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점령과 정부 수립의 열망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 이후, 미국과 소련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했다. 소련군은 북쪽에, 미군은 남쪽에 진주했다. 이 분할 점령은 훗날 남북한 분단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인 유력 인사들은 국내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국가 체제를 설계하고자 했다. 여운형은 1945년 8월 16일 안재홍 등과 함께 좌우익이 참여한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치안 유지와 자치 체제 수립을 시도했으나, 미군정의 부정적 시선과 좌우 진영의 갈등 속에서 끝내 정치 체제로 완성되지는 못했다. 미군 진주 이후 김성수, 송진우 등이 한국 민주당을 만들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귀환을 기다렸고 이후 미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광복은 곧 정치의 해방이었다. 억눌렸던 다양한 목소리가 갑자기 지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인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조직 활동은 철저히 금지되었고, 독립운동과 사상운동, 노동운동은 밀정의 감시와 고문 속에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광복 직후 두세 달 사이 수백 개의 단체가 잇따라 등장했다. “우리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이 폭발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신탁 통치안이 결정되자 좌익과 우익은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분할점령과 정부 수립의 열망 (148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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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제군!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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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자동맹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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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동지회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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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명 안내서
19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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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동맹 성명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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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 출입허가증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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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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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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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행진가, 조선행진곡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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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총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 포고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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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의 미·소군
194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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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상북도지부 달성북부지구 공산분회 선전부 관계철
194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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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단
194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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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신 대한여자국민당 입당원서
194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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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선언
194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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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인민정치당 전단
194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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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동맹 성명·강령·행동강령 전단
194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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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당 제5차 대표대회 선언
194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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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제2호
194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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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군대 사령부권 10원 지폐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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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철수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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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에 잇는 우리 임시정부의 방송내용(조선통신사 제공) 전단
1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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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당 전단
1945~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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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공화국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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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위원회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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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공화국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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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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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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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 선언서
1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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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열당본부 선언문
1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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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단 선언
1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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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병동맹 선언서
1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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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사상회 배포 전단
1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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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주당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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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1945년 9월 3일자
194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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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군준비대선포
19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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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1945년 9월 5일자
19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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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5년 9월 6일자
194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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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동맹 전단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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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