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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카이브 역사문화경관

총 "521건"

폴더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1946년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은 제주시 연동에 위치하며, 제주도의 행정을 총괄하는 지방 행정 기관이다. 제주도는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관할에 있었다. 광복 이후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제(濟州道制)가 실시되기를 원했고 지역유지들을 중심으로 도 승격 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도민들의 운동에 힘입어 1946년 7월 미군정청 법령 제94호에 의해 제주 지역에 도제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제주도는 9번째의 도가 되었다. 제주도가 도가 되면서 행정구역은 2군 1읍 12면이 되었다. 2004년 제주시와 북제주군,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을 통합하자는 혁신안이 만들어졌고, 2005년 7월 27일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혁신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2006년 7월 1일부터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여 기존의 시·군체제는 제주도시와 서귀포시 두개의 행정시 체제로 전환되었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청은 도지사와 2명의 부지사(행정부지사와 정무부지사) 아래 7국 34실과를 두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4읍 3면 19동을 관할하고 있다.

폴더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1960년대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1960년 서귀포시 서귀포동에 개설된 상설시장이다. 제주도의 남쪽에 위치한 서귀포는 1920년대 초반까지도 작은 포구여서 시장이 활성화 되지 못하였다. 서귀포 지역에 처음 시장이 생긴 것은 1906년인데, 이때 제주 군수였던 윤원구가 각 지역 중심마다 5일장을 개설한 영향으로 서귀포에도 시장이 생긴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서귀포항은 어업기지로 주목받았는데, 1916년 제주도의 지청이 이곳에 세워진 후 학교와 등기소 등 행정기관이 세워졌다. 1920년대 중반에 일본 어민과 잠수업자들이 이주했고, 일본인들이 통조림공장과 조개단추공장 등을 세웠다. 1932년에는 기존 도로 외에 서귀포에서 한라산 부근을 지나 제주시로 이어지는 도로가 생겼다. 그 결과 서귀포는 교통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교통의 편리성에 힘입어 광복 이후인 1960년에 서귀포의 상설시장인 서귀포매일시장이 생긴 것이다. 1980년대까지 지역의 대표 특산물인 감귤 산업을 토대로 번영을 누렸으나, 감귤 산업이 한계에 이르고 인구의 유출,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인해 시장이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2010년 서귀포매일시장은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선정되면서 이름을 서귀포매일올레시장으로 바꾸고 문화와 예술이 있는 전통시장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 현재 많은 관광객이 찾는 제주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폴더 동문공설시장 동문공설시장 동문공설시장 동문공설시장 동문공설시장 1960년대 동문공설시장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동문공설시장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재래시장이다. 제주항과 근접해 있어 광복 이후 부근의 상인들이 모이면서 형성되었으며, 이후 모슬포 국방경비대 제9연대가 창설되면서 육지와 제주도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54년 3월 대형화재가 발생하면서 현재의 동문로터리 일대로 이설하여 11월 재개장했는데, 이 때 동문공설시장에 입점하지 못한 상인들이 주변 도로에 노점과 좌판을 이용해 장사를 시작하면서 형성된 것이 동문재래시장이다. 동문수산시장은 1980년대 도로정비 사업으로 도로개설이 추진되면서 T자형 도로 주변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동문공설시장은 2019년 현재 총 4층의 건물이며, 총 점포수는 약 960개, 상인 수는 약 2,700여 명이다.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이용자 수가 감소했으나, 최근 올레길이 개설되어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재래시장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폴더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 1970년대 중문관광단지 중문관광단지는 1973년 제주도 종합 관광 개발 계획에 따라 서귀포시 중문동, 색달동 일대에 조성된 종합 관광 휴양 단지이다. 중문은 제주시에서 가까운 곳으로 해수욕장이 있고 해안의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또한 천제연폭포를 비롯해 반경 16km 내에 한라산과 송악산, 산방산, 화순해수욕장, 안덕계곡, 천지연폭포, 정방폭포등 명승지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한국관광공사가 1978년부터 관광지로 개발했는데, 1978년부터 1996년까지 시행된 1단계 사업은 63만평 규모의 중부 지역 개발 사업이었다. 1단계 사업으로 호텔 등 숙박시설, 골프장, 식물원, 박물관 등이 지어졌다. 이후 진행된 2단계 사업인 동부 단지 개발로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등이 지어졌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50분 거리에 위치한 중문관광단지는 관광 인프라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어 제주도 관광객 중 약 75%(2011년도 기준)정도가 다녀가는 곳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폴더 마라도 마라도 마라도 마라도 마라도 연도미상 마라도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하는 섬이다. 1883년(고종 20) 서귀포 대정읍 인근에 살던 가족이 대정 현감의 허가를 얻어 마라도에 들어가 정착한 후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마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마라도(馬羅島)’로 표기된 후 현재에도 이 표기를 따르고 있다. 마라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4.2km인 작은 섬으로 해안은 바다 바람에 오랫동안 침식되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섬이 작고 농경지가 부족하여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근래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민박집과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마라도에 사는 주민은 55세대, 약 100여 명 정도이다. 마라도의 관광명소로는 마라도 등대와 마라도 남쪽 끝의 대한민국최남단비, 초코릿 박물관 ‘마라도 홍보관’ 등이 있다.

