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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2,965

개항~대한제국(1910)
9,113

일제강점기(1910~1945)
6,748

광복~1950년대
2,924

1960년대
5,176

1970년대
4,625

1980년대
2,112

1990년대
2,439

2000년대
19,445

2010년대
0

2020년대
0

2030년대
656

연도미상
기증자 장흥녀 구술영상 2015 기증자 장흥녀 구술영상 1935년 강원 홍천 출생, 2014년 '발령 통지서' 등 61건 66점 기증. 노근리쌍굴다리 2017 노근리쌍굴다리 노근리 쌍굴다리는 6․25 전쟁 당시 ‘노근리사건’으로 알려진 양민학살사건의 현장이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서울 기점 225km)와 영동읍 주곡리를 연결하기 위하여 1934년에 개근천(愷勤川) 위에 축조한 아치형 쌍굴 교각으로, 전체 길이 24.5m, 높이 12.25m, 연면적 512.83㎡의 철근콘크리트조 교량이다. 내부 높이는 10.35m, 폭은 6.75m, 두께는 1.9m이다. 6.25전쟁 당시 이곳에서 미군에 의해 많은 피난민들이 피살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남침한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청주와 대전이 연이어 함락당하자, 미군은 인민군이 추풍령을 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7월 23-25일에 걸쳐 영동 주곡리와 임계리 주민들을 소개시켰다. 7월 26일 민간 복장으로 위장한 인민군이 피난민 대열에 섞여 있는 것을 의심한 미군 제1기병사단은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 동안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동시에 비행기로 공중에서 총을 난사하여, 250∼300명이 피살되었다. 지금도 총탄 흔적이 교각에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처참하였던 상황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노근리사건은 1960년 10월 유족들이 미국정부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였으나, 증거 불충분과 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기각되었다. 그 이후에도 유족들이 끊임없이 진상을 규명하고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던 중, 1999년 미국 AP통신의 보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재조명받기 시작하였다. 정부 차원에서도 진상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2001년 1월 12일 한·미공동발표문 및 성명서를 통해서 미국정부는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사건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노근리 쌍굴다리는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의 흔적을 생생히 볼 수 있는 역사 체험의 장으로, 6․25 전쟁의 아픈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는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2003년 6월 30일 등록문화재 제59호로 등록되어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사건 현장 남서쪽 100m 지점에는 양민학살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산 역사교육장으로 ‘노근리평화공원’을 2012년에 조성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19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청주시의 옛 담배 공장이었던 연초제조창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8년 12월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네 번째 분관이다. 청주 연초제조창은 1946년에 건립되어 2004년까지 운영되었으나 이후 담배 생산의 감소로 인해 폐산업 시설로 방치되고 있었다. 청주관은 연면적 1만 9,855㎡, 지상 5층 규모의 건물로 수장고 10곳, 보존처리 공간 15곳, 기획전시 공간 1곳, 교육 공간 2곳, 라키비움 및 관람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 1층부터 3층은 보이는 수장고를 운영해 관람객들이 유리창을 통해 김환기, 이중섭, 이응노 등 국내 미술가의 대표 소장품의 수장 및 보존 상태를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3층에는 유화작품 보존처리실과 유기 및 무기 분석실 등 3개실이 관람객에게 개방되어 실제 보존처리 및 분석 현장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4층은 특별전시관, 5층은 기획전시관이 있다. 청주관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첫 국립현대미술관이며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름다운 공유 : 기증특별전 2013-2016 2017 아름다운 공유 : 기증특별전 2013-2016 2017년 8월 7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기증자 173명의 대표 자료를 중심으로 기증의 고마움을 담아 기증특별전을 개최하였다. 특별전은 사연이 담긴 기증자의 소중한 자료를 통해 근현대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우리 사회의 어려웠던 생활모습을 짐작하고, 앞만 보고 내달렸던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2019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위치한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시초는 1905년 자본금 50만환으로 설립된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이다.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국권침탈 이후인 1911년 9월 8일에 개점했으며, 1913년 11월 17일 현재의 위치로 신축 이전하였다. 