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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은 교실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일본은 중일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민족 말살 정책을 추진하면서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였고, 전시 동원을 위한 군국주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한편, 한글 연구를 통해 민족의식을 지키고 독립 의지를 높이려는 노력은 일본의 억압 속에서도 계속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한글 강습회가 열리고 학교에서 한글 교육이 즉시 시행되었다. 미군정은 학무국을 설치하여 각 학교에 한국인 직원을 배치하고 한글 교과서를 제작, 보급하였다.

전시 동원 체제 군국주의 교육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은 전시 동원을 강화하는 한편, 교육 현장에서도 군국주의 교육을 강화하였다.

특히 여성들을 간호 인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각급 학교에 간호과정을 설치하고 단기 교육을 통해 간호보조인력을 양성하였다.

숙명고등여학교 간호과정 수료 증명서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은 여성들을 간호인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각급 학교에 간호과정을 설치하고 단기 교육을 통해 간호보조인력을 양성하였다.

국립용정개척의학원에서 수여한 졸업증서이다. 광복 직후에 약200만명의 한국인이 만주지역에 살고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 만주국은 전시의료를 강화하였고 의학교육기관은 일본인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1940년 개원한 개척의학원에서는 한국인이 입학하여 공부 할 수 있었다.

되찾은 우리말

광복이 되자 일제강점기 동안 억압되었던 한글 교육이 즉시 시작되었다.

조선어학회와 각종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글 강습회가 전국적으로 열렸고 한글 교과서가 보급되었다.

학교에서는 한글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매우 부족했다.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모두 한글을 배워나갔다.

조선어학회에서 1945년 9월 개최한 첫 번째 한글강습회 청강권이다.

한글문화보급회 국어강습회 수료증서이다.

미군정의 교육

미군정은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학무국을 설치하여 새로운 교육 제도를 추진하였다.

『한글 첫 걸음』 등의 교과서를 제작하여 보급하였다.

미군정은 문맹률을 낮추어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교육을 활용하였다.

군정청 군정장관 아놀드가 초등학생에게 한글첫걸음 1권과 초등국어교본 상권을 전달하는 모습이다.

조선어학회에서 제작하고 군정청 학무국에서 발행한 초등학교 교과서이다.

초등 국어교본은 군정청 학무국이 주도하여 인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