폴더 제주항 제주항 제주항 제주항 제주항 일제강점기 제주항 제주항은 1927년에 개항한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무역항이다. 제주항은 산지천이 바다로 들어가는 건입포(建入浦)에서 발전한 항구이다. 옛날부터 건입포가 제주도가 외부와 교역하는 주요 항구로 이용되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1735년에 김정(金政)목사가 제주도 전체 도민을 징발해 산지항(현 제주항)과 별도항(현 화북항)에 방파제 80간(間)과 둑을 쌓아 항만을 건설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제주도와 오사카를 오가는 정기선이 제주항으로 들어왔다. 이 시기에 제주항의 항만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 졌다. 광복 후 1968년 제주항은 무역항으로 지정되었고, 1977년 내항정비사업 이후 대형 화물여객선인 카훼리가 제주항에 취항하게 되었다. 제주항은 크게 내항(제1부두~제7부두)과 외항(제8부두~제10부두), 인근 서부두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두와 서부두는 고깃배가 들어오는 항구이며, 제2부두∼제7부두는 연안여객터미널이 위치하며 여객선과 화물선이 출입한다. 제8부두∼제10부두는 국제여객터미널이 위치하며 크루즈 등 대형선박 여러 척을 동시에 댈 수 있다.

폴더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 1990년대 저지예술인마을 저지예술인마을은 지역 주민들이 문화 예술을 이해할 수 있고, 지역 개발 효과와 관광 자원화 및 제주 지역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해 조성된 마을이다. 저지리는 곶자왈이 있는 제주시 한경면의 중산간 마을이다. 해발 110~140m 사이에 저지오름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18세기 고문헌에 ‘저지촌’이라는 마을이름이 나오는데, 최소한 조선시대부터 형성된 마을이다. IMF를 겪은 1999년 3월, 당시 북제주군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문화예술인마을을 조성하였다. 총사업비 46억 원을 투자해 저지리 일대 9만9000여㎡ 부지를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 목적으로 분양하였다. 이후 '예술가의 집'이 하나, 둘 들어섰고, 2007년에는 마을의 중추 문화공간으로 제주현대미술관이 건립되었다. 2017년에는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작품과 동시대 활동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김창열미술관이 세워졌다. 2019년 현재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는 미술관, 갤러리, 책방, 염색 공방, 카페 등 30여개 시설이 있다. 이러한 시설들은 제주도민이나 관광객을 맞이하는 '문화 명소'가 되었다.

