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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현대사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별 통계
2,965

개항~대한제국(1910)
9,113

일제강점기(1910~1945)
6,748

광복~1950년대
2,924

1960년대
5,176

1970년대
4,625

1980년대
2,112

1990년대
2,439

2000년대
19,445

2010년대
0

2020년대
0

2030년대
656

연도미상
구 장항제련소 2018 구 장항제련소 구 장항제련소는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 자리한 종합비철금속제련소이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조선 공업화의 추진 배경 하에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설립되어 1989년 용광로가 폐쇄될 때까지 우리나라 비철금속제련 산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었다. 조선제련이 장항에 있었기 때문에 그 후 오랫동안 장항제련소로 불리기도 했다. 초기에는 동제련공장만 운영되었으나, 1962년 9월 한국광업제련공사로 국영기업이 되면서 1964년 연제련공장이 준공되었다. 1971년 6월에는 한국광업제련주식회사로 민영화되면서 1974년과 1976년에 동제련공장이 2차에 걸쳐 증설되었다. 1936년 설립 당시 연간 1,500톤에 불과하던 구 장항제련소의 생산 규모는 1970년대 중반 들어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힘입어 5만 톤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설립 이후 50여 년간 제련소를 운영해 오는 과정에서 굴뚝을 통해 중금속을 비롯한 유해가스가 배출되었고, 이는 주변지역에 심각한 토양오염 문제를 야기 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1989년 제련소의 용광로는 폐쇄되었다. 제련소 주변의 오염된 토지는 정부와 서천군이 매입하였으며, 현재 환경부 주관으로 토지정화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청남대 2017 청남대 청남대는 대청댐 부근에 1983년 12월 27일 건축된 대통령 전용별장이다.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대청댐의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 주변 경관을 보고 감탄하면서 ‘이런 곳에 별장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청와대 경호실장에 의해 1983년 6월에 착공하여 그 해 12월에 완공되었다. 준공 당시 면적은 1,844,843㎡의 규모였다.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영빈관 의미로 영춘재(迎春齋)라 하였으나, 1986년 7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남쪽에 있다는 의미로 청남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청남대는 전두환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름휴가나 명절휴가를 비롯해서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사용하여 20년간 총 89회 472일을 이용하였다. 대통령 별장이 만들어진 것은 이승만대통령 때부터였으며 김해, 화진포 등을 비롯해 4군데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러 모두 폐쇄하고 청남대만 남겨두었다.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이 정국 구상을 하고 국빈을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대통령 외에 어떠한 민간인도 이용할 수 없었다. 또한 국가 1급 경호시설로 청와대에서 직접 관리를 했었고 4중의 경계철책을 둘렀으며 경호실 338경비대가 경비를 수행하여 민간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그 때문에 ‘권부의 아방궁’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 상징인 청남대를 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선거 공약을 이행하여, 2003년 4월 18일 청남대 소유권을 충청북도에 이양하였다. 충청북도는 곧바로 청남대를 민간에 개방하여 충청북도 청주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충청북도는 청남대를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2007년에 대통령역사문화관을 개관하였고, 하늘정원, 호반산책로, 음악분수, 습지생태원 등을 조성하였다. 그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길, 대통령 기념관, 대통령 동상 등 대통령을 주제로 한 관람시설을 확대하고 매년 봄 축제인 영춘제를 비롯한 여러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 결과 청남대를 방문한 관람객이 2010년에 500만 명에 이르렀고, 2017년 2월 17일 1천만 명을 넘어섰다.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 2018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 이번 전시는 1945년 광복에서부터 1948년 정부수립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열망했던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이를 이룩하려했던 의지와 노력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 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당시 사람들의 열망, 꿈과 함께 70년 전 대한민국 정부의 출발점을 돌아보면서 오늘날 세계사적 전환을 겪고 있는 2018년의 우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기증자 이상태·이상옥 구술영상 2014 기증자 이상태·이상옥 구술영상 1943, 1945년 충남 서산 출생, 2014년 '중고등학교 재학시절 모자' 등 80건 293점 기증, 2014년 '유치원 졸업 사진' 등 13건 35점 기증.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 2019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 3·1절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함께 만든 100년, 함께 만드는 미래'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은 1만여 명이 참석하였으며 정오를 기해 전국적으로 동시 타종과 만세행사가 진행되었다.
