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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1,468

개항~대한제국(1910)
3,977

일제강점기(1910~1945)
4,711

광복~1950년대
2,415

1960년대
2,840

1970년대
2,407

1980년대
1,561

1990년대
1,642

2000년대
16,701

2010년대
450

연도미상
기증자 윤중모 구술영상 2017 기증자 윤중모 구술영상 1937년 경기도 포천 출생, 2015년 '한국 승차권첩' 등 68건 471점 기증.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행사 2017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행사 고종의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고 건업회와 대한광복군정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행사가 2017년 4월 22일 충북 진천군 숭렬사에서 열렸다.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으며 유족과 송기섭 진천군수, 이시종 충북지사 등이 참석하였다. 제사와 경과보고, 추모사, 공연이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보재 이상설 기념관 건립 퍼포먼스를 하며 추모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자동차, 시대를 달리다 2017 자동차, 시대를 달리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일상 생활에 주요 교통수단인 '자동차'를 소재로 근현대사를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제작한 교육 영상이다. 진해군항마을 2016 진해군항마을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위치한 진해 군항마을은 1912년 일본이 군항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방사형 계획도시를 구상하여 조성한 곳이다. 방사형 도시는 도시의 영역과 거리망이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어 이루어진 도시 형태로 프랑스 파리가 이에 속한다. 방사형 도시는 미관이 아름답고 도심부로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규모의 군대를 한국에 진주시켰다.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한 일본은 식민지 본격사업과 앞으로 벌어질 전쟁을 준비기 위하여 한반도에 군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현 창원시 진해구인 웅천군을 군항기지로 정하고 1910년 임시 해군 건축부 지부를 조선에 세웠다. 1912년 4월 청사와 부두 시설이 일부 완공되고 해군방비대가 이전해왔으며 지명도 웅천에서 진해로 바뀌었다. 일본은 1916년 진해를 요항으로 정하고 1923년 진해 군항 설치공사를 완공하였다. 이에 따라 진해는 일본 제3 해군구 요항으로 확정되었다. 군사기지로 설계된 탓에 도심으로의 빠른 접근을 위해 중원·북원·남원이라는 세 로터리를 중심으로 도시를 구획하였고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선형 팔거리가 조성되었다. 광복 이후 일제가 설계한 군항시설이 그대로 인계되어 대한민국 해군이 사용하게 되었다. 광복에 이어 벌어진 6·25전쟁을 겪으면서 진해는 대한민국과 연합군 해군기지로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군사시설도 확장되었다. 현재 진해에는 해군사관학교 등 다양한 해군관련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진해에는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열흘간 진해군항제가 열리고 있다. 1952년 4월 13일 진해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지고 추모제가 열리던 것이 1963년부터 군항제로 이름을 바꾸면서 시작된 것이다. 또한 진해는 축제기간이 도시 전역에 심어진 제주도산 왕벚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벚꽃축제 명소가 되었다. 2014년 10월 진해군항마을은 국가기록원 지정 제7호 기록사랑마을이 되었다. 진해는 다수의 근현대문화 유산이 보존되어 있는 도시로, 중원로터리 근방은 사적 제291호 진해우체국 등 근대시기의 문화유산을 둘러볼 수 있는 역사탐방지역이기도 하다. 진해군항마을 전시관에서는 백범 김구의 진해 방문사진 등 역사적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FIFA U-20 월드컵 거리응원 2017 FIFA U-20 월드컵 거리응원 2017년 5월 20일부터 6월 11일까지 개최된 FIFA U-20 월드컵의 광화문광장 거리응원 모습을 기록하였다. 광화문광장 거리응원은 대한민국 경기가 있는 23일, 26일, 30일 진행되었으며 체험형 부스와 다양한 공연 등이 마련되었다.
통영 윤이상 기념관 2018 통영 윤이상 기념관 통영시 도천동에 위치한 윤이상기념관은 동서양을 잇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0년 개관했다. 191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성장한 윤이상은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으며, 귀국 후 교사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59년 독일 베를린음악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쇤베르크 12음계 기법과 우리나라 궁중음악을 결합시킨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며 세계 음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1967년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서독으로 추방된 윤이상은 1971년 독일에 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도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하여 음악활동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심청’, ‘나비의 미망인’ 등 4편의 오페라와 20여 편의 관현악곡, 40여 편의 실내악곡 등 총 15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기증자 윤영호 구술영상 2018 기증자 윤영호 구술영상 1926년 경기도 화성 출생, 2017년 '경부고속도로 관련 박정희 서한' 등 3점 기증 故 김영삼 前 대통령 국가장 2015 故 김영삼 前 대통령 국가장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이었던, 故 김영삼 前 대통령 서거 국가장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2015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5일장으로 치뤄진 국가장은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의 모습부터 영결식, 안장식 등의 국가장의 전반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평창 이효석 문학관 2018 평창 이효석 