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다음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3,632

개항~대한제국(1910)
11,605

일제강점기(1910~1945)
8,180

광복~1950년대
3,564

1960년대
5,439

1970년대
5,047

1980년대
4,780

1990년대
3,020

2000년대
19,712

2010년대
202

2020년대
0

2030년대
788

연도미상
기증자 김명년 구술영상 2015 기증자 김명년 구술영상 1932년 경북 안동 출생, 2014년 '서울지하철 착공 기념패' 등 57건 59점 기증. 마라도 2019 마라도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하는 섬이다. 1883년(고종 20) 서귀포 대정읍 인근에 살던 가족이 대정 현감의 허가를 얻어 마라도에 들어가 정착한 후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마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지형도에 ‘마라도(馬羅島)’로 표기된 후 현재에도 이 표기를 따르고 있다. 마라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4.2km인 작은 섬으로 해안은 바다 바람에 오랫동안 침식되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섬이 작고 농경지가 부족하여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근래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민박집과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마라도에 사는 주민은 55세대, 약 100여 명 정도이다. 마라도의 관광명소로는 마라도 등대와 마라도 남쪽 끝의 대한민국최남단비, 초코릿 박물관 ‘마라도 홍보관’ 등이 있다. 1950년대 한국영화, 새로운 시대를 열다 2019 1950년대 한국영화, 새로운 시대를 열다 2019년은 최초의 한국영화로 평가되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가 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영화의 성장기’라 불리는 195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 관련 소장자료 특별전을 마련하였다. 1950년대 중후반은 광복 직후의 혼란과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한국영화가 양적‧질적으로 급성장한 시기로서 영화사적 의미가 크다. 1955년까지 연간 20편을 넘지 못했던 제작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처음으로 100편대에 돌입했고(1959년 111편), 대규모 촬영소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영화제작 시스템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나오고, 최초의 여성감독이 등장했으며, 한국의 ‘할리우드’라 불린 충무로가 형성되었다. 또한 다양한 장르가 시도되며 다가올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태동된 시기이기도 하다. 1950년대 중후반은 현대적 의미의 한국영화가 개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영화가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1954년 ‘국산영화 입장세 면세조치’ 등의 정책적인 호재와,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가 높아진 데 비해 당시 영화를 능가할 만한 대중적인 오락이 전무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광복과 전쟁을 거치며 ‘천지개벽’이라할 만큼 격변하는 당시의 사회상을 영화가 생생히 투영해냄으로써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 영화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영화 성장의 토대가 되었던 1950년대 중후반 영화들을 두루 살펴봄과 동시에, 영화에 투영되었던 당시 사회상을 그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국가기록원 소장 최규하대통령 자료 2017 국가기록원 소장 최규하대통령 자료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인 최규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무총리 출신이다. 10.26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가기록원이 제공한 자료는 故최규하대통령의 취임 전과 재임 당시의 주요 활동상을 담고 있다. 김영삼민주센터 소장자료 2018 김영삼민주센터 소장자료 역대 대통령 자료 수집 사업의 일환으로 김영삼민주센터의 소장자료를 디지털화 하여 사진·영상·음원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의 DB를 구축하였다. 김영삼민주센터에서 제공한 자료는 故 김영삼 前 대통령의 취임 전과 재임 당시의 주요 활동상을 담고 있다.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신입생 교과서 승차 배부 2020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신입생 교과서 승차 배부 2020년 4월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개학이 연기되는 가운데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에 있는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는 승차 진료 방식(Drive-Through)으로 교과서 승차 배부를 진행하였다. 운동장에 도착한 신입생 학부모 차량과 학생들은 정문에서 체온 측정 및 손 소독을 마치고 입장하여 지정된 장소에서 미리 포장된 교과서를 담임 선생님에게 배부 받았고, 차량 활용이 불가능한 학생의 경우 운동장에서 접촉을 최소화하여 직접 교과서를 수령하였다.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2019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19년의 첫 번째 특별전으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을 개최했다. 이번 특별전은 전시 장소에 따라 각각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그리고 해외에 남은 독립운동가의 자취라는 세 가지 주제를 전시한다. 