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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카이브 역사문화경관

총 "380건"

폴더 통영 윤이상 기념관 통영 윤이상 기념관 통영 윤이상 기념관 통영 윤이상 기념관 통영 윤이상 기념관 1960년대 통영 윤이상 기념관 통영시 도천동에 위치한 윤이상기념관은 동서양을 잇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0년 개관했다. 191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성장한 윤이상은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으며, 귀국 후 교사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59년 독일 베를린음악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쇤베르크 12음계 기법과 우리나라 궁중음악을 결합시킨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며 세계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서독으로 추방된 윤이상은
1971년 독일에 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도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하여 음악활동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심청’, ‘나비의 미망인’ 등 4편의 오페라와 20여 편의 관현악곡, 40여 편의 실내악곡 등 총 15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폴더 하동 최참판댁 하동 최참판댁 하동 최참판댁 하동 최참판댁 하동 최참판댁 일제강점기(1910~1945) 하동 최참판댁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은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가 되었던 전통 가옥을 구현한 곳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들에 대한 장대한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한 많은 한국 근현대사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지인 평사리는 지리산의 형제봉과 구재봉 사이에 펼쳐진 너른 들판과 섬진강을 끼고 있다. 하동군은 1998년부터 한옥 14동의 최참판댁과 드라마 토지오픈세트장, 박경리 문학관, 전통한옥체험관 등 토지민속 문학마을을 조성했다. 또한 2001년부터는 매년 10월 둘째 주마다 토지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토지문학제는 초등부부터 일반인까지 참여할 수 있는 ‘토지백일장’,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어르신 백일장’ 등 40여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폴더 평창 이효석 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평창 이효석 문학관 일제강점기(1910~1945) 평창 이효석 문학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관은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작가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살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효석은 1907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출생, 1928년 『도시와 유령』이라는 작품으로 정식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산』, 『들』, 『메밀꽃 필 무렵』 등 다양한 단편 소설을 집필했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는 봉평이나 인근 지역의 실명이 명시되고 본인이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설을 통해 녹여냄으로써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효석 문학관은 1982년 유족에 의해 추진되어 2002년 개관했으며, 문학관 내부는 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이효석 문학 전시실’과 봉평 메밀과 관련된 풍습 및 각종 자료를 보여주는 ‘메밀자료실’, ‘학예연구실’, ‘문학교실’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관 주변에는 매달 2일과 7일에 봉평 장날이 열리고 있으며, 1999년부터 매년 9월에는 ‘평창효석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폴더 독도 독도 독도 독도 독도 일제강점기(1910~1945) 독도 경상북도 울릉군 을릉읍에 자리하고 있는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지로서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된 화산섬이다. 독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512년에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며, 현재의 이름인 ‘독도’로 개칭된 것은 1881년경부터이다. 근현대 독도에 대한 기록은 1900년(광무 4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명시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이후 이를 기념해 매년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정했다. 광복 후인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에서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재확인했으며, 1954년 1월 18일 정부는 독도에 영토표지를 설치했다. 독도는 총 면적 187,554㎡에 동도와 서도, 타 부속도서 89개로 이루어져 있다. 동도에는 독도경비대와 선착장, 유인등대 등이 있으며, 서도에는 주민들의 숙소와 등반로, 음용시설 등이 있다. 독도에는 현재 약 4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독도를 방문하고 있다.

