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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4,523

개항~대한제국(1910)
14,668

일제강점기(1910~1945)
9,629

광복~1950년대
4,764

1960년대
7,362

1970년대
7,442

1980년대
7,246

1990년대
3,426

2000년대
20,958

2010년대
2,652

2020년대
0

2030년대
804

연도미상
구술생애사 영상 활용 다큐멘터리 제작 2019 구술생애사 영상 활용 다큐멘터리 제작 <IMF 경험을 중심으로 한 구술 생애사>로 하여 IMF를 겪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와 사회재편이 한국인의 실제 삶과 의식 및 정서구조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2019년 독립운동가 스토리 영상 <나의 독립 영웅> 2019 2019년 독립운동가 스토리 영상 <나의 독립 영웅>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한국방송공사(KBS)가 공동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 각계 유명 셀럽들이 소개하는 독립운동가 스토리영상<나의 독립 영웅> 100편을 제작하여 2019년 1월1일 부터 6월말까지 주4회, KBS 1TV, 월화수목 21:55~22:00에 방송하였다. 시범 아파트 2021 시범 아파트 현재 서울특별시에 남아있는 1970년대 건립된 시범 아파트 단지를 기록 촬영 하였다. 평화를 심다 세계를 품다 2020 평화를 심다 세계를 품다 2020년은 대한민국이 유엔의 교육·과학·문화 전문기구인 유네스코에 가입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70년간 우리나라는 ‘지구촌에 평화를 뿌리내리고 인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정신아래 유네스코와 손잡고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출발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엔에 가입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은 유네스코 가입을 위해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 여러 회원국의 지지에 힘입어 1950년 6월 14일, 마침내 가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11일 뒤 6·25전쟁이 일어나 우리나라는 큰 위기를 맞았고, 이때 유네스코는 신속히 한국 교육 재건사업에 나서 우리가 다시 일어서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발전과 함께 해 온 유네스코는 교육·과학·문화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유네스코는 때로는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였고, 때로는 상호 이해와 소통의 매개체였습니다. 한국 역사와 문화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한편, 국제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국내에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우리나라는 이제 유네스코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국내외 새로운 교류와 협력의 비전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지난 70년간 한국과 유네스코가 함께 해 온 동행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유네스코 가입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역할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영삼민주센터 소장자료 2018 김영삼민주센터 소장자료 역대 대통령 자료 수집 사업의 일환으로 김영삼민주센터의 소장자료를 디지털화 하여 사진·영상·음원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의 DB를 구축하였다. 김영삼민주센터에서 제공한 자료는 故 김영삼 前 대통령의 취임 전과 재임 당시의 주요 활동상을 담고 있다.
베트남에 간 기업과 근로자(음용기) 2018 베트남에 간 기업과 근로자(음용기) 1960~1975년 베트남 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하고, 베트남 전쟁의 군사·외교적 측면에 집중하던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 나아가 파월 기업과 근로자를 중심으로 경제·사회적 측면을 조망하고자 한다. 용산 나진상가 2021 용산 나진상가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용산전자상가는 컴퓨터, 전자, 전기 물품 등의 상점이 밀집되어 있는 구역으로 대형 상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용산전자상가의 중부에 있는 나진상가를 기록하였다. 나진상가는 휴대전화, 컴퓨터, 게임기 등 전자기기를 취급하고 있다. 베트남에 간 기업과 근로자(이순흥) 2018 베트남에 간 기업과 근로자(이순흥) 1960~1975년 베트남 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하고, 베트남 전쟁의 군사·외교적 측면에 집중하던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 나아가 파월 기업과 근로자를 중심으로 경제·사회적 측면을 조망하고자 한다. 베트남에 간 기업과 근로자(신현택) 2018 베트남에 간 기업과 근로자(신현택) 1960~1975년 베트남 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하고, 베트남 전쟁의 군사·외교적 측면에 집중하던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 나아가 파월 기업과 근로자를 중심으로 경제·사회적 측면을 조망하고자 한다. 베트남에 간 기업과 근로자(유창근) 2018 베트남에 간 기업과 근로자(유창근) 1960~1975년 베트남 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하고, 베트남 전쟁의 군사·외교적 측면에 집중하던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 나아가 파월 기업과 근로자를 중심으로 경제·사회적 측면을 조망하고자 한다.
