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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4,141

개항~대한제국(1910)
12,718

일제강점기(1910~1945)
8,867

광복~1950년대
3,907

1960년대
6,738

1970년대
5,490

1980년대
5,990

1990년대
3,205

2000년대
20,223

2010년대
340

2020년대
0

2030년대
800

연도미상
2019년 독립운동가 스토리 영상 <나의 독립 영웅> 2019 2019년 독립운동가 스토리 영상 <나의 독립 영웅>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한국방송공사(KBS)가 공동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 각계 유명 셀럽들이 소개하는 독립운동가 스토리영상<나의 독립 영웅> 100편을 제작하여 2019년 1월1일 부터 6월말까지 주4회, KBS 1TV, 월화수목 21:55~22:00에 방송하였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2020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전시는 그해 오월 저마다의 자리에서 광주를 목격하고, 지키고, 알리려 애썼던 이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분투가 서린 자료들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다시 보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위 행렬만큼이나 길었던 시민들의 헌혈 행렬, 대가없이 나누었던 이름 모를 이들의 주먹밥은 ‘연대와 정’이 가진 무한한 힘을 느끼게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위험하고 폭력적이었던 순간에 발휘되었던 뜨거운 용기와 인류애를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 광주교도소 2018 구 광주교도소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주둔하였으며, 다수의 광주시민들이 연행되어 고문을 받고 그 중 일부가 사망하여 암매장된 장소이다. 광주교도소의 전신은 대한제국기인 1908년 7월 설치된 광주감옥으로, 일제강점기인 1912년 5월 동명동으로 이전하였다. 1923년 5월 광주형무소로, 1961년 12월 다시 광주교도소로 개칭되었다. 1971년 7월 동명동에서 문흥동으로 이전하였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이곳에 주둔하였는데, 5월 21일부터 31사단 병력이 경비를 맡았다가 같은 날 공수부대 제3여단이, 23일부터 다시 20사단 병력이 교도소 경비와 외곽도로 봉쇄 임무를 맡았다. 호남고속도로가 인근에 위치해 있고, 광주에서 담양 등 시외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일대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의 총격전이 자주 발생하였는데, 주로 공수부대가 주둔하던 시기에 집중되었다. 또 연행된 다수의 광주시민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받고 그 중 일부는 인근 야산에 암매장되었다. 1980년 5월 31일 정부는 ‘교도소 습격사건’으로 민간인 28명이 사망하였다고 발표하였지만 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박관현이 여수로 피신하였다가 1982년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7월부터 단식투쟁을 벌이다 10월 숨진 곳이기도 하다. 광주교도소는 2015년 10월 문흥동에서 현재 위치인 삼각동으로 이전하였다. 2017년 11월 암매장된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현재 구 광주교도소는 건물이 모두 철거된 상태이며,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솔로몬 로(law)파크 및 민주인권기념파크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5·18민중항쟁 사적 제22호로 지정되었다. 한경풍력발전소 2018 한경풍력발전소 제주도의 바람을 활용하여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한국남부발전이 북제주군 한경면 신창리에서 용수리에 이르는 해안도로를 따라 설치한 풍력발전시설이다. 한국남부발전은 2004년 1단계로 1.5㎿ 규모의 풍력발전기 4기를 설치했으며, 2008년 연간 15㎿(3㎿×5기)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모두 준공해 본격 전력 공급에 들어갔다. 2004년 설치된 발전기 4기의 용량은 1.5㎿, 타워 높이는 62m, 날개(블레이드) 길이가 35m 정도이며, 2008년 설치된 발전기 5기의 타워 높이는 80m, 날개(블레이드)의 길이는 44m에 이른다. 한경풍력발전소의 종합준공(21㎿)으로 제주도는 발전설비 가운데 신재생에너지의 설비 비중이 종전의 1.8%에서 3.3%로 확대됐으며, 국내 제일의 신재생에너지 및 청정지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김영삼민주센터 소장자료 2018 김영삼민주센터 소장자료 역대 대통령 자료 수집 사업의 일환으로 김영삼민주센터의 소장자료를 디지털화 하여 사진·영상·음원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의 DB를 구축하였다. 김영삼민주센터에서 제공한 자료는 故 김영삼 前 대통령의 취임 전과 재임 당시의 주요 활동상을 담고 있다.
6·25전쟁 노근리 사건 70주년 기념식 2020 6·25전쟁 노근리 사건 70주년 기념식 6·25전쟁 중 발생한 비극 노근리 사건 70주년을 맞아 7월 29일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희생자 유가족, 행정안전부 진영 장관, 영동 군수, 충청북도 각계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행정안전부 주최로 기념식이 개최됐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도(쌍굴다리)에서 피난하는 마을주민들 수백 명이 미군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다. 정부는 1999년 진상조사를 시작하여 2004년 노근리 사건 특별법을 제정하고, 유족 대표 등이 포함된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를 구성하여 2005년과 2008년 2차에 걸쳐서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의료지원금을 지급하였고 2011년 사건 현장인 쌍굴다리 일대에 노근리 평화 공원을 조성하였다. 매년 이곳에서는 유족회를 중심으로 합동위령제, 지역 축제와 연계한 인권 백일장, 청소년 캠프 등의 행사가 열려 지난 전쟁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평화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노근리 사건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기념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출입 시 명단 작성, 손 소독, 체온 체크를 받으며 방역 대책을 철저히 수립하여 진행되었다. 기념식은 진혼무를 시작으로 주요 인사의 헌화와 분향, 추모사 낭독, 기념 공연, 쌍굴다리 현장 방문 순으로 진행되었다. 2020 박물관 역사책방 2020 2020 박물관 역사책방 특별행사 2020 박물관 역사책방에는 <나의 사직동>, <그들의 5.18>, <전염병 전쟁> 토크 콘서트로 구성되었으며,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인원수 제한에 따른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되었다. 함덕해수욕장 2020 함덕해수욕장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시내에서 동쪽으로 14km 떨어져 있다. 동쪽으로 기생화산인 서우봉이 자리 잡고 있어 ‘함덕서우봉해변’이라고도 불린다. 원래는 바다였으나 수면이 하강하면서 바다 속에 있던 패사층이 드러나 해수욕장이 형성되었다. 1983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백사장의 길이는 900m, 폭 120m에 달한다. 하루 5만 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함덕(咸德)이라는 지명은 함씨 할머니가 놓은 돌다리인 함다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덕은 제주방언으로 너럭바위를 뜻한다고 한다. 