폴더 10.16부마민주항쟁탑 10.16부마민주항쟁탑 10.16부마민주항쟁탑 10.16부마민주항쟁탑 10.16부마민주항쟁탑 1970년대 10.16부마민주항쟁탑 10.16부마민주항쟁탑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견인한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부산대학교에 건립한 탑이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부산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부산·마산 시민들이 전개한 반독재 민주화 항쟁이다. 1979년 8월에 YH사건이 발생하고 10월에는 당시 신민당 대표인 김영삼을 국회의원에서 제명하자 10월 16일 부산대에서 학생 5,000여 명이 유신철폐, 정치 탄압 중단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가 시민의 합세로 확산되자 10월 18일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투입했으며 20일에는 마산에 위수령을 선포했다. 10·16부마민중항쟁탑은 부산대 총학생회가 1985년에 개최한 ‘효원대동제’의 수익금으로 시작해 이후 조성된 기금으로 1988년 11월 18일 제2도서관 뜰에 건립되었다. 이 탑은 장방형의 130×50㎝ 크기의 석조 좌대 위에 횃불을 형상화한 길이 90㎝, 높이 220㎝의 청동 조형물로 탑에 새겨진 노랫말에서 당시 민주주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폴더 대구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 대구국제공항 2000년대 대구국제공항 대구 동구에 위치한 대구국제공항은 1961년 4월 부산비행장 대구사무소로 출발해, 1962년 대구비행장으로 개항한 이후 시설 정비와 확충을 거쳤다. 1990년 6월부터 한국공항공사 대구지사가 공항을 관리, 운영하고 있다. 개항 이후 국내선만 운행하다가 1994년 8월에 일본 후쿠오카 노선을 처음 운항하면서 국제공항이 되었다. 비행장 규모는 부지면적 661만 7,283㎡, 2,755m×45m의 활주로 2개, 여객터미널 2만 6,993㎡, 화물터미널 844㎡(국내선 전용), 계류장 4만 1,582㎡, 주차장 2만 5,117㎡ 등이다. 2004년 경부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이용률이 급감하면서 2013년까지 연 이용객이 100만 명 선에서 정체되었으나 이후 국내 저비용 항공사의 국제선 취항, 포항공항의 일시폐쇄 등의 영향으로 점차 늘어나 2017년 11월에 300만 명을 돌파했다.

폴더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일제강점기(1910~1945)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는 20세기 초 일본 어민들이 구룡포에 이주어촌을 건설하면서 세운 거류지를 역사거리로 정비한 곳이다. 구룡포 지역에 일본 어선이 왕래하기 시작한 것은 1902년 돔잡이 어선 50여척이 구룡포에 정박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1909년 고등어잡이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구룡포에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되었으며, 일본 어민의 이주와 함께 일본인 상인의 정착도 이루어졌다. 2012년 포항시가 광복 이후 구룡포에 남아있는 80여 채의 일본 가옥을 중심으로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조성했고 특히 구룡포에 최초로 거주한 일본인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의 집은 일본인의 생활상을 재현한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폴더 영덕풍력발전단지 영덕풍력발전단지 영덕풍력발전단지 영덕풍력발전단지 영덕풍력발전단지 1970년대 영덕풍력발전단지 영덕풍력발전단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에 있는 국내 최초의 상업용 풍력발전단지이다. 해안가에 위치한 영덕읍은 사계절 내내 거센 바람이 불어 풍력발전의 최적지였다. 영덕 풍력발전단지는 2001년 풍력자원 및 사업 타당성 조사를 거쳐, 2002년 영덕풍력발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2003년 산업자원부로부터 발전 사업자로 인가를 받았다. 2004년 풍력발전 단지 조성을 위한 토목공사를 진행하고 풍력발전기 24기를 설치했으며, 1년 정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5년 풍력발전기 가동을 시작했다. 영덕 풍력발전단지의 면적은 16만 6,000㎡이며, 풍력발전기 24기(1,650kW급)에서 가동되는 총 시설 용량은 39.6MW, 연간 전력생산량은 96,680MWh로 약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폴더 백암온천 백암온천 백암온천 백암온천 백암온천 1960년대 백암온천 백암온천 관광특구는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백암산에 위치한 온천관광지이다. 백암온천의 유래는 신라 때 사냥꾼의 화살에 맞은 사슴이 온천물로 치유하여 달아나자 백암사 스님이 그 온천물로 환자를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1912년 일본인이 이 곳에 근대적 온천시설을 갖춘 여관인 평해백암온천관(平海白巖溫泉館)을 신축하기도 했다. 백암온천은 1979년 국민관광지,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유명한 온천휴양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백암온천에는 관광호텔, 일반호텔, 여관, 콘도 등 다양한 형태의 온천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1996년부터 매년 8월마다 울진백암온천축제가 열리고 있다.

