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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포 여러분 일본은 무조건으로
연합국에게 항복을 하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와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독립에 대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국제 사회는 1943년 카이로 회담, 1945년 2월 얄타 회담, 같은 해 7월 포츠담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하였다. 국내에서는 건국 동맹을 조직한 여운형이 1945년 8월 15일 새벽에 조선총독부의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과 만나 광복 이후의 치안 유지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일본의 항복 이후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북위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미군과 소련군이 분할점령하게 되었고 이는 남북한의 분단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1945년 9월 9일에는 미군정이 시작되었으며 한국인 유력 인사들은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설계하고자 노력하였다.

1940년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광복군 제2지대 배지이다.
K.I.A(Korea Independence Army)

광복 직전의 상황

1945년 8월 15일 새벽, 여운형은 조선총독부의 엔도 류사쿠(遠藤柳作) 정무총감과 회담을 갖고 광복 이후의 치안유지와 질서 정비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8월 16일 그는 사전에 조직해 두었던 건국 동맹을 바탕으로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국가 건설 준비를 시작했다.

한편 중국 시안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전략첩보국(OSS) 훈련대원들은 연합군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앞두고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일본의 항복에 당황했고 아쉬움을 느꼈다.

조선건국동맹은 여운형이 1944년 8월 10일에 조직한 사회주의, 좌익계열의 비밀결사단체이다.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건국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45년 8월 15일자 매일신보에 일본의 항복문이 실려있다.

광복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의 항복 방송이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다.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는 일본의 항복 소식을
여러 나라 언어로 전 세계에 방송했으며 한국어로도 방송되었다.

서태평양 지역에 주둔한 미군들을 위한 신문에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었다는 WAR OVER 글자가 1면에 크게 적혀 있다.

타임(Time) 잡지 표지에 일본의 패망을 표현하는 일장기에 X 표시가 그려진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1945년 8월 17일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초등학교(보성공립보통학교)에서 열린 조선건국축하회 사진이다. 사람들이 팻말과 태극기를 들고 광복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연합국의 분할점령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 이후 미국과 소련은 북위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각각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하였다.

소련군은 북쪽에 미군은 남쪽에 진주하였다.
분할 점령은 이후 남북한의 분단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북한 주둔 소련군 총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이 근로자 및 지식인을 대상으로 함경남도 함흥에서 발표한 것이다. 소련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조선을 해방시켰으며 모든 권력은 조선 민중에게 있으니 새로운 국가 설립에 앞장설 것을 권유하고 있다.

북위38도선으로 인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문제점 등을 들어 38도선의 철폐를 촉구하는 대회 소집을 주장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미국이 한국의 점령을 준비하던 시기에 미군 정보 기관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한 조선 지명 안내서이다.

광복의 기쁨

1945년 8월 중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의 패전을 공식적으로 알지 못했다.
항복 발표 당일인 8월 15일에는 일본인 경찰관과 헌병들이 활동 중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광복의 기쁨이 길거리에 퍼진 것은 8월 16일 이후이다.
일본에 대한 집단적 반감이 표출되거나 일본인을 습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한국인 자치 조직인 치안대가 치안을 유지해 큰 소동은 없었다.

새로운 국가 체제 구상

한국인 유력 인사들은 국내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설계하고자 했다.

여운형은 일본의 패전이 임박하자 건국동맹을 기반으로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1945.8.16.)하여 치안 유지와 자치 체계 수립을 시도했으나, 미군정의 부정적 시선과 좌우 진영의 갈등 속에서 끝내 정치 체제로 완성되지는 못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 경상북도지부 달성북부지구 공산분회 선전부 관계철로 건국준비위원회의 지방 분회의 활동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이다.

한국민주당의 5개의 강령과 8개의 정책이 실려있다.

건국준비위원회가 9월 6일 전국인민대표회의를 열고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음을 알리는 전단이다.

미군 진주 이후 김성수, 송진우 등이 한국민주당을 만들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귀환을 기다렸고 이후 미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45년 9월 16일 창당된 한국민주당의 정강, 정책, 당헌을 담은 책자이다.

1945년 9월 16일 우익 세력이 결집하여 창당한 한국민주당의 선언문이다.
임시 정부 지지를 통한 자주독립국가 건설, 민주주의 체제 확립, 민생 안정 등을 목표로 하는 선언문과 5개 강령, 8개 정책 기조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