귀국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고 2000년에 처음으로 영구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정부에서 제공한 안산시 고잔동 소재의 10층짜리 아파트에 정착하여 현재 이 아파트 8개 동에는 사할린 동포들만 거주하고 있다.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는 사할린 동포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정착한 지역으로 현재 5백여 세대 7백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안산 고향마을은 2011년 행복학습관을 개관하여 사할린 동포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교실과 노래교실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운형 생가 여운형 생가 여운형 생가 여운형 생가 여운형 생가 2010년대 여운형 생가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여운형 생가는 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인 몽양 여운형이 태어난 집이다. 여운형은 일제강점기 신한청년당의 당수,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외무차장을 역임하였고 건국동맹 등의 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좌우대립의 정치투쟁에 휩싸여 실패하고 결국 1947년 암살을 당했다. 여운형 생가는 1908년 여운형이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떠난 후 점차 퇴락하여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2011년 복원 되었고 1930년대 이후 서울 계동 집에서 사용했던 가구들을 기증받아 전시해 놓았다. 현재는 생가 앞에 2011년 몽양 여운형 생가기념관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2010년대 신익희 생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신익희 생가는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해공 신익희가 태어난 집이다. 신익희는 3·1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정 기초위원으로 활약하는 등 임시정부 구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차장과 외무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 부의장과 국회의장을 지냈고 1956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신익희 생가는 1922년 대홍수에 파손된 것을 현 위치로 옮겨 1925년에 다시 지었으며 200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전형적인 조선후기 경기 지역 중소지주의 목조 기와집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만앙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답동성당 답동성당 답동성당 답동성당 답동성당 2010년대 답동성당 인천시 중구의 답동성당은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개항지에 성당 건축이 가능해지자 파리외방전교회 블랑 주교는 성당 건립을 위해 제물포에 코스트 신부를 파견하였다. 1889년 7월 임시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설립 당시 이름은 제물포본당이었다. 1893년 7월 성당 공사를 시작하여 1896년 본당을 축성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37년 기존 건물을 개축 공사한 것이다. 답동성당은 전면에 3개의 종탑을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관을 갖고 있으며 예배당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부속 건물로는 수녀원과 주교관 등이 있다.

야탑역 야탑역 야탑역 야탑역 야탑역 2010년대 야탑역 야탑역은 성남시 야탑동에 위치한 분당선 지하철역이다. 야탑역 주변에는 성남종합버스터미널, 성남중앙도서관, 성남시시설관리공단, 성남시청 등이 있다.

렛츠런파크(경마공원) 렛츠런파크(경마공원) 렛츠런파크(경마공원) 렛츠런파크(경마공원) 렛츠런파크(경마공원) 1980년대 렛츠런파크(경마공원)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설립되었고, 1928년 신설동에 경성경마장이 개장되었다. 1942년 일본인에 의해 설립된 조선마사회가 전국의 경마구락부를 통합하였고, 광복 이후 한국마사회로 개칭되었다. 한국마사회가 1954년 뚝섬에 서울경마장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인 경마산업이 시작되었고, 현재의 렛츠런파크 서울이 과천경마장이라는 이름으로 1989년 9월 개장되었다. 지하 1층, 지상 6층으로 건설된 관람대에서는 약 7만 명의 관람객이 경마경기를 관람할 수 있으며, 각 층마다 마권 판매소와 식당, 매점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타원형으로 된 주경기장은 1,000m부터 2,300m의 경주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도 가족공원과 승마장, 마사박물관 등 일반시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공간을 갖추고 있다.

평택항 평택항 평택항 평택항 평택항 2010년대 평택항 평택항은 경기도 평택시와 충남 당진시에 걸쳐 있는 국제무역항이다.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와 수급 구조의 합리화를 위한 기지 확보차원에서 1981년 착공되고 1986년 준공되었으며 액화천연가스선이 처음 입항하면서 제1종 지정항인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였다. 평택항에는 동부두와 서부두, 평택항 홍보관, 마린센터, 국제여객터미널 등이 있다. 국제여객터미널은 2001년 준공되어 현재 5개의 선사가 여객선을 운용하고 있으며 5개 항로를 운항하고 있다. 평택항 홍보관 전시실에서는 평택항의 역사와 동북아 중심 항구로서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고, 전망대에서는 평택항을 조망할 수 있다.