구 용산철도병원 2015 구 용산철도병원 구 용산철도병원은 1907년 조선통감부 철도국이 '용산동인병원'으로 처음 건립했다가 1918년 '용산철도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26년부터 철도국에서 직접 운영하였다.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임대되어 연구동과 연구실로 활용되다가 2007년 용산역세권 부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철수하였다.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2016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대구광역시 서구 염색공단중앙로에 위치한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은 염색 전용 산업단지이다. 금호강변에 가까워서 풍부한 용수 사용이 가능하고 대구공항에서 14Km, 대구역에서 5km 거리이며, 경부, 구미, 중앙, 88고속도로와의 진입 또한 1km 반경으로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이 용이하고 공동산업지역을 형성하여 최첨단 기술의 도입과 보급에도 편리하다. 1980년 설립인가 후 공동폐수처리장 시설을 준공하여 1981년에 대구염색공업공단으로 문을 열었다. 1983년 전용용수 시설을 세우고 1987년에 열병합발전소 시설을 준공하며 시설을 확충해 나갔다. 1994년에 공동폐수처리장을 증설 및 보완하였고 1995년 열병합발전소를 증설하였다. 1997년 공단명칭을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으로 변경하고 1999년에 용수재 이용시설을 준공, 친환경적인 공단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삼성초등학교 구 교사 2018 삼성초등학교 구 교사 1911년 일제의 조선교육령 발표 이후 대전에 처음 생긴 초등학교 건물이다. 삼성초등학교는 1911년 9월 1일 회덕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1949년 12월 31일 대전삼성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1938년 구교사가 완공되었고, 1992년 1월 11일 그 건물을 한밭교육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 1996년 3월 1일에는 대전삼성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2001년 9월 1일 개교 90주년 ‘꿈과 사랑’의 타임캡슐을 봉안(2021년 개봉 예정)하였으며, 2010년 3월 1일 현재 14학급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원 23명과 행정직원 9명 등 총 32명의 교직원이 재직 중이다. 교훈은 ‘생각은 깊게, 마음은 넓게, 꿈은 크게’이고, 교목은 은행나무이며, 교화는 장미이다. 교육목표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보람과 긍지와 능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2층 규모의 붉은 벽돌 치장 쌓기한 건물로, 당시 유리를 많이 사용하던 추세에 맞춰 전·후면을 비롯한 양 측면에 유리창을 많이 넣었고, 현관은 충남도청처럼 귀빈 승용차가 현관 입구에 차를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입면에는 원형창을 설치, 내부 채광을 도입함과 동시에 주변의 직사각형 수직창과 대조를 이루게 함으로써 미적인 측면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구 교사를 사용하고 있는 한밭교육박물관은 9개의 전시실과 4개의 전시코너, 안내실, 사무실, 관장실, 자료실, 휴게실,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각 전시실에는 시대별 교육장소인 서당, 필방, 서원, 초등학교 등을 실사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훈민정음, 천자문, 교과서 등의 교육서적과 필기구를 전시하고 있다. 이 밖에 선비의 서안, 책궤, 평상, 사방탁자, 백립과 여인의 장신구, 경대, 다듬잇돌, 가마, 화장품 등의 생활용품도 전시하고 있다. 사회교육으로는 신임교사연수, 근대건축문화기행, 초등학생 역사문화 탐구교육, 다문화가족과 함께하는 문화교실, 오감으로 즐기는 우리문화교실, 자녀와 함께하는 학부모 교실, 박물관아카데미, 찾아가는 박물관 등 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상설체험으로 절구, 맷돌, 쟁기 등이 있는 농기구 전시장과 투호, 비석치기, 제기차기 등을 할 수 있는 민속놀이 체험장, 에듀코어 포토존, 야생화 및 화훼 관찰 학습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 최초 초등학교의 건물이면서 교육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역사적, 교육적 가치가 있다. 시범 아파트 2021 시범 아파트 현재 서울특별시에 남아있는 1970년대 건립된 시범 아파트 단지를 기록 촬영 하였다.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2018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 전투기를 은폐・보관하거나 정비・점거하기 위하여 건설한 시설물로서 1937년부터 일본군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만들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은 전세가 밀리게 되자 제주도내 해군 비행장(속칭 알뜨르 비행장) 유개엄체(격납고) 시설에 대한 보강과 은폐・엄폐공사를 시작하였다. 일본 방위청 소장 자료에 따르면, 1944년 10월 현재 콘크리트 유개엄체[지붕 있는 격납고] 30동, 돌과 나무로 구성된 무개엄체[지붕 없는 격납고] 22개 등이 완성되거나 작업 중이었다. 유개엄체 20동은 1943년 11월~12월에 100% 공사가 진행되었고, 나머지 10동은 1944년 4월~8월까지 2차로 진행되었으나, 8%의 부진한 진척 공정률에 머물렀다. 무개엄체는 1944년 7~9월까지 100% 공사가 완료되었다.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는 제주도의 해군 비행장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전투기 격납 시설의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44년 들어서 진행된 2, 3차 공사를 통해 구축된 격납고는 은폐・엄폐의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전 등에 의하면 실제 비행기 격납이 이뤄졌으며, 태평양전쟁 종전 후에는 지역 주민들에 의해 농작물 보관 등의 용도로 활용되어 왔다. 2002년 5월 31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폭 약 20m, 높이 4m, 길이 10.5m 규모의 격납고 19개소가 현재 확인된다. 유개엄체는 크게 상부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고 위에 잔디나 잡풀을 심어 위장해 놓은 유개격납고와 상부가 없는 무개격납고로 구분되는데, 현재 원형이 남아 있는 격납고는 유개격납고 19곳이다. 격납고 19곳은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으나,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주변 토지를 임대해서 경작하는 농민들의 농작물 저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일부 격납고 유적에는 당시 자살 특공기를 본뜬 미술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전쟁에 강제 동원된 주민들의 피와 땀이 어린 역사적 현장으로서, 전쟁의 비극적 교훈을 되새겨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큰 시설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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