각 전시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르지만, 모두 100년 전에 있었던 거시적인 역사의 이면에 주목한다. 3․1운동에 사람들은 어떻게 참여하였고, 그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의 인생은 그 후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멀리 타지의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은 어떤 삶의 조건 속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해외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시던 분들 가운데는 광복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많다. 이들의 삶은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 이들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이번 전시를 통해 시간을 돌이켜 100년 전의 시점으로 돌아가 보길 바란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여러 사람들, 숨은 영웅들을 만나보길 바란다. 그 때는 물론 어려운 상황과 처지가 있었지만, 목청껏 만세를 외치던 감격 또한 있었다. 부정적 상황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애써온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오늘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의미를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 2018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 제주4·3은 우리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진상규명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넘게 걸린 슬픈 역사이기도 하다. 1980년대부터 민간차원에서 시작된 진상규명 노력은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공포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정부차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었고 2014년에는 4·3희생자 추념일이 지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4·3에 대해서는 국민적 차원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70년이 지난 오늘, 당시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이미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고 우리 곁에 남은 분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분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그동안의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제주4·3 7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이번 특별전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기초해 관련 사료와 유품,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제주4·3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제주4·3이 제주만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준비되었다.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인 제주4·3을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고 평화와 상생의 길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1950년대 한국영화, 새로운 시대를 열다 2019 1950년대 한국영화, 새로운 시대를 열다 2019년은 최초의 한국영화로 평가되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가 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영화의 성장기’라 불리는 195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 관련 소장자료 특별전을 마련하였다. 1950년대 중후반은 광복 직후의 혼란과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한국영화가 양적‧질적으로 급성장한 시기로서 영화사적 의미가 크다. 1955년까지 연간 20편을 넘지 못했던 제작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처음으로 100편대에 돌입했고(1959년 111편), 대규모 촬영소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영화제작 시스템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나오고, 최초의 여성감독이 등장했으며, 한국의 ‘할리우드’라 불린 충무로가 형성되었다. 또한 다양한 장르가 시도되며 다가올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태동된 시기이기도 하다. 1950년대 중후반은 현대적 의미의 한국영화가 개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영화가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1954년 ‘국산영화 입장세 면세조치’ 등의 정책적인 호재와,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가 높아진 데 비해 당시 영화를 능가할 만한 대중적인 오락이 전무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광복과 전쟁을 거치며 ‘천지개벽’이라할 만큼 격변하는 당시의 사회상을 영화가 생생히 투영해냄으로써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 영화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영화 성장의 토대가 되었던 1950년대 중후반 영화들을 두루 살펴봄과 동시에, 영화에 투영되었던 당시 사회상을 그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2020 제21대 국회의원선거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제헌 국회를 구성할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선거로써 2020년 4월 15일에 치러진 4.15 