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 정부
1919년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40년 충칭에 자리 잡은 이후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광복
이후의 국가 건설을 본격적으로 구상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여러 독립운동 조직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통해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했다. 특히 연합국의 일원으로 대일 전쟁에 참전하여 중국․미국․영국․소련
등 연합국의 승인과 지지를 받아 광복 이후 국제적으로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지속했다.
1941년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공표한 건국강령, 임시헌장, 당면정책 14개조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건설해 나갈
국가의 방향성과 방침을 담고 있다.
독립 –첫 인사–
조국 오천년 광복의 날은 열리었다. 삼천만 동포여 기쁘지 아니하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소리 높이 부르는 애국의 노래가 산천을 울리고 태극의 깃발이 창공에 휘날리는데 웃음이 넘치는 빛나는 얼굴과 얼굴. 꿈에 그리는 내 고국을 밟는 우리들은 울었노라. 반갑고 기쁘기 이에 더할 바 있으랴. 하늘이 우리를 돕고 연합국이 우리의 벗이 되고 우리의 동포 또한 한길로 뭉치니 자주독립이 우리 앞에 있도다. 자유해방이 우리 손에 있도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 귀국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들은 임시 정부가 미군정에 의해 공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제1진 인사들은 1945년 11월 23일 충칭에서 출발해 11월 27일 서울에 도착하였으며 김구, 김규식, 이시영 등이 포함되었다.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비롯한 광복 직후 등장한 어떤 자치 조직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았으며 군정을 통해 직접 통치하였다.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으로 신탁통치에 반대하고
민족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한 정치 지도자였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대통령이었으며
1945년 10월 16일 하와이에서 귀국한 이후 미군정과 긴밀히 협력하였다.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외교부장을 지냈으며
좌우 합작을 통한 민족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