입자가 고운 모래로 이뤄진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의 바다색을 지닌 함덕해수욕장은 매년 여름철 해수욕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제주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2020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전시는 그해 오월 저마다의 자리에서 광주를 목격하고, 지키고, 알리려 애썼던 이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분투가 서린 자료들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다시 보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위 행렬만큼이나 길었던 시민들의 헌혈 행렬, 대가없이 나누었던 이름 모를 이들의 주먹밥은 ‘연대와 정’이 가진 무한한 힘을 느끼게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위험하고 폭력적이었던 순간에 발휘되었던 뜨거운 용기와 인류애를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6·25전쟁 70주년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2020 6·25전쟁 70주년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6·25전쟁 당시 함께 대한민국을 지킨 22개국 195만 유엔 참전 용사의 희생·공헌에 감사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유엔 참전국과 우호 협력을 강화하는 6·25전쟁 70주년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이 7월 27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국가보훈처 주최로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함께 했던 날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광의 날들, Days of Glory'라는 주제로, 6·25전쟁 참전 유공자, 정부 주요 인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철저히 수립하여 진행되었고, 이날 코로나19로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유엔 참전 용사들을 대신하여 국내 유학중인 유엔 참전 용사 후손들이 함께 참석하였다. 이번 행사는 개막 퍼포먼스, 참전 국기 입장, 국민의례, 기념공연 1막, 유엔군사령관 인사말, 기념공연 2막, 기념 영상, 정부 포상, 기념사 등으로 진행되었다. '유엔군 참전의 날'은 6·25전쟁 유엔 참전국과 유엔 참전 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고 감사를 전하기 위해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하여 정전 제60주년을 맞은 2013년부터 매년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기념하고 있다.
해방촌 2015 해방촌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2가에 위치하고 있는 해방촌은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마을로 이태원 지하보도에서부터 용산2가동 주민센터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본래 해방촌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이 있던 곳이며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 관할이 되어 해외에서 돌아온 귀환민과 월남민, 그리고 6·25전쟁 이후의 피난민과 실향민이 정착하게 되어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최근 들어 해방촌에는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예술가들의 공방 등이 생기면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는 물론 외국인들까지 즐겨 찾는 명소로 변모하고 있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2015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덕수궁 옆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우리나라 성공회의 대표적인 성당이다. 대한성공회는 종교개혁 때 분리된 영국성공회의 한국 교구로 1889년에 설립되었다. 성당은 1922년 착공하여 1926년 완공되었으며 처음 성당을 설계할 때는 십자가 모형으로 건축하려고 하였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십자가 모형의 건축물을 지을 수가 없었다. 1993년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본래 설계도를 발견하고 공사를 재개하여 1996년 5월 십자가 모형의 현재 모습을 갖추었으며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옥 양식을 곁들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공회서울성당은 6월 민주항쟁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로 사제관 앞에는 6월 민주항쟁 진원지 표지석이 서있다. 동서울종합터미널 2015 동서울종합터미널 서울시 광진구 동서울종합터미널은 수도권과 충청권, 강원권, 영남권의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운행하는 종합터미널이다. 서울 동북부 지역의 교통 편의와 도심 교통의 원활한 소통, 중부고속도로의 활성화를 위해 1987년 착공되어 1990년 완공되었다. 터미널 건물은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 인접하고 있으며 지하 3층, 지상 7층의 규모로 현재 터미널에는 40여 개의 운수 업체가 있다. 회현 제2시민아파트 2015 회현 제2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1970년 5월 28일 준공되어 45년이 넘게 남산 언덕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파트다. 와우아파트 붕괴 직후에 지어져 당시 김현욱 서울시장의 의지로 절대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아파트라는 의미에서 시범아파트로 불려졌다.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남산의 급격한 경사를 고려하여 1층과 6층에 출입구를 두었고 중앙정원방식의 구조로 건립되었다. 당시에는 4~6층 아파트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회현 제2시민아파트와 같은 10층 아파트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아파트의 노후로 인해 현재 보존과 철거의 기로에 서 있으며 160여 가구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빈집으로 방치된 상태이다. 정동제일교회 2015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는 우리나라 최초로 파송된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교회이며 1885년 7월 29일 정동에 사저를 마련하고 시작한 선교 활동을 모태로 한다. 1885년 10월 아펜젤러의 집례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성찬식을 거행함으로써 정동제일교회가 창립되었고 1895년 9월 예배당을 착공하고 1897년 12월 준공하였다. 정동제일교회는 창립 초기에 담임목사가 배재학당 학감을 겸하여 개화기 청년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1919년에는 이필주 목사와 박동환 장로가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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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독립운동 민주화 일제 강점기 광복 교육 정부수립 스포츠 새마을운동 대중문화 국방 미래 경제개발 4.19혁명 통일 좌우대립 세계화 개항 5.10 근대화 도시화 과학화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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