총선은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이다. 2020년 5월 30일부터 4년 동안 활동할 제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로 이번 선거는 총 1,553명의 후보가 등록하였으며 2020년 4월 3일부터 4월 14일까지 선거운동 기간을 가지고 4월 11일부터 4월 12일까지 사전투표를 15일 본투표를 하였다. 4월 15일 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율이 66.2%로 나타나면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율 71.9%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사전 투표제도가 전국 단위 선거에 처음 적용된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사전 투표율 26.69%가 전체 투표율을 끌어올렸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지역 국회의원선거를 중점으로 다루었으며, 종로구 지역 출마 후보이자 국무총리 출신인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와 기호 2번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경합을 벌였다.
윤보선 대통령 생가 2018 윤보선 대통령 생가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에 있는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의 생가이다. 윤보선은 중추원 의관을 지낸 윤치소의 아들로 1897년 아산에서 태어나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1921년 영국으로 유학 가 1930년 에든버러대학을 졸업한 후 1932년 귀국했다. 해방 이후 한민당 창당 참여를 시작으로 1공화국에서 서울시장과 상공부장관을 역임했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이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후 임기 1년 5개월 만에 하야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재야인사로 활동했다.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을 한 상류주택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196호이다. 1907년에 윤치소가 지었다고 하는데, 바깥사랑채의 건축양식으로 보아 192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구성은 안채·안사랑채·바깥사랑채·행랑채와 부속채로 이루어지며, 전체적으로 날일(日)자에 꼬리를 붙인 파자(巴字)와 같은 모형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중부지방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본뜬 평면구성이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된 9칸이며, 건물 왼쪽으로는 건넌방·작은부엌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윗방·안방·샛방·부엌이 있다. 구조는 합각지붕 홑처마로 1고주, 5고량이다. 11칸 반의 ㄱ자형 안사랑채는 맞걸이 맞배지붕집이며, 찬모방·마루·찬간·작은부엌·윗방·아랫방·중문간 등으로 이루어졌다. 중문간에 안팎으로 대문을 설치하고 밖으로 여닫게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바깥사랑채는 6칸으로 ㄱ자형의 높은 누마루집으로 만들어졌다. 구조는 1고주 5고량이며, 합각지붕 겹처마집으로 합각면이 매우 크게 만들어졌다. 행랑채는 1단 아래로 안사랑채 지붕을 겹쳐 잇대어 지었다. 구조는 맞걸이 3량의 총14칸 건물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이다. 문화재청 전통가옥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2008년 3월부터 국비 3억5000만원과 지방비 1억5000만원을 들여 윤보선 생가 안채와 사랑채를 손질하고, 그 중 사랑채를 기념전시관으로 꾸며 2009년 12월 윤보선 대통령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윤 전 대통령은 한국근대사와 현대사의 증인으로서 그의 생가는 대중들에게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도가 높을뿐더러 이러한 건축 양식은 동부지방에만 분포하는 형태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산 간척지 2018 서산 간척지 천수만의 북쪽 바다를 막아 조성한 우리나라 최대의 간척지이다. 1970년대는 식량 자급율을 높이기 위해 미곡 증산이 시급한 시대였다. 이에 현대건설은 식량 확보 및 자급률 제고를 목적으로 간척 농지를 조성하기 위해 1979년 8월 24일 서산AB지구 매립 허가를 취득하여 국토를 확장하는 간척사업을 시작하였다. 서산A지구는 서산시 부석면의 간월도리·강당리·지산리, 양대동, 고북면의 신정리·사기리, 홍성군 서부면 궁리 등과 인접해 있으며, 서산B지구는 부석면 창리·봉락리·갈마리·송시리, 태안군 태안읍 반곡리·송암리, 남면 양잠리·당암리 등과 접해 있다. 간척 이전에는 갯벌 지역으로 조개와 굴의 주산지였으며,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었다. 현대건설은 1979년 8월 사업에 착수하여 1982년 10월 26일 서산B지구의 물막이 공사를 먼저 마무리하였다. 이어 1984년 3월 10일에 서산A지구의 물막이 공사를 최종 마무리하였다. 서산A지구는 가운데 지점이 깊은 수심과 빠른 물살로 공사가 어려웠다. 이에 물의 흐름이 가장 빠른 곳에 폐선을 가라앉혀 조수의 흐름을 막은 다음 재빨리 바위로 바다를 막는 VLCC(일명 정주영 공법)을 세계 최초로 사용하여 물막이에 성공하였다. 이후 1985년 4울 1일부터 간척지 내 수로와 농지 정리를 시작했다. 1990년부터는 일부 지역에서 비행기를 이용한 볍씨 파종을 시범 도입하였다. 서산AB지구의 간척 농지 조성이 최종 완료된 것은 1995년 8월 14일이었다. 간척사업을 통해 얻어진 서산AB지구의 총면적은 154.08㎢이다. 이 가운데 서산A지구의 면적은 96.26㎢이며, 담수호 27.33㎢와 농지면적 37.49㎢로 되어 있다. 서산B지구의 면적은 57.82㎢이며 담수호 15.62㎢와 농지면적 37.49㎢로 되어 있다. 서산AB지구의 총 농지 면적은 101.32㎢에 이른다. 