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시대를 견디다

1945년 초가 되자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망은 명백해 보였다. 1940년 이후 중국 충칭에 자리잡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전개를 지켜보며 일본 패망 이후의 국가 건설을 구상했다. 정부는 여러 독립운동 조직을 통합하여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조직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했다. 다른 한편,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었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대일전쟁에 참전하고자 했다. 이로써 연합국인 중국과 미국의 승인과 지지를 받아 광복 이후 국제적으로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고자 했다. 1945년 한국광복군은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전략첩보국(OSS)과 합작해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으나, 광복으로 인해 그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본의 통제와 탄압은 한층 심해졌고, 한국인들은 전쟁 동원과 물자 수탈에 시달렸다. 일본은 중일전쟁을 시작하면서 군수 물자와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1938년에는 「국가총동원법」을, 1939년에는 「국민징용령」을 제정하였다. 이들 법령은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뒤 더욱 광범위하게 집행되었다. 징용 대상은 만 16세 이상 40세 이하의 남성이었으며, 이들은 일본 본토와 일본이 식민침략 중이던 여러 지역으로 끌려가 탄광, 군수공장, 비행장, 건설 현장 등에서 강제 노동을 하였다. 1944년에는 징병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어 20세 이상의 남성이 군 복무 대상으로 편입되었다.

시대를 견디다 (86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