연면적 188.76㎡의 붉은 벽돌조의 단층 건물로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지붕부분이 파괴되었으나 그 후 원형을 살려 일부를 복구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충청은행, 중앙독서실, 젓갈창고 등으로 사용되다가 논산시에 매입되어 2012년부터는 강경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강경역사관에서는 충청도의 3·1만세운동을 주동했던 강경의 인물들을 비롯해 강경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을 살펴 볼 수 있으며, 은행시설로 활용됐을 당시 사용했던 금고도 직접 볼 수 있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일제강점기 강경의 근대화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인정받아 2007년 4월 30일 등록문화재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해미순교성지 2019 해미순교성지 충청남도 서산에 자리한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 당시 처형된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순교 유적이다. 해미순교성지는 조선 1417년(태종 17)에서 1421년(세종 3) 사이에 축조되어 1914년 군현제가 폐지될 때 까지 내포 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했던 해미읍성의 서문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이 이루어진 병인박해(1886, 고종3)때 해미읍성에서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처형을 당한 후 이 곳에 생매장되었다. 당시 순교자들이 울부짖으며 ‘예수, 마리아’를 외치던 소리를 주민들이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해미순교성지는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1935년 서산성당의 주임신부였던 범바로(P.Barraux, 1903-1946)에 의해 당시 해미지역 순교자들의 유해 발굴이 시작되면서 해미순교성지에 대한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당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위한 시성식을 집전한 것을 계기로 해미순교성지의 성역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1985년 해미성당을 건립하였으며, 2003년에는 기념성전을 건립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셨다. 해미순교성지는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해미읍성 일대를 직접 방문한 이후 세계적인 순교성지로 주목 받고 있다. 청주국제공항 2019 청주국제공항 청주국제공항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에 위치한 충청도 중부권의 거점 공항이다. 1984년 10월 청주국제공항 건설에 대한 기본 계획이 수립되었고, 1990년 8월에 공항의 입지를 현재의 위치로 결정했다. 1992년 3월 착공해 1996년 12월 20일 준공했으며, 준공 당시 청주국제공항의 기능은 중부권 거점 공항으로 유사시 수도권 대체 공항, 그리고 국제 화물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한국공항공사 청주지사가 1997년 1월 27일에 공항 업무를 개시하였고 4월 28일에 청주국제공항으로 공식 개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항 직후 37만 명에 불과했던 한 해 이용객이 2018년 말 기준 245만 명으로 증가했다. 총 운항 횟수는 1만 5,683회, 운송화물은 1만 7,986톤을 운송하고 있다. 노선은 국내선 1개, 국제선은 정기 노선 3개국, 비정기 노선 3개국으로 총 6개국의 15개 도시로 노선이 개설되어 있으며 총 9개 운항업체가 사업 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2019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1906년 7월 내륙 지방 관찰부 소재지에 본점을 둔 지방은행으로 충주농공은행에서 출발했다. 탁지부령에 따라 1907년 6월 주식회사 한호농공은행 충주지점으로, 1918년에는 6개의 농공은행이 합병한 조선식산은행의 충주지점으로 개칭되었다. 현재의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1933년 12월에 본관 63평, 부속건물 34평 규모로 신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는 목구조, 외관은 서양식 석조 건물로 1930년대에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모더니즘적 요소를 건축물 일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광복 이후에도 한일은행 충주지점 등 금융시설로 사용되다가 1981년에 민간에 매각되어 가구점 등으로 사용되었다. 2015년 구도심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충주시에 매입된 이후 근대문화역사관으로 활용될 계획이었으나 현재 보류 중에 있다.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은행건축 기법과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2017년 5월 29일 등록문화재 제683호로 지정되었다. 소백산천문대 2019 소백산천문대 1978년 소백산 연화봉에 세워진 소백산천문대는 61cm 반사망원경을 보유한 곳으로 한국 현대천문학의 시초가 된 곳이다. 1974년 국립천문대가 대통령령으로 설립되었고 1978년에 국립천문대의 단위 부서로 소백산천체관측소가 준공되었다. 1986년에 국립천문대가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부설 천문우주과학연구소(현 한국천문연구원)로 변경됨에 따라 소백산천문대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백산천문대는 현재 교육관과 연구동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시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견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소백산천문대를 상징하는 시설인 첨성대 모양의 구 관측소(일명 소백산첨성대)도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소백산천문대는 국내에서 최초로 현대식 망원경을 설치한 천문대로서 다양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천문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19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청주시의 옛 담배 공장이었던 연초제조창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8년 12월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네 번째 분관이다. 