이후 1995년 농지로서 준공검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서산간척지에는 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산 간척지는 국내 최초로 민간기업에 의한 대단위 간척 사업이었다는 점, 해외 유휴 장비의 활용과 인력 및 기술개발로 공사비를 크게 절감했다는 점, 신공법인 VCCL〔정주영 공법〕로 최종 물막이 공사를 수행했다는 점, 그리고 99.17㎢ 이상의 농경지를 확보하여 대규모 기계화 영농단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는 점 등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월정리역 2017 월정리역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이어진 경원선 가운데 철원에 위치해 있던 역으로 휴전선이 생기면서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의 역이 되었다. 원래 경원선은 경원선 부설권을 따낸 일본에 의하여 건설되었는데 서울∼원산간 227㎢를 연결하는 철도로서 함경선과 이어져 대륙철도와 접속하게 되는 중요한 철도였다. 월정리역의 원래 위치는 어운면 월정리였는데 현 위치에서 약 1km 북쪽으로 올라가 비무장지대에 위치하였다. 경원선이 지나가는 월정리에는 원래 간이역이 있었는데 승객과 출입화물이 급증하면서 1934년에 현재 위치에 월정리역사를 신축하게 되었다. 광복 이후 월정리역은 북한 지역이었으나, 6·25전쟁 북진작전으로 아군이 철원지역을 수복함으로써 아군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은 이 지역에 군수물자와 병력을 대거 투입하여 공격의 교두보로 삼고 있었다. 이에 미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은 적이 생명선으로 삼아 사수하려는 철원, 평강, 김화의 철의 삼각지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격전이 전개되었다. 이때부터 이 지역은 철의 삼각지(lron Triangle)로 불려졌다. 6.25전쟁으로 역사는 소실되었고 역은 폐역이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역사와 부속 시설 일체는 1988년 철원읍 흥원리의 현 현 위치로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2015년에는 경원선 복원 사업으로 백마고지에서 월정리역까지 복원구간 기공식이 있었으나 그 후 남북관계의 긴장으로 사업은 중단되었다. 역의 플랫폼 맞은편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간판이 있으며 그 뒤에 총탄 자국이 가득한 열차의 잔해가 전시되어 있다.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열차 앞부분을 가져가 남아있는 것은 객차로 쓰이는 뒷부분이 일부 있을 뿐이다. 월정리역에 멈춰진 기차는 분단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 철원 월정리역는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다. 구 용산철도병원 2015 구 용산철도병원 구 용산철도병원은 1907년 조선통감부 철도국이 '용산동인병원'으로 처음 건립했다가 1918년 '용산철도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26년부터 철도국에서 직접 운영하였다.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임대되어 연구동과 연구실로 활용되다가 2007년 용산역세권 부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철수하였다. 외양포 일본군 포대 2016 외양포 일본군 포대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위치한 외양포 일본군 포대(砲臺)는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가덕도 해변에 건설한 포대로, 일본군 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이다. 외양포가 있던 가덕도는 동쪽으로는 부산항, 서쪽으로는 진해항을 끼고 있어 방어기지로 적격인 장소였다. 1904년 일제는 러일전쟁을 대비해 러시아 함대에 대한 기습공격을 가할 목적으로 외양포에 포대 진지를 설치하고 가덕도를 요새화할 계획을 꾸몄다. 한일의정서에 따라 가덕도에 머물던 주민들을 내쫓고 외양포의 토지와 가옥을 매수한 후 외양포를 군용지로 강제수용하였다. 1904년 8월부터 12월까지 포대 공사가 이루어졌고 12월에 일본군 포병 제2중대가 외양포에 설치되었다. 일제는 1905년 5월 7일 외양포에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세우고 외양포를 일본군 군사시설로 활용하였다. 포진지는 외양포 마을 뒤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일본군이 1936년 6월에 세운 사령부 발상지가 포대의 시작점이다. 포대는 지형을 활용해 동쪽 산록 사면을 절개하고 나머지 부분을 축대로 쌓은 뒤 흙과 대나무를 덮어 공중에서 보지 않으면 내부를 볼 수 없게 설계하였으며 두 곳의 이중벽 탄약고를 설치하였다. 북쪽에는 병사(兵舍)로 추정되는 건물이 존재한다. 외양포 포대는 광복 이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마을 전체가 국방부 소유로 현재는 약 30가구가 임대형식으로 외양포에 거주하고 있다. 마을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까닭에 당시 일본군 거주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령관 관사, 장교 관사, 막사, 위병소 등 군용 건물 32개와 일제 시절 설치된 우물, 창고 등도 그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건조 연대를 추정할 수 없으나 외양포 조성과 다른 시기에 건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요새포도 마을에 남아 있다. 외양포에 남아 있는 일본군사시설 유적은 잔존상태가 양호하고 유적수가 다른 지역보다 많아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역사적 사료가치가 높다. 2016년 부산시는 외양포를 일제 강점기 역사와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는 역사 체험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
추천 검색키워드대한민국역사박물관
6.25전쟁 독립운동 민주화 교육 정부수립 일제 강점기 광복 스포츠 새마을운동 대중문화 국방 미래 경제개발 4.19혁명 통일 좌우대립 세계화 개항 5.10 근대화 과학화 도시화 5.16

독립신문 바로가기 - 獨立新聞 상해판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1919년 8월 21일에 창간되어그 해 10월 16일(제21호)까지는 《獨立》이라는 제호로 발행...

고바우영감 바로가기 - 대한민국  최초 4컷 시사만화

대한민국임시정부 바로가기 - 1919년에 망명, 설립된 한국의 임시정부 미완성된 최초의 대한민국

소장자료 박물관 소장자료 정보 공개 전시자료 박물관 전시자료 정보 공개 발간자료 박물관 발간자료 정보 공개 도서자료 도서자료실 비치 도서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