폴더 경주보문관광단지 경주보문관광단지 경주보문관광단지 경주보문관광단지 경주보문관광단지 1970년대 경주보문관광단지 보문관광단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국제관광 휴양단지이다. 1971년 8월 경주관광개발계획이 확정되었고 1974년 공사에 착공, 1975년 보문관광단지로 지정되었다. 1979년 4월에는 1단계 공사를 마치고 관광단지로 첫 개장을 했다. 동쪽 불국사와 토함산 지구로 가는 길목인 보문호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 단지에는 관광휴양지와 다양한 문화레저시설을 갖추고 있다. 보문관광단지는 1991년 온천지구로, 1994년 관광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종합문화박람회가 열리는 경주엑스포공원에는 황룡사9층목탑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82m 높이의 경주타워가 있는데, 이 곳 전망대에 올라가면 보문단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복합체험형 역사 테마파크로 최첨단 야외 서사극이 공연되는 신라밀레니엄파크와 테디베어 전시공간인 테지움 경주도 방문객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폴더 안동댐 안동댐 안동댐 안동댐 안동댐 1970년대 안동댐 안동댐은 낙동강 하류의 홍수 조절과 농업·공업·생활용수를 확보함과 동시에 수력을 통한 전력을 생산할 목적으로 1976년에 건설된 다목적댐이다. 1971년에 착공해 1976년 10월 준공한 안동댐은 낙동강 하구로부터 약 340㎞ 상류에 위치한 낙동강 수계 최초의 댐으로 댐 왼쪽은 성곡동, 오른쪽은 상아동에 속한다. 댐 건설과 함께 하류 지역에 역조정지가 조성되고, 9만㎾ 용량의 양수(揚水) 겸용 발전소가 국내 최초로 만들어졌다. 댐의 규모는 높이 83m, 길이 612m, 폭 360m, 총 저수량 12억 5,000만㎥, 홍수조절 용량 1억 1,000만㎥, 유역면적 1,584㎢ 등이다. 연 9억 2,600만㎥의 용수를 생산하여 우리나라 전체 사용량의 7.4%에 이르는 수돗물을 구미·대구·창원·울산·부산까지 공급하고, 4만 4,000ha에 달하는 농지에 연간 3억㎥의 농업용수를 조달한다. 수력발전소에서는 연간 1억 5,800만㎾h의 청정 수력에너지를 생산하여 경북 북부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폴더 새마을운동 발상지 새마을운동 발상지 새마을운동 발상지 새마을운동 발상지 새마을운동 발상지 1970년대 새마을운동 발상지 경북 청도군 청도읍에 있는 신도마을은 새마을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마을이다. 1968년 8월 경남 수해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열차를 타고 지나던 박정희 대통령이 차창 밖으로 주민들이 협동하여 무너진 도로와 제방을 자발적으로 복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청도 신거역에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지방장관회의를 통해서 ‘새마을 가꾸기’를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농촌부흥을 위한 국가정책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마을 앞길 확장, 공동빨래터·공동우물 설치 등 마을공동사업을 중점적으로 실시했는데 신도마을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신도마을의 사례가 모범이 되어 전국에서 신도마을 견학이 줄을 잇기도 했다. 현재 청도군은 신도리 마을을 중심으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을 조성해 새마을 광장·기념관·테마파크 등을 운영하고 있다.

폴더 왜관철교 왜관철교 왜관철교 왜관철교 왜관철교 일제강점기(1910~1945) 왜관철교 칠곡 왜관철교(호국의 다리)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와 약목면 관호리를 잇는 인도교이다. 구한말 일본의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1901년 착공되어 1905년 1월 개통되었으며, 길이 469m, 총 폭 4.5m 규모의 단선철교이다. 1950년 7월 말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교량은 폭파되었으나, 전쟁기간 대대적인 복구 작업이 이루어져 1952년 4월 완전 복구를 완료했다. 북한의 도하공격을 저지한 격전지로 호국의 다리라고도 불리며, 2008년 10월 1일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되었다. 칠곡군은 2015년 10월 15일 구 왜관철교 일대 30만㎡ 규모의 평화공원과 칠곡 호국평화기념관을 개관하여 호국의 메카로 육성하고 있다.