청주 연초제조창은 1946년에 건립되어 2004년까지 운영되었으나 이후 담배 생산의 감소로 인해 폐산업 시설로 방치되고 있었다. 청주관은 연면적 1만 9,855㎡, 지상 5층 규모의 건물로 수장고 10곳, 보존처리 공간 15곳, 기획전시 공간 1곳, 교육 공간 2곳, 라키비움 및 관람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 1층부터 3층은 보이는 수장고를 운영해 관람객들이 유리창을 통해 김환기, 이중섭, 이응노 등 국내 미술가의 대표 소장품의 수장 및 보존 상태를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3층에는 유화작품 보존처리실과 유기 및 무기 분석실 등 3개실이 관람객에게 개방되어 실제 보존처리 및 분석 현장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4층은 특별전시관, 5층은 기획전시관이 있다. 청주관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첫 국립현대미술관이며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경향신문사 소장자료 2012 경향신문사 소장자료 광복 이후 근·현대사의 중요 순간들을 기록한 경향신문사의 소장사진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운동 등의 모습을 담고 있다. 회현 제2시민아파트 2015 회현 제2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1970년 5월 28일 준공되어 45년이 넘게 남산 언덕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파트다. 와우아파트 붕괴 직후에 지어져 당시 김현욱 서울시장의 의지로 절대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아파트라는 의미에서 시범아파트로 불려졌다.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남산의 급격한 경사를 고려하여 1층과 6층에 출입구를 두었고 중앙정원방식의 구조로 건립되었다. 당시에는 4~6층 아파트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회현 제2시민아파트와 같은 10층 아파트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아파트의 노후로 인해 현재 보존과 철거의 기로에 서 있으며 160여 가구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빈집으로 방치된 상태이다. 태백경찰서 망루 2017 태백경찰서 망루 태백경찰서 망루는 1950년경에 경찰이 무장공비들을 관측 및 방어하기 위해 축성되었다. 6·25전쟁 이전 태백 지역은 태백산맥으로 침투한 무장공비들이 자주 출몰하여 경찰서 지서나 관공서를 습격하는 일이 자주 행해졌다. 북한은 남침을 앞두고 소위 인민유격대를 남파하여 후방지역을 교란하였고 그 과정에서 국군과 경찰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태백경찰은 공비들의 침투와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망루를 설치하였다. 6·25전쟁 이전에 전국 여러 곳에 이와 비슷한 망루가 설치되었지만 현재 온전하게 남아 있는 곳은 이곳과 김천 부항 망루가 전부이다. 특히 태백경찰서 망루는 당시 안보의 위중한 상황과 역사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안보 문화 자산이다. 태백경찰서 망루는 무장 경찰관이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무장공비들이 관측될 경우 종을 울려 위험을 알렸다. 이 망루는 자체 방호가 가능하도록 축성되었으며, 1동의 지름 4.3m, 높이 7m의 원형 망루는 2층으로 되어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다. 각 층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 사방으로 나 있어 장성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망루의 바닥 아래에는 네모지게 구멍을 내어 사다리를 놓고 2층을 오르내렸다. 태백경찰서 망루는 6·25전쟁 이전 북한 인민유격대와 무장공비의 침투와 습격이라는 위기상황을 엿볼 수 있는 시설물이며, 정부는 역사성과 안보 현장의 의미를 고려하여 2005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7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구 용산철도병원 2015 구 용산철도병원 구 용산철도병원은 1907년 조선통감부 철도국이 '용산동인병원'으로 처음 건립했다가 1918년 '용산철도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26년부터 철도국에서 직접 운영하였다.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임대되어 연구동과 연구실로 활용되다가 2007년 용산역세권 부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철수하였다. 구 사북탄광촌 2016 구 사북탄광촌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구 사북탄광촌은 1980년 사북사태가 발생했던 1980년대 최대 규모의 탄광지였다. 당시 사북탄광은 채탄량이 연간 160만 톤에 달하고 종업원 수가 삼천 명이 넘었던 국내 최대의 민영 광산으로, 생산하는 석탄의 양이 전국 채탄량의 9%에 달했다. 그러나 광부들과 관리인들의 삶은 천양지차로 달랐고 그에 따른 불만도 쌓여갔다. 전국광산 노조지부장 회의에서 42.75%의 임금인상안이 결의되었음에도 사북어용노조위원장 이재기 사북지부장이 회사 측과 비밀리에 20% 인상안을 합의해버리자 광부들의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1980년 4월 21일, 광부들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으로 이재기의 부인 김순이를 집단폭행하고 억류하였으며, 22일에는 사북읍의 안경다리에서 경촬과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사북사태는 군-검-경으로 구성된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에 의해 강압적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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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민주화 독립운동 교육 일제 강점기 정부수립 스포츠 광복 새마을운동 대중문화 국방 미래 경제개발 4.19혁명 통일 세계화 좌우대립 개항 근대화 5.10 과학화 도시화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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