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다음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2,748

개항~대한제국(1910)
8,571

일제강점기(1910~1945)
6,515

광복~1950년대
2,740

1960년대
4,371

1970년대
4,371

1980년대
1,923

1990년대
2,169

2000년대
18,712

2010년대
460

연도미상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2018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된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 경기 모습을 기록하였다.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번 올림픽은 강원도 평창을 비롯해 정선, 강릉에서 경기가 진행되었으며 총 92개국에서 2920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15개 종목, 102개 세부 종목의 경기를 치렀다. 논산육군훈련소 2018 논산육군훈련소 육군의 신병에 대한 군사 기본훈련과 교육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는 논산 소재 육군 교육훈련 기관이다. 1951년 11월 1일 논산에서 창설되어 이듬해인 1952년 2월 1일부터 입소자들에 대한 훈련을 실시한 육군 제2훈련소가 육군훈련소의 모체이다. 제2훈련소의 설치는 당시 제주도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신병훈련 장소로 부적합함은 물론, 내륙에 위치한 각종 병과학교들과의 연계를 원활하게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논산시 연무읍 일대에서 창설된 육군 제2훈련소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휘호로 연무대라고 명명하여 국민들에게는 그 명칭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창설 당시 14,000여 명의 수용 규모로 시작한 제2훈련소는 계속해서 규모를 확장해 갔으며, 1953년 11월까지 제23·25·26·27·28·29·30연대 등 총 7개의 교육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1955년 12월 31일 제주도의 제1훈련소가 해체되면서 논산의 제2훈련소는 전 육군의 단일 신병훈련소가 되어 신병 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1999년 2월 1일 육군훈련소로 부대명칭이 개편되었다. 창설 초기에는 병기·병참 등 주로 특별병과 훈련을 실시하였으나 제1훈련소 해체 후에는 보병·포병 등 전투병과 훈련에 주력하였다. 1960년 이후 각 사단에 신병교육대가 설치되면서 군사기초교육만을 담당하다가 1979년부터는 특기병 위주로 군사기초교육을 실시하였다. 육군훈련소의 규모는 주둔지와 훈련장을 합쳐 6,322,722㎡에 이르는데, 이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109개에 해당하는 것이다. 현재는 현역병과 부사관후보생을 대상으로 하는 현역 5주과정과, 사회복무요원·산업기능요원·공증보건의사·징병전담국제협력의사·전문연구요원·공익법무·공익수의사 등 보충역 편입자 및 의무경찰·의무소방 등 전환복무요원을 대상으로 하는 보충역 4주과정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역병 교육은 3단계로 구분하여 실시되고 있는데, 제1단계에서는 군인기본자세 확립, 2단계에서는 야외종합훈련을 비롯한 기초 전투기술 숙달, 제3단계에서는 군인화 완성을 목표로 진행되며, 보충역 교육은 군인 기본자세 확립, 기초 전투기술 숙달, 전시 임무 수행 능력 배양 등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육군훈련소는 1951년 11월 창설 이후부터 현재까지 600만 명을 훨씬 상회하는 육군정예 병사를 양성하여 국가방위와 국가발전의 견인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 2018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 한국 전쟁은 1951년 여름 휴전 협상에 돌입하면서 포로를 둘러싼 쟁점으로 2년 가까운 전쟁을 지속했다. 1949년 발효된 전쟁 포로의 대우에 대한 '제네바 제3협약'이 처음 적용된 전쟁이였지만, 열전(熱戰)의 소용돌이 속에 포로 처리 문제는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포로의 성격에 따른 분류와 재분류, 심문과 재심문, 강요된 선택과 교육이 이루어졌고, 수용소 내에서는 잇따라 참혹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마침내 포로들은 돌아간 자, 돌아가기를 거부한 자, 중립국을 선택한 자로 나뉘어졌지만, 이미 많은 포로들은 극단적인 이념 대결, 폭력과 차별 속에 고통 받은 뒤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은 누구였으며, 수용소의 생활과 그 이면은 어떠했는지, 포로의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마지막 남은 냉전의 땅에서 다시 한번 전쟁 포로들을 생각하고, 진정한 세계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이기를 바란다. 안녕! 민주주의 2018 안녕! 민주주의 이번 특별전은 한국 민주주의의 여정을 사진을 통해 조명한다. 