폴더 이중섭거리 이중섭거리 이중섭거리 이중섭거리 이중섭거리 1990년대 이중섭거리 서양화가 이중섭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서귀포시 서귀동의 거리이다. 이중섭가족이 제주도 서귀포로 온 때는 1951년 1월경이었다.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 조카 이영진과 함께 1950년 12월 원산항을 출발하여 3일 후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한 달 정도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이중섭가족은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이 먼저 와 있던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중섭가족은 서귀포시 서귀동에 거주했는데 방 하나를 세 얻어서 피란민 배급품과 고구마로 연명하였다. 이 시기 이중섭은 「서귀포의 환상」등 많은 명작들을 남기고, 1951년 12월 경 가족들과 같이 부산으로 떠났다. 1996년 서귀포시는 화가 이중섭을 기념하기 위해 이중섭거리를 조성하였다. 1997년에는 이중섭이 제주 생활 당시에 살았던 초가집을 복원했다. 2002년 12월에는 이중섭 미술관을 개관했으며, 미술관 앞에 이중섭 공원을 조성하였다. 이중섭 거리에는 공방, 카페 등이 많고 작가의 산책길도 있다.

폴더 제주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 일제강점기 제주국제공항 제주도의 국제 항공 관문인 제주국제공항은 1942년 2월 일본군이 전쟁의 목적으로 ‘정뜨르비행장’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이 공항을 인수했으며, 공식적으로 민간인을 수송하기 위해 비행한 것은 1946년 미 군정청이 항공 수송용 C-47기로 서울~광주~제주 간을 주 2회 운항한 것이었다. 제주공항에 정기 항공 노선이 개설 된 것은 1949년 2월 1일부터인데, 서울~부산~제주에 5인승 ‘스틴슨기’가 취항한 것이다. 6.25전쟁으로 스틴슨기 3대가 모두 전쟁에 쓰이면서, 국내 민간항공교통은 1년 4개월 만에 중단되었다가 전후 1955년 1월 주 2회 운항 노선으로 부활하였다. 1962년 제주~서울노선이 주 5회 운항되었고, 1963년부터는 주 7회로 매일 1회씩 운항하였다. 1968년 4월 제주공항이 제주 국제공항으로 승격되었다. 1969년 10월 7일 최초로 국제 항공 노선이 개설되었는데, 제주~부산~오사카 노선이었다. 1968년 12월 국제공항청사를 신축하였다. 2000년 7월에 신 화물청사를 개관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2002년 12월 국내 최초로 내국인 면세점을 열었다. 2004년 6월 8일에는 새로운 관제탑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 10월 국내선 여객청사를 확장하였고, 2009년 11월에는 국제선 여객청사도 확장하였다.

폴더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월드컵경기장 2000년대 제주월드컵경기장 제주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위해 건설된 경기장이다. 1999년 9월 공사를 시작해 2001년 12월에 완공했고, 2002년 1월 14일에 준공하였다. 지하 2층, 지상 4층의 규모로, 제주도의 강한 바람을 막고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14m 깊이의 지하에 경기장을 건설했다는 특징이 있다. 제주 월드컵 경기장은 도내 유일의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전과 독일 대 파라과이(6월 15일)의 16강전이 열렸다. 월드컵 이후 보조 경기장과 전지훈련장으로 이용되다가 2006년부터 제주 유나이티드FC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1년에는 ‘2002 FIFA 월드컵 홍보관’을 개관하여 2002년에 있었던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고 있다.

