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2 - 9

1945년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일본의 탄압을 피해 1940년 충칭으로 이동하여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대일 전쟁에 참여하려는 등 일본의 패망 이후를 대비해 지속적으로 국가 수립을 준비했다. 8월 15일 광복을 맞은 후,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비롯한 어떠한 자치 조직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같은 해 11월 27일 김구, 김규식 등이 귀국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하는 정당, 단체들이 결성되었고, 임시 정부 요인들은 독립 국가 수립을 위한 정치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1919년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40년 충칭에 자리 잡은 이후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광복 이후의 국가 건설을 본격적으로 구상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여러 독립운동 조직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통해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했다. 특히 연합국의 일원으로 대일 전쟁에 참전하여 중국․미국․영국․소련 등 연합국의 승인과 지지를 받아 광복 이후 국제적으로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지속했다.
1941년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공표한 건국강령, 임시헌장, 당면정책 14개조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건설해 나갈 국가의 방향성과 방침을 담고 있다.

상하이 시기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제정한 헌법, 정부 부서 등이 기록되어 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 된 이후 광복까지 27년간의 독립을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

1941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광복 이후 헌법 제정에 대비해 임시 정부의 헌법 구상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광복군의 국내 특파원 임명장이다.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40년 9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1945년 한국광복군은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합작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으나 광복으로 인해 계획이 실행되지 못했다.

독립  –첫 인사–

조국 오천년 광복의 날은 열리었다. 삼천만 동포여 기쁘지 아니하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소리 높이 부르는 애국의 노래가 산천을 울리고 태극의 깃발이 창공에 휘날리는데 웃음이 넘치는 빛나는 얼굴과 얼굴. 꿈에 그리는 내 고국을 밟는 우리들은 울었노라. 반갑고 기쁘기 이에 더할 바 있으랴. 하늘이 우리를 돕고 연합국이 우리의 벗이 되고 우리의 동포 또한 한길로 뭉치니 자주독립이 우리 앞에 있도다. 자유해방이 우리 손에 있도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 귀국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들은 임시 정부가 미군정에 의해 공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제1진 인사들은 1945년 11월 23일 충칭에서 출발해 11월 27일 서울에 도착하였으며 김구, 김규식, 이시영 등이 포함되었다.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비롯한 광복 직후 등장한 어떤 자치 조직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았으며 군정을 통해 직접 통치하였다.

광복 직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가 임시 정부 시책을 발표하는 전단이다. 애국선열들의 노력과 연합군의 도움으로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아직은 건국으로 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임시 정부가 당면 과제를 시행하여 완전한 독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으로 신탁통치에 반대하고
민족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한 정치 지도자였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대통령이었으며
1945년 10월 16일 하와이에서 귀국한 이후 미군정과 긴밀히 협력하였다.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외교부장을 지냈으며
좌우 합작을 통한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와 선전부장 엄항섭이 군정청에서 하지 장군을 만나는 모습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환국을 기념하여 1945년 12월 12일 대각사에서 개최된 봉영회 사진이다.
(조소앙, 이시영, 김구, 회암스님, 동암스님 등)

임시정부 부주석 김규식이 돈암장에서 이승만을 만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