한국사회는 냉전과 분단이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던 시대를 지나, 평화와 민주주의가 삶의 근본이 되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해 걸어온 이 길은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에 힘입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주인공은 너와 나, 우리들이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권력의 분산과 견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손을 맞잡고,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하며 삶의 터전을 스스로 가꾸기 위해 마음을 모은 사람들이다. 전환의 시대, 우리들은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시대, 평화로 가는 길을 어떻게 열 것인가? 이번 특별전에 초대된 사진들은 한국사회가 놓여있던 민주주의의 조건을 질문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들의 행위를 포착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안녕!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크고 작은 목소리들을 들려준다. 하지만 기억하자. 살아 숨 쉬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당신이 바라보는 사진 바깥에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는 점을 말이다. 기증자 손동헌 구술영상 2017 기증자 손동헌 구술영상 1930년 함경남도 북청 출생, 2016년 '북한 신분증' 등 8건 8점 기증.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 2018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 한국 전쟁은 1951년 여름 휴전 협상에 돌입하면서 포로를 둘러싼 쟁점으로 2년 가까운 전쟁을 지속했다. 1949년 발효된 전쟁 포로의 대우에 대한 '제네바 제3협약'이 처음 적용된 전쟁이였지만, 열전(熱戰)의 소용돌이 속에 포로 처리 문제는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포로의 성격에 따른 분류와 재분류, 심문과 재심문, 강요된 선택과 교육이 이루어졌고, 수용소 내에서는 잇따라 참혹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마침내 포로들은 돌아간 자, 돌아가기를 거부한 자, 중립국을 선택한 자로 나뉘어졌지만, 이미 많은 포로들은 극단적인 이념 대결, 폭력과 차별 속에 고통 받은 뒤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은 누구였으며, 수용소의 생활과 그 이면은 어떠했는지, 포로의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마지막 남은 냉전의 땅에서 다시 한번 전쟁 포로들을 생각하고, 진정한 세계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이기를 바란다. 세월호참사 5주기 기억식 2019 세월호참사 5주기 기억식 세월호참사 5주기 기억식이 2019년 4월 16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렸다.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재단의 주관으로 유가족과 생존 학생, 정계 인사들을 비롯해 주최 측 추산 약 5000명의 시민이 참석하였다. 기억식은 묵념, 추도사, 기억공연, 기억글 낭송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화성 4·15 100주년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추모제 2019 화성 4·15 100주년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추모제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은 1919년 3·1운동 당시 일본 군대가 제암·고주리에서 주민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2019년 4월 15일 화성시 주최로 열린 화성 4·15 100주년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추모제는 개회사, 관련 영상 상영, 유족대표 발언, 추모사와 함께 세계평화연대도시 각국 대표와 내빈들이 무대에 올라 추모 및 평화 메시지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녕! 민주주의 2018 안녕! 민주주의 이번 특별전은 한국 민주주의의 여정을 사진을 통해 조명한다. 한국사회는 냉전과 분단이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던 시대를 지나, 평화와 민주주의가 삶의 근본이 되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해 걸어온 이 길은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에 힘입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주인공은 너와 나, 우리들이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권력의 분산과 견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손을 맞잡고,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하며 삶의 터전을 스스로 가꾸기 위해 마음을 모은 사람들이다. 