DMZ 해마루촌 DMZ 해마루촌 DMZ 해마루촌 DMZ 해마루촌 DMZ 해마루촌 광복~1950년대 DMZ 해마루촌 파주 진동면 동파리 해마루촌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으로부터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실향민 정착촌 계획에 따라 조성된 마을로 6.25전쟁 이후 파주군에 편입된 마을이다. 해마루촌은 동파리를 우리말로 재해석해 지어진 이름이다.

인천역 역사 인천역 역사 인천역 역사 인천역 역사 인천역 역사 2010년대 인천역 역사 인천역은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철도의 종착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6.25전쟁 때 역사가 불타버려서 1960년에 현재의 역사를 준공하였으며 1974년 수도권 전철역 1호선 개통과 함께 전철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기역명은 차이나타운이며 인천역 길 건너편에 차이나타운 입구가 위치하고 있다.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천역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역 광장에는 2012년 건립된 한국 철도의 탄생역이라는 기차 모형 석조가 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문화예술회관 인천문화예술회관 2010년대 인천문화예술회관 1994년 4월 8일 개관한 인천문화예술회관은 대공연장, 소공연장 야외공연장,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문화예술 시설 외에도 5개국 동시통역 시설을 구비한 국제회의실이 있어 국제행사를 주관할 수 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은 시립교향악단, 시립합창단, 시립무용단, 시립극단 등 4개의 예술단을 운영하며, 예술정보실에서 시립예술단의 공연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구월동로데오거리 구월동로데오거리 구월동로데오거리 구월동로데오거리 구월동로데오거리 2010년대 구월동로데오거리 인천 구월동에 위치한 로데오거리는 젊은 소비층을 대상으로 식당, 주점, 의류매장 등 상권 들어선 번화가이다. 주변에는 인천종합터미널과 백화점, 영화관이 있다.

구월농산물도매시장 구월농산물도매시장 구월농산물도매시장 구월농산물도매시장 구월농산물도매시장 1990년대 구월농산물도매시장 1994년 1월에 개장한 인천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은 전국 각 지의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인천 대규모 농산물 시장이다. 2019년에는 확대, 이전할 예정이다.

구 인천시민회관 구 인천시민회관 구 인천시민회관 구 인천시민회관 구 인천시민회관 1970년대 구 인천시민회관 인천시민회관 터는 인천지역 최초의 시민회관이 있던 자리이다. 1974년 개관한 인천시민회관은 인천시민을 위한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개최되었던 종합공연장으로 인천 문화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인천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합창단, 인천시립무용단, 인천지역 민간 극단과 악단 등 인천의 문화예술 단체들의 공연 뿐 만 아니라, 1981년 인천시의 직할시 승격 축하행사, 인천 5.3민주항쟁 등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인천시민회관은 인천의 새로운 종합문화공간인 인천종합문화회관이 1994년 개관함에 따라 점차 쇠락하여 2000년 9월에 철거되었다. 시민회관 터에는 '옛 시민회관 쉼터'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공원 한쪽에 '인천 5.3민주항쟁 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대한제국(1910)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 개항 이후 130여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인천 개항장근대역사문화타운은 일본과 청나라의 조계지가 있어 각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근대 초기의 건축물과 개항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광복~1950년대 부영공원(구 부평 포로수용소)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부영공원은 2002년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1953년에는 부평 반공포로 수용소, 1945년부터 28년간은 주한 미군의 캠프마켓 등으로 사용되었다. 2002년에 체결된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미군은 대한민국 정부에 이 부지를 반환했다. 현재는 문화재 조사를 위해 전면 폐쇄되었다.

부평역 부평역 부평역 부평역 부평역 1990년대 부평역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하고 있는 부평역은 1899년 9월에 인천 제물포와 서울 노량진을 잇는 경인성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하였다. 부평역 일대 시가지는 1969년 부평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고 교통이 발달해 있어, 인천과 서울을 잇는 주요 관문으로서 인천 북서부권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유동인구가 많은 부평역 일대는 부평역과 연결된 부평지하상가와 지상의 쇼핑센터, 상점가 등 상권이 발달해 있어 인천지역의 주료 상권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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