폴더 서귀포 천제연 관개수로 서귀포 천제연 관개수로 서귀포 천제연 관개수로 서귀포 천제연 관개수로 서귀포 천제연 관개수로 1908 서귀포 천제연 관개수로 서귀포 천제연 관개수로는 천제연 폭포의 물을 수로를 통해 이동시켜 성천봉(星川峯) 앞의 땅으로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제국기에 제주에서 최초로 논이 만들어졌는데, 이 수로를 만들어 물을 댄 결과물이었다. 수로공사를 주도한 사람은 채구석, 이재하, 이태옥 등이다. 1905년 천제연 폭포수를 이동시키는 수로 공사를 시작하여 1908년 성천봉 아래 5만 여 평의 땅을 논으로 개간한 것이 1차 공사였다. 1917년부터 1923년까지 2차 공사가 진행되어 약 2만 여 평의 논과 밭이 개간되었다. 두 차례 수로공사로 논이 생기면서 중문마을을 이웃인 강정마을과 함께 제주 내에서 쌀을 많이 생산하게 되었다. 천제연 관개수로는 개간된 논의 주인들로 구성된 ‘성천답회’에서 관리하였는데, 1957년에 국유화되어 서귀포시 상수도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개간된 논은 중문관광단지에 포함되면서 사라졌다. 제주도에서 최초로 논을 만들 수 있게 된 수로인 점이 인정되어, 2005년 4월 등록문화재 제156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일제강점기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는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오름 중 하나인 '법정악'의 능선 해발 680m 지점에 있는 법정사 터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인 1918년 무오년에 일어난 항일운동이다. 이 운동은 1918년 10월 7일 법정사의 주지인 김연일(金連日), 승려인 방동화(房東華) 등과 신도, 민간인 등 400여명이 무장하고 이틀 동안 일본에 항거한 것이다. 주요 가담자 66명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으로 송치되었는데, 그 중 48명이 소요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일부는 옥사하기도 했다. 당시 일제가 항일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절을 불태웠기 때문에 현재 법정사는 축대 등과 터만이 남아 있다. 1996년 무오법정사항일항쟁성역화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법정사 터 인근 지역이 성역화 되었고, 2004년에는 이 운동에 참가한 400인의 합동신위와 재판을 받은 66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가 준공되었다. 발상지는 제주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규모의 항일운동이 일어난 곳이라는 점에서 2003년 11월 시도기념물 제61-1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제주4.3수악주둔소 제주4.3수악주둔소 제주4.3수악주둔소 제주4.3수악주둔소 제주4.3수악주둔소 1950년대 제주4.3수악주둔소 서귀포시 야산지역에 있는 제주 4.3수악주둔소는 100전투경찰사령부가 무장대 토벌을 위해 6.25전쟁 시기 기존의 성을 수리하고 주둔한 곳으로 외성과 내성 2중의 석성이다. 정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된다. 당시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 충돌 과정에서 경찰의 토벌대가 한라산 기슭에 주둔소를 많이 지었는데, 주둔소는 산기슭에 현무암을 이용해 성의 형태로 담장을 쌓고 그 안에서 적의 침입에 대비하던 구조물이다. 경찰이 제주도 주민들을 동원하여 지었고, 이 당시 약 100개 정도 지어졌다고 한다. 이 중 수악주둔소는 내성 및 외성의 형태, 내성 내 생활공간, 외성의 경비초소 등의 형태가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 2018년 3월 등록문화재 제716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제주 대정여자고등학교 실습실(육군 98병원 병동) 제주 대정여자고등학교 실습실(육군 98병원 병동) 제주 대정여자고등학교 실습실(육군 98병원 병동) 제주 대정여자고등학교 실습실(육군 98병원 병동) 제주 대정여자고등학교 실습실(육군 98병원 병동) 1950년대 제주 대정여자고등학교 실습실(육군 98병원 병동) 육군 98병원은 6.25전쟁당시 육군 제1훈련소 의무참모실에서 전선과 훈련소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해 창설한 병원이다. 1951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952년 6월 9일에 완공되었는데 50여동의 건물과 화장터로 구성되었다. 제 98육군병원은 의료시설이 거의 없던 6.25전쟁 시기에 제주도에서 병사와 지역주민들까지 치료하였다. 이 병원은 1956년 육군 제1훈련소가 폐쇄되면서 같이 폐쇄되어 방치되던 중 1964년 대정여고가 그 자리에 설립되었다. 병원의 건물들은 대정여고의 교사로 사용되다 대부분 철거되었는데, 이 건물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1동의 1층 건물이며, 제주도산 현무암으로 외벽을 쌓은 후 박공지붕을 얹었고, 직사각형의 평면을 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제주도에 있던 제98육군병원의 병동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병동인 점이 인정되어 2017년 4월 20일 등록문화재 제 680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1950년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194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개설된 광주의학전문학교는 광복 이후인 1946년 광주의과대학으로 승격, 1947년 9월 문교부로부터 6년제 의과대학으로 인가받아 광주 서석동, 학동 일대에 캠퍼스를 조성하고 교사를 건축하였다. 본 건물은 1948년에 설계를 하고 착공했지만 6.25전쟁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1952년 9월에야 완공했다. 그와 동시에 전남대학교가 의과대학을 비롯한 공과대학, 농과대학 등을 아우르는 종합대학이 되면서 대학본부로 사용되었다. 전남대학교의 본부가 북구 용봉동으로 옮겨 가면서 중앙도서관, 의과대학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2012년부터는 전남대학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평면이 ‘L’자형으로 현관을 포함한 중앙부는 3층 규모이며, 콘크리트 슬라브 평지붕 형식이다. 1940~50년대 학교 건축물에 주로 썼던 조적조 벽돌에 슬라브 바닥 구조를 하고 있다. 국립 전남대학교 개교 이래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면서 대학을 상징하는 역사적 건축물로 의미가 있다. 2018년 8월 등록문화재 제728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광주 구동체육관 터 광주 구동체육관 터 광주 구동체육관 터 광주 구동체육관 터 광주 구동체육관 터 1960년대 광주 구동체육관 터 광주 구동체육관은 1965년 7월에 전라남도 광주시 구동에 건립된 실내 종합 체육관이다. 당시 관할하던 전라남도체육회와 관련이 있어 전남체육관이라고도 하였다. 제46회 전국체육대회를 치르기 위해 건립된 구동체육관은 지방 시도에 있는 실내체육관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건립 당시 들어간 비용을 행정당국의 지원과 도민의 모금운동으로 충당했다는 점에서 민관 합작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광주 구동체육관은 지하 1층, 지하 5층 규모에 1,218석을 갖추고 있었다. 운동경기나 체육행사 뿐만 아니라 음악회, 연설회, 공연, 각종 집회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그러나 시설이 낡고 사용 빈도가 줄어들자 광주시에서는 구동체육관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문화시설을 건립해 현재는 빛고을시민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