전환의 시대, 우리들은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시대, 평화로 가는 길을 어떻게 열 것인가? 이번 특별전에 초대된 사진들은 한국사회가 놓여있던 민주주의의 조건을 질문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들의 행위를 포착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안녕!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크고 작은 목소리들을 들려준다. 하지만 기억하자. 살아 숨 쉬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당신이 바라보는 사진 바깥에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는 점을 말이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찬반단체 반응 2019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찬반단체 반응 헌법재판소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2019년 4월 11일 이후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의 기자회견과 보수계열 단체 반대 기자회견을 기록하였다.
부산상해거리 2016 부산상해거리 부산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부산상해거리는 부산 최대의 중국인 거주 지역으로 1993년 부산시가 상해시와 자매도시결연을 맺으며 상해거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국내에서 유일한 차이나타운특구이기도 하다. 상해거리는 부산역 건너편 중앙대로 179번길과 대영로 243번길 주변으로 초량외국인상가와 붙어 있다. 상해거리는 1884년 청나라가 초량에 영사관을 설치하면서 청관거리가 형성된 것이 시초이다. 청관거리에는 다양한 점포들이 들어서면서 거리가 활성화되었다. 중국 신해혁명을 겪으면서 중국을 벗어나 한국으로 넘어온 화교들이 6.25 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에 자리 잡았고, 이들이 이 지역에서 식당과 점포를 운영하면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 유명한 중국 전통음식점이 많아 ‘올드보이’ 등 영화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한다. 화교학교와 기숙사가 있어 경상도 전역의 화교 학생들이 집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1993년 부산시와 중국 상해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이 지역에 ‘상해의 문’을 세웠다. 중국에서 제작해 설치한 상해의 문에는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용 문양과 십이지신(十二支神]), 그리고 상해의 시화(市花)인 난초가 그려져 있다. 두 도시간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상해에는 부산거리가 조성되었다. 부산시는 자매결연을 기념하여 2004년부터 상해거리축제를 열었다. 2006년부터 축제의 이름을 차이나타운 축제로 바꾸었고 2007년 7월 지식경제부에 의해 지역 특화 발전 특구로 지정되면서 축제의 명칭을 차이나타운 특구축제로 바꾸었다. 2012년부터는 부산차이나타운 특구문화축제로 이름을 바꾸어 매년 10월 다양한 부대행사와 함께 축제를 열고 있다. 개막식은 부산역 광장에서 열리며,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과 중국 기예단, 상해시 예술단 등 한·중의 문화가 어우러진 행사로 각광받고 있다. 이밖에도 중국 전통 차 시음회, 중국 전통 의상 체험,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독립운동사 전시, 부산광역시 동구의 역사 등 관람객을 위한 역사적·문화적 체험행사가 열린다. 청남대 2017 청남대 청남대는 대청댐 부근에 1983년 12월 27일 건축된 대통령 전용별장이다.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대청댐의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 주변 경관을 보고 감탄하면서 ‘이런 곳에 별장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청와대 경호실장에 의해 1983년 6월에 착공하여 그 해 12월에 완공되었다. 준공 당시 면적은 1,844,843㎡의 규모였다.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영빈관 의미로 영춘재(迎春齋)라 하였으나, 1986년 7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남쪽에 있다는 의미로 청남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청남대는 전두환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름휴가나 명절휴가를 비롯해서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사용하여 20년간 총 89회 472일을 이용하였다. 대통령 별장이 만들어진 것은 이승만대통령 때부터였으며 김해, 화진포 등을 비롯해 4군데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러 모두 폐쇄하고 청남대만 남겨두었다.