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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만세

1945년 8월 15일 낮12시, 일본의 무조건 항복 방송이 라디오를 통해 발표되었다.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는 일본의 항복 소식을 여러 나라 언어로 전 세계에 전했으며, 한국어로도 송출했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의 패전을 즉각적으로 알지 못했다. 또한, 일본 패전을 알았더라도 항복 발표 당일인 8월 15일에는 일본인 경찰관과 헌병들이 여전히 활동 중이었기에, 사람들은 기쁨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었다. 광복의 기쁨이 길거리에 퍼진 것은 8월 16일 이후였다. 일본에 대한 집단적 반감이 표출되거나 일본인을 습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한국인 자치 조직인 치안대가 치안을 유지해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들은 임시 정부가 미군정에 의해 공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제1진 인사들은 1945년 11월 서울에 도착했으며, 김구, 김규식, 이시영 등이 포함되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만주, 중국, 사할린, 동남아 등으로 이주하거나 강제 동원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약 250만 명의 전재동포(광복 직후 해외에서 귀환한 동포)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타국에서 어려운 삶을 살던 이들은 귀국해서도 어려운 삶을 겪어야 했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난 귀환자들을 위한 식량, 주택, 생필품 등의 부족이 극심했다. 귀환하지 못하고 타국에 남은 동포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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