폴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개항~대한제국(1910)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6.25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온 북한의 덕원수도원과 만주 연길수도원의 수도자들이 1952년 왜관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발족한 수도원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 성당’은 1928년 건축된 왜관 최초의 성당이며 6·25전쟁 당시 부상병을 위한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구 성당 좌우측에는 오래된 두 개의 건물이 있는데 구 성당 좌측의 단층 건물은 1935년 건축된 것으로 처음에 본당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후에 왜관 최초의 유치원으로 개원했다. 우측의 2층 건물은 사제관이었다가, 1952년 북한과 만주에서 피난 내려온 베네딕도회 수도자를 위한 임시 수도원이 되었다. 베네딕도회는 임시 수도원 대신 1955년 새로운 왜관수도원을 건축했다. 하지만 이 건물은 2007년 화재로 불타버리고 2009년 새로 대성당 건물을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폴더 이상룡 생가(임청각) 이상룡 생가(임청각) 이상룡 생가(임청각) 이상룡 생가(임청각) 이상룡 생가(임청각) 일제강점기(1910~1945) 이상룡 생가(임청각) 안동 임청각은 안동의 영남산 동쪽, 낙동강변 남향의 경사면에 계단식 기단을 쌓아 지은 전통 한옥으로 이상룡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석주 이상룡은 의병장 김흥락의 제자로 1907년경부터 유인식, 김동삼 등과 협동학교 설립 및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창설했다. 1910년 국권을 잃자 이듬해 일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하여 이회영 일가족과 경학사,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했다. 만주에 군사기구인 군정부를 설립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상해로 건너 가 1925년 9월 임시정부 첫 국무령으로 추대되었다. 1926년 1월 다시 만주로 돌아가 무장독립운동 단체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 1932년 병사했다. 임청각은 원래 99칸의 기와집이었으나 일제가 중앙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마당을 가로질러 철도를 놓는 바람에 행랑채와 부속채 50여 칸이 철거되어 원형을 잃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2년 9월 임청각 전체를 보존하기 위해 종전 보물 명칭인 ‘안동 임청각정침군자정(安東 臨淸閣正枕君子亭)’에서 ‘안동 임청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폴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970년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는 거제도 옥포만에 건립된 조선소로 상선, 플랜트, 특수선박 등을 건조한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일 전쟁 직전 미츠비시중공업과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합작으로 부산에 조선중공업을 설립하였다. 광복 후 조선중공업은 정부가 인수하여 대한조선공사로 출범하였는데 1968년 극동해운에 불하되어 민영화되었다. 국동해운은 1973년 거제도 옥포에 수출용 대형 유조선 건조를 목적으로 100만톤급 규모의 대형 조선소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오일쇼크 등 조선 업계의 불황으로 거제도 옥포조선소는 대우조선에 인수되었다. 대우조선은 1978년 창립식을 가진 후 골리앗 크레인을 비롯한 핵심설비를 갖추고 1981년에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옥포조선소 종합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1983년 제2도크 준공, 같은 해 11월에 ‘5억불 수출의 탑’ 수상, 1994년 대우중공업 합병, 2000년에 대우중공업 3개로 분리 등의 변화를 거쳐 2002년부터 현재의 명칭인 대우조선해양으로 바뀌었다.

폴더 경남대학교 10.18 발원지 경남대학교 10.18 발원지 경남대학교 10.18 발원지 경남대학교 10.18 발원지 경남대학교 10.18 발원지 1970년대 경남대학교 10.18 발원지 경남대학교 10·18 발원지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인 부마항쟁이 1979년 10월 부산에서 비롯되어 마산(현 창원)에서도 그 열망을 이어받았음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부마항쟁이 일어났을 당시의 정국은 YH여공들의 농성과 강제 해산,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 등으로 인하여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런 와중에 1979년 10월 16일과 17일 부산에서의 반독재 민주화 시위로 인하여 18일 0시에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 속에서 10월 18일 10·18항쟁이 경남대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00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위에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마산 전 지역으로 민주화 열기가 퍼져 나갔다. 정부는 10월 20일 마산 일원에 위수령을 발표하고 계엄군을 투입하면서 시민 학생 1,563명이 연행돼 그 중 20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6일 후인 10월 26일 10·26사태로 유신정권은 종말을 맞았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경남대학교는 시위가 시작되었던 곳을 ‘10·18 광장’이라고 명명하고 10·18기념 마라톤대회 등 해마다 크고 작은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광장은 조그만 연못인 월영지 바로 위쪽에 붙어있다. 근처에는 경남대 ‘동문 공동체’가 2009년 건립한 ‘시원석’이 있는데, “3·15 민주정신으로 일어난 10·18 부마민주항쟁의 그 날을 기억하며”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본관 옆 큰 나무 밑에는 부마항쟁과 관련된 기념물이 있다. 2개의 장승이 있는데 하나는 4·19운동을 기념한 ‘3·15 지킴이’라 하고 또 다른 하나가 ‘10·18 지킴이’라고 적혀 있다.
경남대학교에서 시작된 10·18항쟁은 유신독재를 끝내고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견인한 의의가 있다.

폴더 남해대교 남해대교 남해대교 남해대교 남해대교 일제강점기(1910~1945) 남해대교 남해대교는 우리나라에서 건설된 최초의 현수교로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잇는 다리이다. 남해대교는 1968년 5월에 착공하여 1973년 7월에 준공·개통했다. 중앙경간 404m, 양측경간 128m의 3경간으로 구성된 현수교로 다리 높이는 총52m, 해상높이는 25m이다. 남해대교는 완도·강화·안면·거제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완성된 연륙교이기도 하다. 남해대교가 건설됨에 따라 부근 지역인 부산, 여수, 창원 등과의 연결이 한층 원활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야경 등의 경관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한편 남해대교의 물동량이 크게 늘자 남해대교와 550m 떨어진 곳에 제2남해대교인 노량대교를 건설해 2018년 9월에 개통했다.