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이 정국 구상을 하고 국빈을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대통령 외에 어떠한 민간인도 이용할 수 없었다. 또한 국가 1급 경호시설로 청와대에서 직접 관리를 했었고 4중의 경계철책을 둘렀으며 경호실 338경비대가 경비를 수행하여 민간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그 때문에 ‘권부의 아방궁’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 상징인 청남대를 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선거 공약을 이행하여, 2003년 4월 18일 청남대 소유권을 충청북도에 이양하였다. 충청북도는 곧바로 청남대를 민간에 개방하여 충청북도 청주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충청북도는 청남대를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2007년에 대통령역사문화관을 개관하였고, 하늘정원, 호반산책로, 음악분수, 습지생태원 등을 조성하였다. 그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길, 대통령 기념관, 대통령 동상 등 대통령을 주제로 한 관람시설을 확대하고 매년 봄 축제인 영춘제를 비롯한 여러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 결과 청남대를 방문한 관람객이 2010년에 500만 명에 이르렀고, 2017년 2월 17일 1천만 명을 넘어섰다. 경향신문사 소장자료 2012 경향신문사 소장자료 광복 이후 근·현대사의 중요 순간들을 기록한 경향신문사의 소장사진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운동 등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구 용산철도병원 2015 구 용산철도병원 구 용산철도병원은 1907년 조선통감부 철도국이 '용산동인병원'으로 처음 건립했다가 1918년 '용산철도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26년부터 철도국에서 직접 운영하였다.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임대되어 연구동과 연구실로 활용되다가 2007년 용산역세권 부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철수하였다. 음성감곡성당 2017 음성감곡성당 음성감곡성당은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본당으로 전국에서 18번째, 충북에서 첫 번째 지어진 성당이며 초기에는 지명 이름을 딴 장호원 성당으로 불리었다. 초기에는 한옥에서, 한옥성당으로 다시 고딕식성당으로 발전하였으며 세 건물이 상당기간 병존하였고 또 같이 사용되었다. 성당이 들어선 땅은 본래 명성왕후의 가문인 민응식의 소유였는데 초대 신부였던 임 가밀로(R. Camille Bouillon) 신부가 1896년 이 땅을 매입하여 성당의 기지로 삼아 소성당 겸 사제관을 세웠고, 1903년에 30여 칸의 한양절충식 한옥성당을 세웠다. 본당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자 가밀로 신부는 문맹을 퇴치하고 우리말을 가르쳐 한민족임을 일깨우기 위하여 1907년 매괴학당을 설립하고 1912년에는 여학교를 세웠다. 그런 가운데 성당의 신축도 진행하였는데 본 성당은 1928년 시잘레(Pierre Chizallet) 신부가 설계하고 프와넬(Victor Louis Poisnel) 신부가 보내준 중국인 기술자가 맡아 건축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원 설계는 현재보다 컸으나 건축 당시 재원 부족과 공사기간 중 심한 장마로 인해 설계대로 건축할 수 없어 사방 1m씩 줄여졌다. 장방형 평면에 장변축을 동서방향으로 두어 주출입구가 서쪽으로 나있는 전형적인 고딕성당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2002년에는 매괴 박물관을 개관했으며 2005년 사제관, 수녀원, ‘가밀로 영성의 집’을 신축하고 피정 및 순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2006년 감곡 성당을 한국 교회에서 두 번째로 ‘매괴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하였다. 음성감곡성당은 근대교회의 절충식 양식을 보여주며 민족의식을 심어준 장소로서의 의미가 있어 199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
추천 검색키워드대한민국역사박물관
6.25전쟁 민주화 독립운동 교육 일제 강점기 정부수립 스포츠 새마을운동 광복 국방 미래 대중문화 경제개발 4.19혁명 통일 세계화 좌우대립 개항 근대화 과학화 도시화 5.16 5.10

독립신문 바로가기 - 獨立新聞 상해판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1919년 8월 21일에 창간되어그 해 10월 16일(제21호)까지는 《獨立》이라는 제호로 발행...

고바우영감 바로가기 - 대한민국  최초 4컷 시사만화

대한민국임시정부 바로가기 - 1919년에 망명, 설립된 한국의 임시정부 미완성된 최초의 대한민국

소장자료 박물관 소장자료 정보 공개 전시자료 박물관 전시자료 정보 공개 발간자료 박물관 발간자료 정보 공개 도서자료 도서자료실 비치 도서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