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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해

광복은 정치적 해방이었다. 억눌려 있던 다양한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표면으로 분출되었다.
국내에서는 여운형이 건국 동맹과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김성수 등은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국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도 귀국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하는 정당 단체들을 비롯하여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 단체 등 수백 개의 조직이 만들어졌으며, 모두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3국 외상회의에서 한반도의 신탁통치 결정이 발표되자, 즉각적인 독립을 기대했던 여론과 정치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우익 세력은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했고, 좌익 세력은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을 총체적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며 양측의 대립은 격화되었다.

우리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조직 활동은 철저히 금지되었고
독립운동, 사상운동, 노동운동 등은 밀정의 감시와 고문 속에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광복 직후 두세 달 사이 수백 개의 단체가 등장했다.
‘우리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이 폭발했다.

조선의 장래를 결정하는 각 정당 각 단체 해설

대한민국 임시 정부

각 정당 건국준비위원회(인민공화국), 한국민주당, 국민당 , 조선민주당, 민중당, 민일당, 대한민국인민정치당, 조선혁명당, 신민당, 대한의열당, 일오회, 통일정당준비회, 고려청년당, 조선청년당, 조선건국준비대, 학병동맹, 고려동지회, 국민대회준비회, 조선여자국민당, 건국부인동맹, 한국애국부인회

광복 이후 활동 중인 정치 단체들의 선언, 강령, 정책, 조직 등을 정리하여 발행한 책이다. (정당 21개, 단체 15개)

한국민주당
국민당
대한민국인민정치당
조선혁명당
신민당
대한의열당
통일정당준비회
고려청년당
조선국군준비대
학병동맹
고려동지회
조선여자국민당
신한민족당
조선건국청년회

신탁통치

1945년 12월 16일부터 26일까지 미국․영국․소련은 모스크바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한반도에 임시 민주정부를 수립한 뒤 미국․영국․중국․소련 4개국에 의한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결정은 1945년 12월 27일 공식 발표되었으며 국내에 알려지자마자 즉각적인 독립을 기대했던 여론과 정치 세력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동아일보』 1면 보도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보도하였는데 이는 양국 모두 신탁통치에 합의한 모스크바 회의의 실제 내용과 다른 보도였다. 이 보도는 전국적인 반탁운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익 세력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며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했고 좌익 세력은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을 총체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신탁통치 절대 반대, 결사코 자유를 전취하자❞

❝일어나자! 동포여!
살아서 노예가 되느니보다 죽어서 조국을 방호하라❞

대한독립협회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한 전단이다.

조선청년총동맹에서 제작한 전단이다. 반탁운동은 친일민족반역자들의 위선이며 이승만을 비롯한 우파 인사들을 파시스트라고 비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