문학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관은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작가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살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효석은 1907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출생, 1928년 『도시와 유령』이라는 작품으로 정식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산』, 『들』, 『메밀꽃 필 무렵』 등 다양한 단편 소설을 집필했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는 봉평이나 인근 지역의 실명이 명시되고 본인이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설을 통해 녹여냄으로써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효석 문학관은 1982년 유족에 의해 추진되어 2002년 개관했으며, 문학관 내부는 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이효석 문학 전시실’과 봉평 메밀과 관련된 풍습 및 각종 자료를 보여주는 ‘메밀자료실’, ‘학예연구실’, ‘문학교실’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관 주변에는 매달 2일과 7일에 봉평 장날이 열리고 있으며, 1999년부터 매년 9월에는 ‘평창효석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하동 최참판댁 2018 하동 최참판댁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은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가 되었던 전통 가옥을 구현한 곳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들에 대한 장대한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한 많은 한국 근현대사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지인 평사리는 지리산의 형제봉과 구재봉 사이에 펼쳐진 너른 들판과 섬진강을 끼고 있다. 하동군은 1998년부터 한옥 14동의 최참판댁과 드라마 토지오픈세트장, 박경리 문학관, 전통한옥체험관 등 토지민속 문학마을을 조성했다. 또한 2001년부터는 매년 10월 둘째 주마다 토지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토지문학제는 초등부부터 일반인까지 참여할 수 있는 ‘토지백일장’,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어르신 백일장’ 등 40여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구 용산철도병원 2015 구 용산철도병원 구 용산철도병원은 1907년 조선통감부 철도국이 '용산동인병원'으로 처음 건립했다가 1918년 '용산철도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26년부터 철도국에서 직접 운영하였다.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임대되어 연구동과 연구실로 활용되다가 2007년 용산역세권 부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철수하였다. 구 사북탄광촌 2016 구 사북탄광촌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구 사북탄광촌은 1980년 사북사태가 발생했던 1980년대 최대 규모의 탄광지였다. 당시 사북탄광은 채탄량이 연간 160만 톤에 달하고 종업원 수가 삼천 명이 넘었던 국내 최대의 민영 광산으로, 생산하는 석탄의 양이 전국 채탄량의 9%에 달했다. 그러나 광부들과 관리인들의 삶은 천양지차로 달랐고 그에 따른 불만도 쌓여갔다. 전국광산 노조지부장 회의에서 42.75%의 임금인상안이 결의되었음에도 사북어용노조위원장 이재기 사북지부장이 회사 측과 비밀리에 20% 인상안을 합의해버리자 광부들의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1980년 4월 21일, 광부들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으로 이재기의 부인 김순이를 집단폭행하고 억류하였으며, 22일에는 사북읍의 안경다리에서 경촬과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사북사태는 군-검-경으로 구성된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에 의해 강압적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확립 2015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확립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청소년과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박물관 교육영상을 제작하였다. 2015년에는 '수출주도공업화', '중화학공업화', '민주주의의 확립'을 주제로 한국어와 영어 영상을 제작하였다.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 2016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 해방과 함께 대한민국을 새롭게 건설하려는 염원이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나타난 이래, 선거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민주주의 역사였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선거를 통해 성장하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선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 특별전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공동으로 준비하였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2016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 위치한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이다. 태백은 국내 최대의 탄전지대로, 그 중 철암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석탄 산업사에 있어 상징적인 도시이다. 조선총독부는 국내 광산을 모두 조사한 후 광업권을 일본회사에 넘겼고, 전쟁이 가속화되던 1930년 이후 한반도의 자원 수탈이 본격화되었다. 1920년대 평양 인근의 무연탄과 함북의 갈탄이 개발되었고, 1930년대에 화순, 영월, 삼척, 은성탄광 등이 개발되었다. 광복 후에도 삼척탄광은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며 남한 최대의 무연탄광으로 발전하였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원탄저장 및 운반(벨트 콘베어), 경석 선별 및 파쇄운반, 1.2.3차 무연탄 선탄, 이물질 분리(침전), 각종 기계공급 및 수선창 등 5코스, 20개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근대 산업사의 상징적인 주요 시설로 인정받아 2002년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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