청주국제공항 2019 청주국제공항 청주국제공항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에 위치한 충청도 중부권의 거점 공항이다. 1984년 10월 청주국제공항 건설에 대한 기본 계획이 수립되었고, 1990년 8월에 공항의 입지를 현재의 위치로 결정했다. 1992년 3월 착공해 1996년 12월 20일 준공했으며, 준공 당시 청주국제공항의 기능은 중부권 거점 공항으로 유사시 수도권 대체 공항, 그리고 국제 화물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한국공항공사 청주지사가 1997년 1월 27일에 공항 업무를 개시하였고 4월 28일에 청주국제공항으로 공식 개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항 직후 37만 명에 불과했던 한 해 이용객이 2018년 말 기준 245만 명으로 증가했다. 총 운항 횟수는 1만 5,683회, 운송화물은 1만 7,986톤을 운송하고 있다. 노선은 국내선 1개, 국제선은 정기 노선 3개국, 비정기 노선 3개국으로 총 6개국의 15개 도시로 노선이 개설되어 있으며 총 9개 운항업체가 사업 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19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청주시의 옛 담배 공장이었던 연초제조창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8년 12월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네 번째 분관이다. 청주 연초제조창은 1946년에 건립되어 2004년까지 운영되었으나 이후 담배 생산의 감소로 인해 폐산업 시설로 방치되고 있었다. 청주관은 연면적 1만 9,855㎡, 지상 5층 규모의 건물로 수장고 10곳, 보존처리 공간 15곳, 기획전시 공간 1곳, 교육 공간 2곳, 라키비움 및 관람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 1층부터 3층은 보이는 수장고를 운영해 관람객들이 유리창을 통해 김환기, 이중섭, 이응노 등 국내 미술가의 대표 소장품의 수장 및 보존 상태를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3층에는 유화작품 보존처리실과 유기 및 무기 분석실 등 3개실이 관람객에게 개방되어 실제 보존처리 및 분석 현장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4층은 특별전시관, 5층은 기획전시관이 있다. 청주관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첫 국립현대미술관이며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해미순교성지 2019 해미순교성지 충청남도 서산에 자리한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 당시 처형된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순교 유적이다. 해미순교성지는 조선 1417년(태종 17)에서 1421년(세종 3) 사이에 축조되어 1914년 군현제가 폐지될 때 까지 내포 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했던 해미읍성의 서문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이 이루어진 병인박해(1886, 고종3)때 해미읍성에서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처형을 당한 후 이 곳에 생매장되었다. 당시 순교자들이 울부짖으며 ‘예수, 마리아’를 외치던 소리를 주민들이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해미순교성지는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1935년 서산성당의 주임신부였던 범바로(P.Barraux, 1903-1946)에 의해 당시 해미지역 순교자들의 유해 발굴이 시작되면서 해미순교성지에 대한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당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위한 시성식을 집전한 것을 계기로 해미순교성지의 성역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1985년 해미성당을 건립하였으며, 2003년에는 기념성전을 건립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셨다. 해미순교성지는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해미읍성 일대를 직접 방문한 이후 세계적인 순교성지로 주목 받고 있다.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2019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1906년 7월 내륙 지방 관찰부 소재지에 본점을 둔 지방은행으로 충주농공은행에서 출발했다. 탁지부령에 따라 1907년 6월 주식회사 한호농공은행 충주지점으로, 1918년에는 6개의 농공은행이 합병한 조선식산은행의 충주지점으로 개칭되었다. 현재의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1933년 12월에 본관 63평, 부속건물 34평 규모로 신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는 목구조, 외관은 서양식 석조 건물로 1930년대에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모더니즘적 요소를 건축물 일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광복 이후에도 한일은행 충주지점 등 금융시설로 사용되다가 1981년에 민간에 매각되어 가구점 등으로 사용되었다. 2015년 구도심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충주시에 매입된 이후 근대문화역사관으로 활용될 계획이었으나 현재 보류 중에 있다.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은행건축 기법과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2017년 5월 29일 등록문화재 제683호로 지정되었다. 소백산천문대 2019 소백산천문대 1978년 소백산 연화봉에 세워진 소백산천문대는 61cm 반사망원경을 보유한 곳으로 한국 현대천문학의 시초가 된 곳이다. 1974년 국립천문대가 대통령령으로 설립되었고 1978년에 국립천문대의 단위 부서로 소백산천체관측소가 준공되었다. 