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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 사람들, 돌아온 사람들

일본의 통제가 심해지자 한국인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또는 삶의 터전을 찾아 미국, 중국, 연해주, 일본 등지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강제 동원되어 군수 공장 등에서 일하는 한국인도 많았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군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와 철수를 진행했고 일본인도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해외에 머물던 많은 동포들이 귀국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삶의 터전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야 했다.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전재동포)들을 위한 구호 사업도 진행되었다.

9월 2일 도쿄만 미주리 호에서 일본이 항복을 조인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화보이다.

일본군 퇴각, 일본인 본국 송환

1945년 9월 8일 미군 제24군단이 인천에 상륙하였고
다음날인 9월 9일 서울에서 일본군은 공식적으로 항복하였다.

미군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철수를 실시하였다.

소련군은 1945년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 후 한반도 북부에 진주하였고
일본군의 항복과 무장해제 후 철수를 실시하였다.

미군정은 1945년 12월 이후 일본인의 재산 몰수와
일본인 정착 불가 및 송환 방침을 정하였다.

9월 9일 중앙청에서 개최된 일본군 항복문서 조인식 사진이다.
아베 노부유키 총독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 제40보병사단에서 1945년 9월 28일부터 11월 15일까지 부산항에서 일본군의 군사 철수 및 본국으로 송환 과정을 정리하여 발간한 책자이다.

기댈 곳이 없었던 전재동포

일제강점기 동안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만주, 중국, 사할린 등으로 이주하거나 강제 동원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약 250만 명의 전재동포들이 조국으로 귀환하였다. 전재동포들은 타국에서나 고국에서나 힘든 삶을 이어갔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귀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식량, 주택, 생필품 등은 매우 부족했다. 동포 중에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살리자 구하자❞

전재동포를 돕기 위한 구휼활동이 전개되었다.

조선구휼동맹 안동지부에서 제작한 구휼함이다.

전재동포를 위하야

광복 이후 전재동포가 많이 귀환하자 민간 구호단체가 만들어졌고 이후 미군정 통제 하에 관리되었다.

미군정은 귀환 동포 관리를 시작하였고 공공건물, 적산재산 등을 임시 거처로 개방하였다.

❝한푼의 돈! 이라도 우리 동족을 참으로 사랑하는 진정이라면!
주저말고 발휘하라! 동족애를!!

질병에 고통하는 전재동포여! 본회로!
무료진료! 치료를!❞

대한독립협회 원호부에서 제작한 전재동포를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는 글을 담은 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