폴더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광복~1950년대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거제포로수용소는 유엔군이 1951년 1월 북한군의 전쟁포로가 증가하여 더 이상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설치한 포로수용소이다. 전쟁초기부터 포로수용소 문제가 대두되고 있었다. 특히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부터는 포로 처리에 대한 문제가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유엔군은 포로들을 전시 작전에 부담이 없는 곳으로 재배치할 방안을 강구한 끝에 거제도에 격리 수용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유엔군은 고현, 수월, 양정, 상동, 용산, 해명, 저산지구를 중심으로 수용소를 설치하였다. 여러 곳에 분산 수용된 포로들을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하여, 이곳에 1951년 6월 말까지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 명 등 최대 17만 3천 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다. 1951년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문제 중 하나가 포로 석방에 관한 것이었다. 유엔은 포로가 돌아갈 국가를 선택하는 자발적 송환원칙을 제시하였으나 북한은 포로의 본국으로 송환하는 강제적 송환 원칙을 고집하였다. 결국 유엔과 북한은 본국 귀환을 거부하는 포로에 한해 중립국 송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송환국을 결정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 합의에 불만을 품은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반공포로의 일방적 석방을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거제포로수용소에서는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가 나뉘어 다투었고 유혈살상 사건도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952년에는 수용소 사령관 도드(Francis T. Dodd)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거제포로수용소는 폐쇄되었다. 그 후 1999년 포로수용소 유적관을 개관하고 2002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준공하였다. 그 후 흥남 철수작전 기념 조형물 준공, 1950관 개장, 평화파크, 아파타 포, VR체험관 등을 개장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유적공원은 전쟁존, 포로존, 복원존, 평화존으로 구성되어 있어 당시 포로수용소 생활을 생생하게 재현했는가 하면 평화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설치물들도 볼 수 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를 수용한 곳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높아 1983년 1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다.

폴더 통영상륙작전지 통영상륙작전지 통영상륙작전지 통영상륙작전지 통영상륙작전지 광복~1950년대 통영상륙작전지 통영상륙작전은 1950년 8월 17일 한국 해병대 김성은 대대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통영반도에 최초로 적전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통영을 탈환한 작전이다. 국군은 1950년 8월 중순까지 진동리로부터 낙동강선을 최후 방어선으로 구축하고 북한의 침공을 저지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낙동강 방어선의 돌파가 여의치 않자 공격 방향을 전환하여 무방비 상태였던 통영지역으로 남하하여 8월 17일 통영을 점령하였다. 통영반도의 점령을 시작으로 북한군 제6사단이 거제까지 진출하자 국군은 거제를 방어하기 위해 국군 해병대 김성은 대대를 긴급 투입하였다. 해병대대는 1950년 8월 17일 새벽 3시 거제도 북방 연안에 도착하였다. 대대는 해군의 엄호 사격 속에 다음 날 아침까지 통영항구 정면에서 육지를 향해 함포사격을 집중하였다. 김성은 부대장은 적의 상황을 파악한 후 거제지역을 방어하는 것보다 오히려 통영반도에 상륙작전을 전개하여 그 일대를 탈환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여 통영 공격작전을 상부에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다. 해병대대는 통영 근해를 경비하던 해군 함정 및 평택호 등의 지원 엄호 하에 8월 17일 18시 통영반도 동쪽에 기습적으로 상륙하였다. 대대는 고성에서 통영읍으로 진입하는 원문고개를 확보한 뒤 북한군의 진격을 차단했다. 또한 통영일대의 시야가 확보되는 망일봉을 미리 점령하여 8월 19일 10시까지 통영시내 소탕작전을 벌여 북한군 100여 명을 사살하고 통영을 완전히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통영 상륙작전은 유엔군의 도움 없이 한국 해병대가 최초로 단독 수행한 상륙작전이자, 지역 탈환 상륙작전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큰 전투이며 유엔군을 방어하기 위한 철수작전 중 유일한 공격작전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6·25전쟁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이자, 대한민국 해병대의 위용을 높이는 칭호까지 얻게 된 통영 상륙작전이었다. 이 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통영상륙작전기념관을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