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 통치와 일상의 변화
1945년 9월 8일 미군 제24군단이 인천에 상륙하였고 다음날인 9월 9일 서울에서 일본군은 공식적으로 항복하였다. 미군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철수를 실시하였다. 한국인에게 연합군은 광복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그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광복이 되자 일제강점기 동안 억눌렸던 한글 교육도 즉시 시작되었다. 조선어학회와 각종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한글 강습회가 전국적으로
열렸고, 한글 교과서가 보급되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는 한글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턱없이 부족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새롭게 한글을 배워야 했다.
미군정은 교육 행정을 담당하는 학무국을 설치해 새로운 교육 제도를 추진했다. 『한글 첫 걸음』 등 교과서를 제작·보급했으며, 문맹률을 낮춰
효율적인 통치를 이루기 위해 교육을 적극 활용했다.
미군정은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을 통치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쇄물을 이용했다. 광복 이후의 혼란을 통제하고 군정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다양한 포고문과 포스터 등을 제작하였다. 또한 일본인과 일제 기관이 남긴 토지 등 귀속재산을 접수하여 국가 소유로 전환하였다. 한국인들은 미군정 체제아래에서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 갔다.
미군정 통치와 일상의 변화 (90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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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정부 및 연합군 환영준비회 취지
19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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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 잠용엽서
194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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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경찰의 신발족 전단
1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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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가극단 전속계약서
194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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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 Times Vol. 1 No. 1
19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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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호
194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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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
194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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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3호
194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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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에게 고함
1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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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미군 환영식
194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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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5년 9월 11일자
194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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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연합군 환영 행진
194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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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5년 9월 16일자
194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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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담배 포갑지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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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중보 1945년 9월 21일자
194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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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서울시내 구경
194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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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일보 1945년 9월 24일자
194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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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보 1945년 9월 25일자
194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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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보 1945년 9월 25일자
194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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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중보 1945년 9월 27일자
194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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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전단
194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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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군정도지사 포고문 1호 발포의 건
194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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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고문통달에 관한 건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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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조선 정책은 오직 하나 뿐이다 하지중장, 미국무부장관 마샬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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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단결하야 모리행동을 타파하자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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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절무니들아 조선을 위하야 일하자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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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중보 1945년 10월 13일자
194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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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곡자유판매지령 제1호
194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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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곡기타농작물에 관하야
194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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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파는 쌀에 우는 사람 없어진다(경상남도)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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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보 1945년 10월 5일자
194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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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청년 신식교제법
194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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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5년 10월 6일자
194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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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을 환영하는 서울 거리
194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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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매도증서
194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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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청재산이전 허가증
194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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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중보 1945년 10월 14일자
194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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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서울역 풍경
194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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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인민위원회 연합군 환영대회 참석 권유 전단
194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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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1945년 10월 15일자
194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