1986년에 국립천문대가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부설 천문우주과학연구소(현 한국천문연구원)로 변경됨에 따라 소백산천문대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백산천문대는 현재 교육관과 연구동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시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견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소백산천문대를 상징하는 시설인 첨성대 모양의 구 관측소(일명 소백산첨성대)도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소백산천문대는 국내에서 최초로 현대식 망원경을 설치한 천문대로서 다양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천문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구 사북탄광촌 2016 구 사북탄광촌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구 사북탄광촌은 1980년 사북사태가 발생했던 1980년대 최대 규모의 탄광지였다. 당시 사북탄광은 채탄량이 연간 160만 톤에 달하고 종업원 수가 삼천 명이 넘었던 국내 최대의 민영 광산으로, 생산하는 석탄의 양이 전국 채탄량의 9%에 달했다. 그러나 광부들과 관리인들의 삶은 천양지차로 달랐고 그에 따른 불만도 쌓여갔다. 전국광산 노조지부장 회의에서 42.75%의 임금인상안이 결의되었음에도 사북어용노조위원장 이재기 사북지부장이 회사 측과 비밀리에 20% 인상안을 합의해버리자 광부들의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1980년 4월 21일, 광부들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으로 이재기의 부인 김순이를 집단폭행하고 억류하였으며, 22일에는 사북읍의 안경다리에서 경촬과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사북사태는 군-검-경으로 구성된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에 의해 강압적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구 용산철도병원 2015 구 용산철도병원 구 용산철도병원은 1907년 조선통감부 철도국이 '용산동인병원'으로 처음 건립했다가 1918년 '용산철도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26년부터 철도국에서 직접 운영하였다.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임대되어 연구동과 연구실로 활용되다가 2007년 용산역세권 부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철수하였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2016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 위치한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이다. 태백은 국내 최대의 탄전지대로, 그 중 철암은 강원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석탄 산업사에 있어 상징적인 도시이다. 조선총독부는 국내 광산을 모두 조사한 후 광업권을 일본회사에 넘겼고, 전쟁이 가속화되던 1930년 이후 한반도의 자원 수탈이 본격화되었다. 1920년대 평양 인근의 무연탄과 함북의 갈탄이 개발되었고, 1930년대에 화순, 영월, 삼척, 은성탄광 등이 개발되었다. 광복 후에도 삼척탄광은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며 남한 최대의 무연탄광으로 발전하였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원탄저장 및 운반(벨트 콘베어), 경석 선별 및 파쇄운반, 1.2.3차 무연탄 선탄, 이물질 분리(침전), 각종 기계공급 및 수선창 등 5코스, 20개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근대 산업사의 상징적인 주요 시설로 인정받아 2002년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선정되었다. 해방촌 2015 해방촌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2가에 위치하고 있는 해방촌은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마을로 이태원 지하보도에서부터 용산2가동 주민센터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본래 해방촌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이 있던 곳이며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 관할이 되어 해외에서 돌아온 귀환민과 월남민, 그리고 6·25전쟁 이후의 피난민과 실향민이 정착하게 되어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최근 들어 해방촌에는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예술가들의 공방 등이 생기면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는 물론 외국인들까지 즐겨 찾는 명소로 변모하고 있다. 구룡마을 2017 구룡마을 구룡마을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무허가 판자촌으로 1980년대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등을 위한 개발계획으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 형성되었다. 2016년 기준 약 1100여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2018년 재개발 착공에 들어가 2020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뀔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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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민주화 독립운동 교육 일제 강점기 정부수립 스포츠 광복 새마을운동 대중문화 국방 미래 경제개발 4.19혁명 통일 세계화 좌우대립 개항 근대화 5.10 과학화 도시화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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