폴더 무등시네마 무등시네마 무등시네마 무등시네마 무등시네마 일제강점기 무등시네마 무등시네마의 역사는 1927년 광주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일본인들이 구로세(黑瀨)를 대표로 해 조합 형태로 착공한 ‘광남관’에서 시작된다. 경성의 명동 명치좌(현 명동예술극장) 건물의 형태를 따라서 지었고 야간에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후 구로세의 단독 체제로 바뀌고 난 후 1930년 ‘제국관’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무등시네마는 광복 이후 적산가옥으로 처리되어 제국관에서 영사기사로 일했던 전기섭이 불하를 받았고 동방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했다. 국산 영화상영 의무화 조치가 있었던 1966년까지는 양화전문 상영극장이었으며, 영화상영 이외에도 전국학생연극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여러 차례 소유주 변경 후 1970년부터 무등극장이라는 상호를 사용했고 1990년대에는 멀티플렉스 무등시네마가 되었다. 무등시네마는 지방의 단관극장이 사라지는 가운데에서도 멀티플렉스로 변신하며 향토 영화관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2012년 1월 영화 <완득이>의 상영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폴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일제강점기(1910~1945)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폴더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일제강점기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

폴더 함평성당 함평성당 함평성당 함평성당 함평성당 광복~1950년대 함평성당 전라남도 함평군에 위치한 함평성당은 1952년 완공된 광주대교구 소속의 천주교회이다. 원래 1944년 일반 주택을 나주본당 함평공소로 사용하던 것을 1949년 성전 신축공사를 시작했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무산되었다. 전쟁 중에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성당을 소각해 겨우 뼈대만 남은 것을 다시 건립했는데, 1951년 12월 함평을 방문한 교황 사절단이 개축 지원을 약속해 1952년 4월 공사가 시작되었고 10월 13일에 준공 축성 미사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함평성당은 연면적 581.8㎡의 규모에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이다. 1950년대 이전의 성당 건축은 대부분 단층 건물에 높은 천정과 종탑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함평성당은 1층과 2층의 기능을 분화하여 1층은 교육과 사회적 공간, 2층은 순수한 종교적 공간으로 구성했다는 특징이 있다. 2014년 12월 등록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